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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 노 머시(No Mercy)외치며 강력한 제재하면서 예방관리 정부 조직개편은 질본 개편의 재판?

중앙일보 2020.06.18 17:00
지난 4월 29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1일 소방관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있다. 당시 폭발과 함께 불길이 건물 전체로 확산하면서 근로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최모란 기자

지난 4월 29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1일 소방관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있다. 당시 폭발과 함께 불길이 건물 전체로 확산하면서 근로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최모란 기자

'산업 안전사고에 자비는 없다. 법망의 사각지대에 있던 발주업체도 예외 없이 처벌한다. 안전 불량 시공업체는 시장에서 퇴출한다. 안전 문제가 생기면 공사를 즉시 멈춘다.'
 

[뉴스분석]

정부가 18일 강력한 건설현장 화재 안전 대책을 내놨다. 4월 29일 건설 근로자 38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건의 후속 조치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예방 관리를 위한 정부 기구 개편 방안은 막판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질병관리본부를 청(廳)으로 승격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과 유사한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다. 안전을 위한 민간 규제는 강화하면서 정작 정부는 부처 이기주의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강력한 시장 개입

앞으로 건설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발주업체에도 책임을 묻는다. 그동안은 시공회사의 잘못만 따졌다. "시공사에 맡겼을 뿐"이라는 발주업체의 변명이 통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는 설계단계에서부터 안전을 챙겨야 한다.
 
설계는 발주업체의 몫이다. 시공사는 설계에 따라 건설한다. 한데 발주업체의 설계에는 건물 붕괴와 같은 건축 안전만 고려된다. 건설 안전은 아예 없다. 이러니 사고가 날 경우 시공사만 처벌받는다. 실제로 이천 화재사고의 경우 사법처리 대상자 대부분이 발주업체가 아닌 원청인 ㈜건우 관계자인 이유도 이런 잘못된 책임 분장 때문이다.
 
정부는 특별법을 만들어 건축 계획과 설계단계에서 적정 공사기간을 산정토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무리한 공기 단축에는 발주자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다.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한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토공사는 층별로 공사기간을 최소 10일로 하고, 골조공사는 지하층은 21일, 지상층은 8일로 하는 형태다.
 
특히 입찰에 나선 시공사의 적격성을 발주자가 판별할 수 있도록 안전 불량 건설업체의 명단을 공개하고, 관련 정보를 발주자에게 제공한다. 박두용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이렇게 되면 불량 시공사는 낙찰을 못 받게 돼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당한다"며 "시장기능을 활용한 건설업체 자정 방안"이라고 말했다.
 
건축자재에 대해서도 화재 안전 성능과 업체 품질 관리 능력을 평가해 불량할 경우 시장에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현재는 형사처벌만 한다. 앞으로는 막대한 과징금 부과, 영업정지, 입찰 제한과 같은 행정제재를 병행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건설현장 화재안전 대책 정부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근원적 문제 해결을 통한 건설현장 화재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비용절감보다 근로자 안전 중심으로 기업 경영 유도, 건설공사의 단계적 위험요인을 파악해 지속적 관리, 안전 관련 법·제도의 현장 작동성 강화' 등 3가지 중점 추진 방향을 설정했다. 뉴스1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건설현장 화재안전 대책 정부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근원적 문제 해결을 통한 건설현장 화재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비용절감보다 근로자 안전 중심으로 기업 경영 유도, 건설공사의 단계적 위험요인을 파악해 지속적 관리, 안전 관련 법·제도의 현장 작동성 강화' 등 3가지 중점 추진 방향을 설정했다. 뉴스1

◇노 머시(No Mercy)

산업안전사고는 독립 범죄군으로 설정된다. 개인의 과실이 아닌 기업 범죄 차원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그동안 면죄부 논란이 일었던 낮은 벌금형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법무부에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찰의 구형 기준도 개선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3일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찾아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양형 기준을 올려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근로자가 여럿 숨졌을 경우에는 별도의 법으로 엄하게 처벌하는 방안도 강구하기로 했다. 다중인명피해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다. 올해 안에 제정할 방침이다.
 
기업(법인)과 경영인에 대한 책임도 강화된다. 과징금을 대폭 상향 조정하는 것과 같은 경제 제재를 가하는 방식이다. 노동계 등에서 요구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추후 더 논의키로 했다. 정부는 당초 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대책 초안에 담았다. 그러나 과도한 규제 논란 등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과징금을 상향 조정하는 것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연구용역을 거쳐 재검토키로 했다.
 

◇현장에서 곧바로 시정

정부는 가연성 물질과 화기 취급 작업을 동시에 하는 걸 금지하기로 했다. 이천 화재사고처럼 용접 중 기화 물질에 불이 옮겨붙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를 어기면 현장 감리가 즉시 공사를 중지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다. 기업의 강압에 의한 공사 강행을 원천 봉쇄하는 셈이다.
 
공사 감리가 아닌 '안전' 전담 감리도 도입한다. 시공 중인 건축물에도 화재안전관리자를 발주자가 선임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스마트폰을 활용해 건설 근로자의 동선을 감지하는 시스템도 구축한다. 위험작업을 하는 근로자의 현장 위치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후진적 조직 개편은 무산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산업안전 분야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일반 근로감독과 섞이기 힘들다. 따라서 독립적인 조직으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안전은 예방과 관리가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후진적인 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산업안전 행정은 고용부 내 일개 국(局·산재예방보상정책국)에서 담당한다. 노사관계를 다루는 노동정책실장(1급)이 지휘한다. 전문성이나 예방 조직과는 동떨어진 체계다.
 
산업안전 예방을 위한 조직개편안이 마련됐지만 막판에 뒤집혔다. 위의 것은 이달 초 정부가 마련한 대책안 내용, 아래는 18일 발표한 대책안 내용.

산업안전 예방을 위한 조직개편안이 마련됐지만 막판에 뒤집혔다. 위의 것은 이달 초 정부가 마련한 대책안 내용, 아래는 18일 발표한 대책안 내용.

정부는 산업 안전의 특성과 관리의 중요성을 감안해 산업안전 감독 조직을 확 바꾸려 했다. 이달 초 마련한 대책에는 이 부분이 포함돼 있었다.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본부로 개편하는 방안이다. 최근 청(廳)으로 승격한 질병관리본부와 같은 전문·독립 체제다. 또 각 지방노동청에 안전 관련 과를 신설하고, 산업 안전을 전담하는 근로감독관을 확충하는 방안도 들어있었다. 현재 27개인 안전공단의 지사도 48개로 늘려 그물망 관리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에 산재예방팀과 같은 안전관리 총괄부서를 신설하는 방안도 들어있었다.
 
그러나 최종 발표문에는 이런 내용이 빠졌다. 당정으로 구성된 노동안전특위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TF 내에서는 사후 약방문 식의 처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조직 개편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며 "그러나 행정안전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조정이 안 돼 빠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는 과정의 재판(再版)인가?"고 말했다.
 
조직체계를 바꾸지 않으면서 정부는 발표문에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지자체에 현장 지도 권한을 부여하고, 지자체 공무원 합동 교육도 실시하겠다고 했다. 지자체에 총괄부서도 없는데 도대체 누가 현장을 지도하고, 누구를 교육한다는 것인지 앞뒤가 안 맞다.
 
박두용 안전공단 이사장은 "조직 개편은 예방 관리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대책인데, 이게 빠져 아쉽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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