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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내와 바투 서서 눈길 맞추자, 이혼 할 확률 낮아진다

중앙일보 2020.06.18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62)

‘바투 서다’는 둘 사이가 꽤 밀접하고 가까이 서서 능동적으로 교류한다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새로운 인연을 앞둔 선남선녀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지 싶다. [사진 pexels]

‘바투 서다’는 둘 사이가 꽤 밀접하고 가까이 서서 능동적으로 교류한다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새로운 인연을 앞둔 선남선녀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지 싶다. [사진 pexels]

 
바투 서기
 
세파에 흔들려 헛나이 든 온달도
아차산성에서만큼은 사나이가 되어야지
그래, 평강 규수를 선보인다
 
청초한 꽃다발을 전하고 받는 두 미소에
꽃 이름이 무어냐고 허방이나 짚는 아비
 
소나기처럼 몰려드는 호기심을 삭이다가
오뉴월에도 사시나무 떨림을 느낄 수 있다고
어미는 무릎 담요 두 장을 청하였다
 
어떤 힘이 끌어당기는 것일까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행복한 순간이란
 
굽이굽이 펼쳐진 치마바위 속 제 모습을
누군가의 세심한 손길이 갈고 쪼아서
얼굴과 뛰는 가슴을 돋을새김으로 꺼내주었고
몸통과 치마는 음각으로나마 바위에 묶여 있어도
 
바위 벽 안에서 이슬과 바람의 세상에
온전한 몸짓으로 걸어 나오자 하는 건
 
두 마음의 부싯돌을 켜
꽃불 심지를 밝히고 바투 서서
눈길 맞추고픈 다정이리라
 
해설
한의원에 초진환자가 오면 여러 가지 문진을 한다. 그러다 보면 결혼이나 동거 여부를 물어야할 때가 생긴다. 특히 부인과 질환일 때는 더 자세히 물어야 한다. 요즘엔 결혼 연령이 훨씬 지났는데도 비혼인 경우가 많다. 생김새나 직장 등 어디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데도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고르지 못해 그런지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적잖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게 와서 진료를 받던 김 군이 드디어 다음 달에 혼인을 하게 되었다며 겸연쩍은 웃음으로 소식을 전한다. 굴지의 회사에서 중요한 기획부 직책을 맡아 경영진을 모시고 세계를 누비느라 혼기를 놓친 셈이다. 불혹을 넘겼는데도 나이 먹은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큰 병이 들기 전에 매년 내원해서 건강을 돌본 효과이다. 막중한 혼사를 앞두고 몸을 정비하고 기운을 돋우는 처방을 받고자 내원했다. 그의 부모와도 잘 알고 가깝게 지내는 사이기에 전화로 세세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요즘엔 N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이다. 어렵게 대학을 나오고 각종 자격증을 따 스펙을 완비했어도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결혼하기도 겁나고 연애하기도 두려워 진다. 나아가 2세를 낳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가 보다. 집값이 다락 같이 올라 맞벌이 부부라도 도저히 따라 잡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 모든 게 부모세대 탓이 크다. 미안하고 안타깝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더 심해진 느낌이다.
 
요즘엔 N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이다. 어렵게 대학을 나오고 각종 자격증을 따 스펙을 완비했어도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결혼하기도 겁나고 연애하기도 두려워 진다. [사진 pexels]

요즘엔 N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이다. 어렵게 대학을 나오고 각종 자격증을 따 스펙을 완비했어도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결혼하기도 겁나고 연애하기도 두려워 진다. [사진 pexels]

 
나도 또래에 비해 늦게 결혼한 편이다. 한의대 6년을 나오고 대학원을 다니다가 군을 제대하고 결혼했다. 군대 상관의 부인이 나를 잘 보아서 그랬는지 제대 후 3일 만에 소개를 해주었다. 그날의 광경이 생생하다. 선정릉 근처 호텔 커피 집에서 얼굴도 모르는 채 둘이서만 만났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만 나온다. 머리칼은 짧고 얼굴은 가무잡잡하게 그을렸으며 오랜만에 입은 사복이 꼭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했다. 제 시간에 호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어여쁜 규수가 있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당황해서 무어라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횡설수설하던 나는 보기 좋게 딱지를 맞았다. 그때 어색한 내 모습은 아마 바보 온달 같았으리라. 미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가끔 유머를 좋아한다. 나를 일거에 퇴짜 논 그녀가 지금 내 평생 배우자다. 본명과 아명이 달랐던 그녀를 몇 달 후 다시 알고 보니 두 집안이 아주 잘 아는 사이였다.
 
다시 만나도 첫 인상 그대로였다. 나는 망설임도 없이 “평생 같이 등을 밀어 주기로 할까요?”라는 말로 청혼했다. 좀 시크하지 못 한 표현이지만, 그 말은 제대로 이루어졌다. 살아오면서 집사람이 내 등을 세 번씩이나 밀어주어야만 했다. 처음엔 내가 머리와 양 팔에 3도 화상을 입고 치료할 때였다. 화상병동과 집에서 수개월 동안이나 정성껏 씻겨주었다. 지난주에도 별안간 몸이 불편해져 한의원을 쉬었다. 또 아내가 내 등을 씻겨주어야만 했다. 그러느라 꼭 참석해야할 경조사와 모임에도 불참했다.
 
요즘 우리 자식 세대는 여러 면에서 우리보다 낫다. 외모도 번듯해지고 키도 훤칠하다. 언어 능력도 웬만해선 원어로 영화를 감상하고, 집에서 컴퓨터가 고장 나면 시간을 내서 포맷을 다시 해준다. 남녀 사이 관계도 스스럼없이 친구처럼 지내며 상대방 인격을 존중하는 모습이 놀랍다. 결혼한 조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집안일과 육아도 공평하게 나누어서 한단다. 부부 모임도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재미있게 하루를 지낸다고 한다. 우리 때는 남자들은 카드나 화투로 지새고 여자들은 수다로 보내지 않았는가. 모든 면에서 건전하다. 오늘날 그들은 전혀 바보 온달이 아니다. 그저 현사회가 그렇게 만들고 취급할 뿐이다.
 
한때 이런 주례사가 유행했었다. 부부란 한 목표를 바라보고 달리는 철로 같아야 한다. 서로 상대방을 쳐다보는 시간보다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부부 관계도 편해지고 좋아진다고 충고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철로는 영원이 만나지 못하는 평행관계가 아닌가. 그저 이곳에서 지평선 저편 너머로 바라볼 때 철길이 만나는 것 같은 착시만 생기는 건 아닌지. 철로의 표준궤도는 1435mm이다. 사실 이 폭은 영국에서 로마시대에 마차가 다니던 자국에 맞춰 정해졌다고 한다. 관습이란 이름으로 세심하게 따져보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최근에 부부 사이가 멀어지는 이유를 연구한 뇌신경학자 ‘조나 레러’는 서로 대화하거나 싸울 때 눈을 마주치지 않고 피할수록 이혼확률이 2.5배나 높아진다고 발표했다. 서로 마주보기를 자주 할수록 상대방의 감정을 정확하게 읽고, 필요하거나 원하는 게 무엇인지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람은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돌 속에 감추어진 자기의 형상을 갈고 쪼아서 자기 얼굴과 뜨거운 심장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의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더니 위대한 다비드와 피에타 조각상이 절로 나왔다고 말했듯이. [사진 Pixabay]

사람은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돌 속에 감추어진 자기의 형상을 갈고 쪼아서 자기 얼굴과 뜨거운 심장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의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더니 위대한 다비드와 피에타 조각상이 절로 나왔다고 말했듯이. [사진 Pixabay]

 
이젠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먼 목표를 바라보기보다 알맞은 때에 적절한 시선을 상대방으로 자주 옮겨야 한다. 여기에 아주 적확한 용어가 있다. 그리스어 카이로스(kairos)이다. 우리말로 ‘적절한 찰나’라고 떠올리면 쉽다. 놓치면 순식간에 지나가 후회하는 찰나 말이다. 흔히 찰나는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오래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염두에 두어야만 캐치할 수 있는 기회포착을 말하는 용어다. 쇠를 담금질 할 때 망치로 두드리고 물에 식히는 적절한 찰나가 있듯이 말이다. 그러니 카이로스, 찰나는 생동하고 도약하는 젊음의 시간이다. 관심과 집중의 시간이다.
 
사람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돌 속에 감추어진 자기의 형상을 갈고 쪼아서 자기 얼굴과 뜨거운 심장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의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더니 위대한 다비드와 피에타 조각상이 절로 나왔다고 말했듯이. 하지만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는 몸통과 아랫도리가 여전히 벽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한번은 큰 걸음을 떼어야만 두 사람이 벽에서 나올 수 있다.
 
‘바투 서다’는 둘 사이가 꽤 밀접하고 가까이 서서 능동적으로 교류한다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새로운 인연을 앞둔 선남선녀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지 싶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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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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