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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北, 41년전 소련 닮았다…美도 눈뜨고 당한 '빨치산 전술'

중앙일보 2020.06.18 06:00
북한이 지난 16일 800억 원 이상의 대한민국 세금이 들어간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등을 폭파하면서 김씨 정권의 의도와 목표, 전술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 등이 차마 입에 담기에도 거북할 정도의 험악한 말로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모독한 끝에 벌인 행동이다.  

북한, 속임수·허세의 빨치산 체제
표리부동·기만·자극으로 오판 유발
미국, 냉전시절 소련 허풍에 속아
전 소련군 장성 수보로프의 증언
미·소간 핵감축 협상도 기만전술
전략기만국장 출신이 협상 연출
소련, 유격 미사일 기술 있는 척
관영매체, 거대 시설물로 속여
미국과 요격미사일 감축협상
6·25 정전협상 조이 제독의 충고
“공산주의자 알아듣는 건 힘 뿐”

조선중앙TV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을 17일 보도하고 있다. 뉴시스.

조선중앙TV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을 17일 보도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 갈수록 거칠어지는 것도 전술

형식적인 발단은 지난달 31일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는 전단을 풍선을 이용해 북한으로 띄워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겉보기 핑계일 뿐이고 실제 의도와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 침해에 대한 우려에도 대북 전단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평양이 공세를 멈추기는커녕 더욱 거칠게 나온 것이 증거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대북 전단(삐라) 문제를 규탄하는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여맹)일꾼들과 여맹원들의 항의 군중집회가 9일 신천박물관 교양마당에서 진행됐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이들은 '자멸을 재촉하는 역적무리들을 송두리채(째) 불태워버리자!'라는 팻말 앞에서 마스크를 쓴 채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대북 전단(삐라) 문제를 규탄하는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여맹)일꾼들과 여맹원들의 항의 군중집회가 9일 신천박물관 교양마당에서 진행됐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이들은 '자멸을 재촉하는 역적무리들을 송두리채(째) 불태워버리자!'라는 팻말 앞에서 마스크를 쓴 채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뉴스1

 

속임수·허풍·위협이 일상화한 ‘빨치산 국가’

북한은 왜, 무엇을 노리고 이렇게 나오는 것일까? 그들은 어떤 전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를 파악하려면 북한의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볼 필요가 있다. 바로 북한 정권의 속성이다. 북한 정권은 흔히 ‘빨치산(유격대) 체제’로 불린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 유격대 식으로’라는 정치 구호를 전국 곳곳에 걸어놓고 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1941~2011년)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 된 직후인 1974년 3월 내놓은 구호다. 당 조직·선전 담당 비서도 맡았던 김 위원장은 1980년 10월 후계자의 지위가 공식 확정됐다. 북한 정권의 성격을 함축하는 이 전투적인 구호는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1912~1994년)으로부터 권력을 세습 받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빨치산의 어원과 전술을 분석하면 북한 정권의 속내와 작전을 짐작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빨치산이라는 단어는 비정규 부대나 은밀한 기습을 주로 하는 유격대를 가리키는 ‘파르티잔’의 러시아식 발음(빠르찌잔에 가깝다)에서 비롯했다. 프랑스에서 처음 나타나 파르티자노라는 이탈리아어를 거쳐 발전했다는 설도 있다. ‘작은 전쟁’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에서 비롯한 ‘게릴라’와 일맥상통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79년 6월 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전략무기 감축협정(SALTⅡ)조인식에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과 소련의 레오니트 브르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이 챀석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 끝이 전략기만국장 출신의 소련군 총참모장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중앙포토]

1979년 6월 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전략무기 감축협정(SALTⅡ)조인식에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과 소련의 레오니트 브르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이 챀석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 끝이 전략기만국장 출신의 소련군 총참모장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중앙포토]

 

공산주의자들, 냉전 기간에 기만 전술로 서방 압박

브리태니카 등에 따르면 파르티잔 군사전술의 최대 특징은 적이나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거나 호도하는 것이다. 상대하는 정규군에 비해 전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정면대응을 피하고 기습 중심의 치고 빠지는 전술을 주로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르티잔은 겉으로 보여주는 언행과 숨은 의도가 다른 표리부동 전술, 드러내는 모든 것이 거짓인 기만 전술, 그리고 험악한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자극해 그릇된 판단을 유도하는 자극 전술을 일상적으로 쓴다. 정공법으로는 힘과 능력이 모자라 상대를 제압하기 어려우니 속이고 뒤통수치면서 질리게 하는 비정규·비대칭 전술로 원하는 바를 얻는 전술이다. 제아무리 군사력·경제력·인재를 갖춘 집단이라도 이런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빨치산의 술수에 넘어가기 일쑤다. 
 
 

원하는 게 있으면 속이고 과장하며 겁주기부터 

북한의 최근 대남 위협 방식은 이런 빨치산 체제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빨치산 전술을 과거 냉전 시절 소련과 중국·북한이 보여줬던 공산주의자들의 고전적 술수와도 맞물려 있다. 바로 기만과 허세, 그리고 겁주기다. 냉전 기간 서방 진영은 공산주의자들의 속셈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쉽지 않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전술로 자신의 의중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언어는 겉으로 말하는 것과 뒤에 숨은 속뜻이 서로 다르다는 특징이 뚜렷했다. 그런 그들의 속내와 의도를 읽고 제대로 협상하거나 대응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런 술수는 실전에서 상당한 실적으로 이어졌다. 냉전 기간 소련과 중국·북한 등 공산권 국가들은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협상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SALTⅡ로 폐기된 소련의 장거리 핵 폭격기들. 소련은 당시 기술부족으로 요격 미사일을 개발도 못했지만 완성한 것처럼 기만 작전을 편 끝에 눈엣가시 같았던 미국의 요격 미사일과 기지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중앙포토]

SALTⅡ로 폐기된 소련의 장거리 핵 폭격기들. 소련은 당시 기술부족으로 요격 미사일을 개발도 못했지만 완성한 것처럼 기만 작전을 편 끝에 눈엣가시 같았던 미국의 요격 미사일과 기지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중앙포토]

 

수보로프 장군, 역사적 핵군축이 사실은 기만이라 증언

미국은 엄청난 정보력에도 냉전 시기 공산주의자들의 기만과 허세, 겁주기 전술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일이 있다. 냉전 시절 소련군 장성이었다가 공산체제에 염증을 느껴 영국에 망명한 블라디미르 레준(Vladimir Rezun)은 빅토르 수보로프(Viktor Suvorov)라는 필명으로 소련군의 내부와 전술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그는 『소련군의 내부(Inside Soviet Army·1982년 맥밀란)』라는 책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벌인 기만 전술의 실체를 증언했다.  
시간은 정확히 41년 전인 1979년 6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95·재임 1977~1981년)과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1964~1982년, 재임 1964~1982년)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SALTⅡ(The Strategic Arms Limitation TreatiesⅡ·전략무기 제한협정Ⅱ)에 서명한 순간이었다. SALTⅡ는 1972년 5월 26일 모스크바에서 조인한 SALTⅠ과 함께 핵 전쟁을 막고 평화의 길을 연 역사적인 합의로 통한다. 여기까지는 공식적이고, 표면적인 역사다.  
수보로프의 증언은 사뭇 다르다. 그는 냉전 시절 핵으로 절멸될 위기에서 인류를 구했다는 미·소간의 ‘전략무기 감축협정(SALT)’들이 소련에선 기만 작전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통했다고 털어놨다. 전략무기 제한 협정을 두고 미국에선 ‘평화의 길을 열었다’며 자부심에 가득 찼지만 소련 권력층에선 ‘기만전술의 개가'라며 키득거렸다는 것이다.  

이는 SALTⅡ 기념사진을 보면 드러난다. 수많은 참석자 가운데 뒷줄 맨 오른쪽에 있는 군복 차림의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소련군 원수인 니콜라이 바실레비치 오가르코프 총참모장 겸 국방부 제1차관(1917~1994년·1977~1981년 재임)이다. 오가르코프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오가르코프는 사단장, 군관구 사령관 등 야전 지휘관을 거쳐 1968~1974년 소련군 총참모부 제1차장, 1974~1977년 국방차관을 거쳐 1977년 총참모장에 올랐다.  
소련군 전략기만국장 출신의 총참모장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원수. [중앙포토]

소련군 전략기만국장 출신의 총참모장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원수. [중앙포토]

 

속임수 전문 전략기만국장, 핵군축 서명장에

수보로프에 따르면 오가르코프는 사실 총참모부 제1차장 시절부터 전략기만국장을 겸임하면서 SALT 협상 과정 내내 미국을 속이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기만 전술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전략기만국 제7처장인 트루소프 상장을 SALT 협상 대표 중 한 명으로 파견했는데, 서명식에는 트루소프 대신 오가르코프가 직접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는 배경이 있다고 수보로프는 설명했다.    
미·소 간의 전략무기 감축협상은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1908~1973년, 재임 1963~1969년)이 1967년 제안했다. 협상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1913~1994년, 재임 1969~1974년) 시절인 1969년 시작해 1972년 SALTⅠ으로 1차 결실을 봤다. SALTⅠ의 내용은 미·소 두 나라가 탄도탄 요격미사일(ABM)기지를 2곳에서 1곳으로 줄이고 수량도 100기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미국은 대륙간탄도탄(ICBM) 1054기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710기, 소련은 ICBM 1618기와 SLBM 950기로 보유 상한선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어 제럴드 포드 대통령(1913~2006년, 재임 1974~1977년)을 거쳐 인권 대통령으로 유명한 카터 시절인 1979년 6월 핵무기를 적재한 전략 폭격기와 ICBM, SLBM을 더욱 줄이는 SALTⅡ 협정 체결로 이어졌다.

그런데 당시 소련에 SALT 협상의 진짜 목적은 핵무기를 줄이는 게 아니라 기술에서 앞선 미국 탄도탄 요격미사일(ABM)의 무력화였다는 게 수보로프의 주장이다. 소련은 1970년대 들어 다량의 핵 미사일을 보유하게 됐지만 미국은 이를 중간에 요격해 무력화할 수 있는 ABM을 확보했다. 소련에는 아무리 많은 핵무기로도 뚫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미국이 ABM을 다량 배치하면 소련 핵 미사일은 무용지물이 되고 미국을 위협할 수 없게 된다. 한국에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AAAD·종말고고도지역방어)를 배치하면 북한이나 중국의 미사일이 한국이나 미국을 공격하거나 위협하기 어려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소련 핵 미사일과 폭격기가 창이라면 미국의 ABM은 이를 막는 방패인 셈이다. 초조해진 소련은 미국의 ABM 배치를 막기 위해 전략기만국장인 오가르코프의 지휘 아래 기만 작전을 펼쳤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 [중앙포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 [중앙포토]

소련, 요격미사일 기술 확보한 척 기만

첫 작전은 무시 전술을 적용했다. 미국이 ABM 배치를 시도하자 소련은 초기에 이를 문제삼기는커녕 철저히 무시했다. 의도적인 무시였다. 미국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둘째 작전으로 역선전을 동원했다. 관영매체를 앞세워 소련도 이미 오래 전부터 미사일 방어무기를 연구해 왔으며 요격에 성공하기도 했다는 뉴스를 흘렸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 요격 미사일이 다른 미사일을 떨어뜨리는 영상도 공개했다. 눈으로 확인시킨 셈이다. 하지만 이 역시 기만 작전의 일부였다. 사실 탄도 미사일은 발사 시간과 방향 벡터만 알면 다른 미사일 등을 발사해 어렵지 않게 요격할 수 있다.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미사일을 손쉽게 요격한 셈이다. 실제로 당시 소련은 초고속으로 발사시간 정보를 파악할 정보 시스템과 미사일의 속도와 방향 벡터를 파악하고 요격 지점을 초고속으로 계산할 컴퓨터가 없어 ABM을 만들 수가 없었다.  
셋째로 붉은 광장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 요격 미사일이라며 거대한 미사일을 공개했다. 소련군은 이 미사일이 공격용 핵무기를 담당하는 전략로켓군 소속이 아닌 미사일과 항공기 등을 방어하는 방공군 소속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를 요격 미사일로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겉모양만 그럴싸한 가짜 요격용 미사일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소련은 ABM 유도 기지로 보일 거대한 건물을 세웠다. 기만을 위한 넷째 조치다. 당시 기술로 ABM을 유도하려면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큰 초대형 건물에 1000명 이상의 엔지니어가 일해야 했다. 소련은 이를 모스크바 외곽을 도는 순환 도로 곁에 보란 듯이 세웠다. 모든 서방 외교관들이 지나면서 볼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외교공관 근무자의 상당수는 군이나 정보기관 소속이다. 소련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정보보고가 들어가도록 유도했다.  

그 건물은 당연히 텅 비어 있었다. 소련은 이 건물에 군인들이 들락거리도록 했다. 멀리서 탐지해도 가동이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섯째 기만이다.  
군인들은 건물 안에서 상당한 출력의 전파를 발사했다. 과학기술 능력을 활용해 이 전파를 탐지한 미국은 그 안에서 ABM 유도 작업이 벌어지고 잇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여섯째 기만이다.  
일곱째 기만 작전에는 관영 매체들이 다시 동원했다. 관영매체들은 ‘소련군이 ABM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는 보도를 줄줄이 했다. 사실 보도와는 거리가 멀었고, 단지 미국을 헛갈리게 하기 위한 목적의 보도였다. 보도가 아닌 정치적 프로파간다였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 한 방 쏘지 않고 미국 요격미사일 포기시켜

그 다음 소련 당국은 여덟째 기만 공작에 들어갔다. 정보원들에게 미국의 AMB에 대한 정보 수집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관영매체들에겐 미국의 전자산업이나 기술에 관심을 보이지 말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라는 지시도 더했다. 이 지시는 실적에 목말라하던 미국 정보원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다. 이를 파악한 미국은 소련이 ABM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획득해 미국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없어진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미국은 소련 매체들의 무관심에 대해 소련이 거둔 성과를 숨기기 위한 기만 작전의 하나로 착각했다. 미국의 정보실패다.  

미국은 소련에 상당한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SALT 협상장에 나타났다. 미국은 과학기술과 정보력이 너무 뛰어나 오히려 소련의 기만 전술에 넘어간 셈이다. 결국 SALTⅠ 협상 결과 미·소 두 나라가 탄도탄 요격미사일(ABM) 기지를 2곳에서 1곳으로 줄이고 수량도 100기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미국은 진짜 ABM 기지와 수많은 ABM을, 소련은 텅빈 건물과 안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는 가짜 ABM을 각각 제거했다. 미국은 당시까지 폐기할 ABM이 없던 소련에 자신도 모르는 1패를 당한 셈이다.  
포드와 브르즈네프가 협정에 서명하는 자리에는 소련의 정치국원도 아니고, 국방장관도 아니고, 요격 미사일 담당인 방공군 사령관도 아닌 전략기만국장 출신의 오가르코프가 나타난 이유다. 다음날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본 소련군 인사들은 오가르코프가 참석한 것을 보고 실상을 짐작했지만 미국은 눈치 채지 못했다.  
전략기만국장은 형식적으로는 과학·기술·예산과 관련한 소련군의 모든 군사검열을 책임지는 자리다. 하지만 사실은 기만 작전으로 서방을 헛갈리게 하는 게 주임무였다. 군사 퍼레이드와 훈련을 조작하는 일은 기본이다. 적이 소련의 의도와 행동을 오판하도록 만드는 모든 기만 작전을 책임진다. 이런 인물이 SALT 서명식에 나타난 것은 SALT 자체가 시작부터 끝까지 전략기만국이 담당한 기만 작전이었음을 증명한 셈이다.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 직후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소련군 총참모장이 기자회견에서 민간기임을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다. 그의 거짓말은 로널드 레이건의 미국 대통령의 결단과 미국의 과학기술, 정보력에 의해 들통 났다. [중앙포토]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 직후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소련군 총참모장이 기자회견에서 민간기임을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다. 그의 거짓말은 로널드 레이건의 미국 대통령의 결단과 미국의 과학기술, 정보력에 의해 들통 났다. [중앙포토]

 

대한항공 007편 격추 거짓말하다 레이건에 들통

오르가코프는 이미 SALTⅠ협상 과정에서 총 한방 쏘지 않고 미국이 ABM 기지 하나를 포기하게 하는 공을 세웠다. 그가 1977년 소련군 원수로 진급하고, 총참모장과 제1 국방차관 보직을 맡고 영웅 칭호를 받은 데는 이런 기만 작전의 성공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오르가코프는 소련 공군의 수호이-15 전투기가 1983년 9월 1일 사할린 인근을 비행하던 대한항공 007편을 미사일로 격추한 비극적인 사건 당시 민항기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잡아떼며 거짓말로 일관하다 혼이 났다.  
당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11~2004년, 1981~1989년 재임)은 생중계되던 기자회견에서 소련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와 사령부 사이에 이뤄진 교신을 감청했다가 전격적으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교신 내용은 이렇다.  
조종사: 민간 항공기 등이 반짝인다. 그래도 쏘나?

사령부: 무조건 발사하라.  
조종사: 반복한다. 민간 항공기다. 글자도 보인다. 그래도 쏘아야 하나?

사령부: 명령이다. 쏴라.  
승객과 승무원 269명 전원은 이렇게 목숨을 잃었다. 오르가코프의 거짓말은 레이건의 의지와 미국의 과학기술, 정보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오르가코프는 소련군의 기술혁신에 필요하다며 더 많은 국방예산을 요구하다 1984년 콘스탄틴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1911~1985년, 재임 1984~1985년)에 의해 총참모장에서 해임됐다. 레이건은 스타워즈, 다탄두 미사일 개발 등으로 군비경쟁을 가속화해 소련의 볍새 다리를 기어이 찢어놓았다. 소련은 미하일 고르바초프(89·서기장과 소련 대통령 재임 1985~1991년) 재임 시기인 1991년 무너지고 냉전은 종식됐다. 빨치산 전술로 일관하는 공산주의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역사적 교훈이다.  
군 당국 TOD에 포착된 남북연락사무소와 종합지원센터 폭파 순간 모습. 15층 고층 건물인 종합지원센터 상부에서도 폭약 폭발로 추정되는 열이 감지되는 게 보인다. [국방부 TOD 캡처]

군 당국 TOD에 포착된 남북연락사무소와 종합지원센터 폭파 순간 모습. 15층 고층 건물인 종합지원센터 상부에서도 폭약 폭발로 추정되는 열이 감지되는 게 보인다. [국방부 TOD 캡처]

 

쿠바 미사일 위기도 소련의 기만전술설 

수보로프는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1894~1971년, 재임 1953~1964년)이 1960년대 미국을 위협할 만한 장거리 핵미사일을 제대로 개발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전략로켓군을 창설하고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위기를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흐루쇼프는 군사 열병식에 빈껍데기만 있는 미사일을 당당히 들고나와 위협적인 무기체계인양 기만했다는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1917~1963년, 재임 1961~1963년)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에 가까운 터키에 배치했던 핵 미사일을 철수했는데 소련의 핵 미사일 전력을 과대 평가한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6·25전쟁 당시 중국·북한과의 정전협상을 이끌었던 미 해군의 터너 조이(1895~1956년) 제독. 저서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1956년 맥밀란)』에서 공산주의자를 다루는 노하우를 소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키피디아]

'6·25전쟁 당시 중국·북한과의 정전협상을 이끌었던 미 해군의 터너 조이(1895~1956년) 제독. 저서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1956년 맥밀란)』에서 공산주의자를 다루는 노하우를 소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키피디아]

공산주의자들이 알아듣는 논리는 오로지 힘  

6·25전쟁 당시 중국·북한과의 정전협상을 이끌었던 미 해군의 터너 조이(1895~1956년) 제독은 저서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1956년 맥밀란)』에서 공산주의자를 다루는 노하우를 소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이 알아듣는 논리는 오로지 힘뿐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하지 말고 모든 사안에서 똑같은 양보를 요구하라’ ‘서두르지 말라’ ‘정치적인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협상에 들어가라’ ‘적이 원한다고 협상하지 말라’ 등을 조언했다. 이 충고들은 6·25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공산주의자들은 그 동안 바뀐 게 없어 보이니까 말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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