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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주거 이동 제한" 강남 한복판 12만 가구 날벼락

중앙일보 2020.06.19 00:02 종합 8면 지면보기
“사실상 주거 이동 제한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6·17 부동산 대책에서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 4개 동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조치에 대한 부동산 업계의 진단이다. 18일 서울시가 서울시보에 게재한 공고에 따르면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920만㎡·약 278만 평)과 송파구 잠실동(520만㎡·약 157만 평) 일원은 오는 23일부터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땅을 거래할 수 있다. 주택은 대지 지분 18㎡, 상가는 20㎡를 초과하는 모든 거래가 해당한다. 규제 기간은 일단 1년이지만 서울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연장할 수 있다.
 

업계, 토지거래허가구역 비판론
“신도시 만들 때 쓰는 수단으로
기존 아파트 묶어버린 건 무리수”
주민 “재건축 더디고 규제만 쌓여”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토지거래허가제는) 원래 신도시를 만들거나 도로를 건설할 때 투기세력 유입을 막기 위해 나대지(비어 있는 땅)를 묶던 조치”라며 “정부가 주택거래허가제나 마찬가지로 편법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지정 토지거래허가구역

서울시 지정 토지거래허가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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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밀집한 서울 강남권 한복판을 광범위하게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것은 처음이다. 서울시 통계연보(2019년 말 기준)에 따르면 삼성·청담·대치·잠실동에는 11만8000가구에 31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잠실동 리센츠(옛 잠실 주공2단지 재건축) 단지 주변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제의 구체적인 조건을 묻는 전화로 종일 바쁘다”고 말했다. 그는 “집을 팔려고 내놓은 다섯 곳 중 네 곳꼴로 세입자가 있는 집”이라며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매수인에게 들어가 살라고 하면 민간 임대시장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인 잠실 주공5단지 상가의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지은 지 40년 넘은 아파트를 20억원대에 사서 직접 들어와 살라고 하니 거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재건축 사업의 진척은 더디고 갈수록 규제만 쌓이고 해 주민들이 답답해한다”고 전했다.
 
이번 규제는 헌법이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나 사유재산권 보호 등에 맞지 않아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토지거래허가제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개발행위에 대한 규제가 목적”이라며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을 이유로 주변 아파트의 거래를 다 묶어버린 것은 상당한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나대지에나 쓰던 정책수단을 도심에서 거래를 틀어막는 데 쓰는 것”이라며 “사람들의 주거 이동성을 제약하는 등 여러 부작용과 문제점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처음 토지거래허가제를 도입한 것은 1978년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서울 외곽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보금자리 주택을 공급할 때 땅 투기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강남구 개포동·세곡동·수서동·율현동 등에선 아직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땅이 있지만 모두 자연녹지 지역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대지 지분 18㎡ 초과 주택을 거래하려면 먼저 계약 내용 등을 담은 허가 신청서를 구청에 내야 한다. 주택의 전용면적과는 상관없다. 아파트의 경우 단지별로 대지 지분이 제각각이어서 거래하는 곳의 대지 지분이 얼마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안에서 집을 사면 반드시 2년간 실제 거주해야 한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는 구청의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만일 구청 허가 없이 집을 사고팔았다가 적발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땅값의 30% 이하 벌금 같은 형사처벌을 받는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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