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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가슴, 육포 팬티…MZ세대의 흥미로운 속옷 생활

중앙일보 2020.06.18 11:18
국내 속옷 시장이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했다. 쌍방울, BYC 등 전통의 강자는 물론이고 유니클로 등의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온라인 전용 신생 속옷 브랜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등이 속옷 시장에서 난투 중이다. 차세대 소비 주체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콘텐트로 무장한 이들의 과감한 행보를 들여다봤다.  

 

내가 알던 옛날 그 브랜드가 아니야

만우절 이벤트로 공개된 BYC X 질러 '육포 팬티' 이미지. 만우절에 흥미로운 가상의 제품을 올려서 이슈를 모으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했다. 사진 BYC 공식 인스타그램

만우절 이벤트로 공개된 BYC X 질러 '육포 팬티' 이미지. 만우절에 흥미로운 가상의 제품을 올려서 이슈를 모으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했다. 사진 BYC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 4일 BYC는 육포 브랜드 ‘질러’와 협업해 ‘육포 팬티’를 내놨다. 남자 삼각팬티 1장과 질러 직화 풍 BBQ 맛 육포 8개가 한 세트로 구성된 상품이다. BYC 팬티 포장에는 육포 그림이, 질러 육포 포장에는 흰색 면 팬티 사진을 넣었다. 젊은 층이 기분이 너무 좋을 때 ‘팬티 벗고 소리 질러’ 혹은 ‘소리 벗고 팬티 질러’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데서 착안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육포 팬티 아이디어는 지난 4월 1일 만우절에 BYC의 SNS 계정을 통해 미리 공개됐다. 재밌는 상상이 허용되는 만우절을 틈타 B급 농담 같은 가상의 제품을 만들어 깜짝 공개한 것. 육포와 팬티라는 색다른 조화에 ‘숯불 레드의 강렬한 컬러가 마음에 든다’ ‘입고 다니면 우리 집 강아지가 좋아할 듯’ 등의 댓글이 달리면서 고객 반응도 뜨거웠다.  
만우절 이후 젊은 층의 반응이 좋아 실제로 출시된 BYC X 질러 협업 제품. 육포와 팬티가 세트 상품으로 구성됐다. 사진 BYC

만우절 이후 젊은 층의 반응이 좋아 실제로 출시된 BYC X 질러 협업 제품. 육포와 팬티가 세트 상품으로 구성됐다. 사진 BYC

 
지난해 10월 여성 속옷 브랜드 ‘비비안’을 인수해 세를 불린 쌍방울그룹은 올해 4월 유튜브에 ‘란제리 클라쓰’ 채널을 오픈했다. 재미있는 콘텐트로 젊은 소비자와 소통하겠다는 취지다. 속옷의 역사, 문화뿐 아니라 실생활 정보 등 속옷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T팬티가 궁금해 편’은 조회수 11만회를 기록했다. 지난 16일에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온라인 패션 편집숍 ‘무신사’에 단독으로 ‘뉴트로트라이’ 라인을 론칭했다. 과거 쌍방울의 대표 브랜드였던 ‘트라이’의 오리지널 로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상품이다.  
쌍방울의 유튜브 채널 '란제리 클라쓰.' 역사부터 실생활 정보까지 속옷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사진 쌍방울그룹

쌍방울의 유튜브 채널 '란제리 클라쓰.' 역사부터 실생활 정보까지 속옷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사진 쌍방울그룹

 

작은 불편함에도 주목, SNS로 터트린다

다양한 체형의 모델을 속옷 광고에 등장시키고 몸매 실루엣을 보정하지 않은 사진을 그대로 내보내 화제가 된 '비브비브'. 사진 블랭크코퍼레이션

다양한 체형의 모델을 속옷 광고에 등장시키고 몸매 실루엣을 보정하지 않은 사진을 그대로 내보내 화제가 된 '비브비브'. 사진 블랭크코퍼레이션

색다른 콘텐트로 무장한 신생 속옷 브랜드의 약진도 돋보인다. 미디어커머스 업체 블랭크코퍼레이션의 ‘비브비브’, 커뮤니케이션앤컬쳐의 ‘슬림9’이 대표적이다. 2018년 론칭한 비브비브는 다양한 체형의 여성 모델을 SNS 광고에 등장시켜 화제가 됐다. 기존 속옷 광고에 등장했던 섹시한 몸매의 모델 대신 마르고 작은 모델, 키가 큰 모델, 일반적 신체 사이즈의 모델 셋을 등장시키고 사진 보정도 없이 광고를 내보냈다. 최근 광고에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여성들을 인터뷰한 영상으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에 집중하는 젊은 세대의 정서를 담았다. 
슬림9의 ‘네모 팬티’는 편안해야 팔린다는 속옷 트렌드를 정확히 반영해 인기몰이 중이다. 치마를 입을 때 팬티를 입고 속바지를 덧입는 불편함에서 착안해 속바지 형태의 팬티를 만든 것. Y존을 자극하지 않는 사각 디자인의 편안한 착용감을 강조하며 20대 여성 고객의 사용 후기를 광고에 담아 SNS에 내보내는 공감 전략도 이용하고 있다. 
Y존을 압박하지 않는 편안한 착용감을 강조하는 네모 팬티. 사진 슬림9

Y존을 압박하지 않는 편안한 착용감을 강조하는 네모 팬티. 사진 슬림9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 속옷 시장이 채워주지 못했던 작은 불편함을 지나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이를 재미있는 영상 콘텐트로 만들어 장점을 홍보하고 설득한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편안한 여성 속옷으로 여성용 사각 팬티가 주목받는다. 사진 자주

최근에는 편안한 여성 속옷으로 여성용 사각 팬티가 주목받는다. 사진 자주

 
편한 속옷 열풍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속옷 시장 진출을 견인한 요인이기도 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는 올해 1월 여성용 사각팬티를 출시해 화제가 됐다. 여성 소비자들이 남성용 트렁크를 입어보고 SNS에 후기를 남긴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여성용 드로즈인 ‘보이쇼츠’ 2종과 트렁크를 출시했다. 출시 2개월 만에 여성용 팬티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할 만큼 반응도 좋은 편이다. 2~3년 전 와이어 없는 브라와 브라렛이 편한 속옷의 유행을 만들었다면 최근에는 여성용 사각팬티가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속옷도 정기 구독, 자판기도 있네  

원하는 물건이나 콘텐트를 정기적으로 배송받는 ‘구독 경제’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겨냥한 속옷 구독 서비스도 나왔다. 속옷 큐레이션 정기 구독 서비스 ‘월간가슴’이다. 한 달에 한 번 속옷 세트를 구독자 사이즈와 취향에 맞춰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속옷 쇼핑 시간을 줄여주고, 새로운 속옷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속옷 정기 구독 서비스 '월간 가슴'. 구독자 취향과 사이즈에 맞는 속옷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준다. 사진 월간 가슴 홈페이지

속옷 정기 구독 서비스 '월간 가슴'. 구독자 취향과 사이즈에 맞는 속옷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준다. 사진 월간 가슴 홈페이지

 
서울 현대백화점 신촌점 지하 2층에는 속옷 자판기 ‘유플렉스 미니 팝업스토어’가 있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남성 속옷 브랜드 ‘언코티드-247’의 속옷 6종과 남성 뷰티·헤어 제품, 바디 케어 제품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제품 홍보와 유통 과정을 일원화하고 젊은 세대에게 색다른 구매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속옷이나 화장품 대면 구매를 어색해하는 남성 소비자를 배려한 의도도 엿보인다.  
속옷을 비롯해 다양한 남성 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자판기. 사진 블랭크코퍼레이션

속옷을 비롯해 다양한 남성 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자판기. 사진 블랭크코퍼레이션

 
한국패션산업협회가 발표한 국내 속옷 시장 규모는 현재 약 2조원 대다. 시장 규모는 줄지 않았지만, 전통 기업의 점유율은 낮아졌다. 절대 지존이 없는 시장. 요즘 속옷 업계서 기존 법칙을 깬 새로운 시도가 속속 등장하는 이유다.  
 
유지연 기자 yoo.jiy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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