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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장비 빌려 예산 아꼈는데” 농진청 중징계 대상된 공무원

중앙일보 2020.06.18 05:00
괴로워하는 근로자 이미지. [사진 대한법률구조공단 노동조합]

괴로워하는 근로자 이미지. [사진 대한법률구조공단 노동조합]

실험장비를 빌려 수천만원의 농촌진흥청 예산을 절감한 직원이 되려 ‘청렴의무 위반’으로 중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농진청 감사담당관(실)이 장비를 빌린 것을 ‘금품수수’로 판단하면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농촌진흥청지부는 “적극행정을 한 대가가 중징계”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초 실험장비의 부재 

17일 농진청과 농진청 노조 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초 식량과학원 내 작물품종 개량연구 등을 수행하던 A연구실장과 B연구사는 실험장비업체로부터 ‘데모장비’(전시제품)를 무상으로 빌리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10여명의 연구사가 근무하는 연구실에 기초 실험장비인 동결건조기를 비롯해 원심분리기·전자저울이 지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고육책이 나오기 전까지 연구 인력들은 이런저런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우선 50m가량 떨어진 본관으로 이동한 뒤 ‘다른 실험실’의 장비를 빌려 썼다. 또 장비사용 시간이 겹치기라도 하는 날엔 그만큼 실험일정은 뒤로 밀렸다. 자연히 실험실 간 감정이 상하는 일도 터져 나왔다. 더욱이 시료를 외부로 들고 다니는 만큼 오염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농촌진흥청 건물과 전북혁신도시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농촌진흥청 건물과 전북혁신도시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2000만원 예산 절감 

무상 대여 프로그램 이용 후 이런 불편이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무상 대여는 관련 기자재가 부족한 대학 실험실이나 영세한 연구소 등에서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안정적인 실험은 농진청 연구사들의 논문 발표 등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특히 무상 대여로 2000만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도 봤다. 동결건조기의 시중 가격은 1380만원에 달한다. 원심분리기는 286만원, 전자저울은 341만원 정도 된다.
 

연구 목적 무상대여가 금품수수?

하지만 2018년 9월 재물조사 때 문제가 불거졌다. 농진청에서 원심분리기 등을 지원하면서다. 해당 업체에 빌린 장비를 반납했는데 같은 해 상반기 재물조사 때 이미 대여 장비가 농진청 물품으로 잡힌 것이다. 운영지원과에서 승인 없이 무단으로 장비를 들여오고 반출했다고 보고 감사를 의뢰했다.
 
감사담당관실은 A연구실장·B연구사의 무상 대여를 금품수수로 결론 냈다. 순수한 연구목적이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 없었다. 농진청은 그해 11월 국무총리령인 ‘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고발 지침’을 근거로 고발까지 했다. 하지만 이듬해 8월 검찰로부터 ‘혐의없음’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9월 농촌진흥청 종합연찬관에서 열린 '직원조회'에서 직원들이 적극행정 실천다짐을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9월 농촌진흥청 종합연찬관에서 열린 '직원조회'에서 직원들이 적극행정 실천다짐을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300만원 이하 이득 봤다" 

그러자 농친청은 이번에는 변호사 자문과 감사처분심의위원회를 거쳐 ‘중징계’ 심의・의결 결정을 내렸다. 무상 대여지만 300만원 이하의 ‘경제적 이득’을 봤다는 수사 결과가 근거가 됐다. 경찰 수사단계서 감가상각을 기준으로 이런 이득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농진청은 인사혁신처에 중징계 처분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노조는 이와 관련해 성명서를 내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적극 행정하는 직원을 표적 감사해 형사고발을 했다”며 “이후 검찰에서 무혐의 결정이 나자 중징계를 요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진청은 지난해 9월 ‘직원조회’에서 직원들에게 적극행정 실천을 독려하기도 했었다. 
 

당사자, "벼랑 끝으로 내몬다" 

A연구실장은 “적극 행정은 요즘 장려 분위기인데 중징계를 받으면 앞으로 누가 업무를 수행하겠냐”며 “아무런 대가가 없고 연구성과까지 얻었던 사안이다. 정말이지 사람의 피를 말린다. 벼랑 끝으로 내몬다”고 하소연했다. A연구실장 등은 국민권익위원회에도 고충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농진청, "금품수수는 적극행정 면책 안돼" 

농진청 관계자는 “적극행정의 면책기준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어야 한다”며 “금품・향응 수수 등은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것으로 고려돼 적극 행정의 면책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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