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밥 넘기는 법 잊으신걸까, 요양원 그 분의 애잔한 식사

중앙일보 2020.06.17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45)

외출한 딸아이를 대신해 손자들을 앉혀놓고 밥상을 차린다. 유난히 식탐이 많은 둘째 녀석은 각자 그릇에 담긴 밥을 눈치껏 측량하며 가장 많은 한 그릇을 차지하고 흐뭇해한다. 수저를 움직이는 세 녀석의 모습이 거의 불도저다. 밥숟가락 가득 이것저것 얹고 동굴 들어가듯 입 안 가득 밀어 넣는다. 봉쇄당한 입안에서 볼이 터지도록 오물거리는 걸 보면,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라는 옛말이 어쩜 그리 딱 맞는지 부모가 되어봐야 알 수 있다. 한 입 들어갈 때마다 조금씩, 천천히, 꼭꼭 씹어 넘기라 잔소리한다. 듣는 둥 마는 둥 해도 한 수저에 한 박자로 박자 맞춰 주절거리다 보니 밥그릇이 금세 다 비었다.
 
이웃 어르신이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다. 직장 다니는 지인 내외가 지키고 보호하기엔 너무 힘이 들었다. 환경에 따라 힘들어하는 가족을 보면 나는 요양원 입소를 권해드린다. 나 역시 상황이 힘들어서 어머님을 요양원에 모셨고, 마음은 편하지 않았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때 요양원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볼 수 있었고, 또한 훗날 나의 상황이 안 좋아진다면 가게 될 요양원주소까지 노트에 적어 놓았다. 요양원에 모셔놓고 한동안 마음 울적하던 지인이 요즘은 찾아뵐 때마다 얼굴이 좋아지는 걸 보더니 마음 편안해 한다.
 
이웃 어르신이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다. 색색의 화려한 만찬을 외면하신다. 옆방에 계시던 할머니가 물끄러미 보시더니 당신이 먹던 죽을 들고 건너오셨다.[사진 Wikimedia Commons]

이웃 어르신이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다. 색색의 화려한 만찬을 외면하신다. 옆방에 계시던 할머니가 물끄러미 보시더니 당신이 먹던 죽을 들고 건너오셨다.[사진 Wikimedia Commons]

 
면회 가는 날, 치아가 안 좋은 어른이라 한 끼의 식사에도 이것저것 물렁물렁하고 드시기 좋은 찬거리를 장만하여 도시락을 싸서 길을 나선다. 깜박깜박 정신이 없으신 어른은 가족도 이웃도 알아보지 못한 채 허리 숙여 인사하며 연신 고맙다 하신다. 동문서답하듯 대화를 하면서도 얼굴빛이 좋아진 상태만으로도 마음이 덜 무겁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이것저것 챙겨 드리니, 어느 땐 맛있게 드시며 정신도 맑아지던 어르신이 오늘은 색색의 화려한 만찬을 외면하시며 입을 지퍼 채운 듯 꽉 다문다.
 
옆방에 계시던 할머니가 물끄러미 보시더니 당신이 먹던 죽을 들고 건너오셨다. 주객이 전도되어 할머니가 죽을 권하니 입을 벌리신다. 물 같은 죽을 한 수저 입에 넣고 오물오물 오랫동안 씹으신다. 아마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을 잊어버리신 듯하다. 죽 한 수저에 시간이 하염없이 가니 지인이 옆에서 재촉한다.
 
“아버지, 씹을 것도 없는데 꿀떡꿀떡 넘기세요.”
 
그러면서 눈을 맞춰 꿀떡꿀떡 응원가 부르듯 후렴한다. 그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듯 입을 오물거리며 바라보는 멍한 어르신의 눈빛에서, 당신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바쁘게 살아온 모든 짐 내려놓고 무념무상 세상에서 잠시 살다 가려거늘, 바쁠 것 없는 내게 재촉하는 그댄 누구신가? 꿀떡꿀떡 먹으라니…. 그것은 삶에 쫓긴 가난한 내 어매가 부뚜막에 걸터앉아 거친 보리밥 물에 말아 허기 면하려 드시던 그 모습 아니던가. 자식에겐 체할세라, 막힐세라,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 당부하던 그 목소리 지금에사 기억나네. 천천히, 천천히 꼭꼭 씹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진다.
 
 
할머니가 옆에서 할아버지 편을 드신다.
“이보게, 그거시 그렇게 쉽게 안 넘어가.”
꿀떡꿀떡하는 말로 옥신각신하는 걸 보던 요양사님이 한 말씀 하셨다.
“바쁘실 텐데 식사는 우리가 챙겨 드릴게요. 말씀만 나누시다가 가세요.”
 
생명이 있는 모든 만물은, 살아있을 땐 서로 도우며 살다 죽을 땐 스스로 죽는다. 인간만이 죽을 때까지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는 인생 여정이다. 병이 들면 살아온 역경의 시간은 묻혀버리고, 눈앞에서 일없이 얼쩡거리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 된다.
 
아이들의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는 시간, 번개같이 비운 밥그릇을 설거지하는데 둘째 놈이 나를 또 부른다.
 
“할머니, 다음 밥은 몇 시에 먹어요? 그전에 간식으로 맛있는 거 꼭 해주세요.”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