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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소비 중심된 ‘집’ “서울 안살고 외곽 큰집 이사 늘 것”

중앙일보 2020.06.17 05:01 경제 3면 지면보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디지털전환(DT) 혁명보다 우리의 삶을 더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롯데그룹이 임원 교육을 위해 배포한 ‘코로나19 전과 후(BC and AC)’를 쓴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장의 진단이다. 해외 석학이 이런 분석을 한 적은 많지만, 국내 기업들에도 포스트 코로나 대비가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 것을 실감케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소비 대변혁 ①홈]
잠만 자던 집, 일하고 노는 곳으로
가구·가전 리퍼브 매출 150% 늘어
집밥 늘며 식기세척기 3~5배 팔려
온라인 운동·취미 사이트 3배 성장

코로나19는 매일 시간을 들여 통근하던 일터, 습관적으로 반복했던 외식, 휴가 내고 떠났던 여행이 바뀔 수 있다는 화두를 던졌다. 루틴을 깬 경험을 갖춘 소비자가 등장해 새로운 습관, 새로운 룰을 만든다. 소비재 관련 기업이 당면한 충격과 변화는 막대하다. “쇼핑이 재창조됐다”는 말도 나온다. 각 기업은 이에 맞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공통적인 변화 키워드는 ‘호프’(HOF·Home·Ontact·Flow의 앞글자)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경제 불황과 집 중심 소비 확산으로 리퍼브 매장이 각광받을 전망이다. 4일 오후 반누리반품닷컴 천안점에서 소비자들이 가전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천안=전영선 기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경제 불황과 집 중심 소비 확산으로 리퍼브 매장이 각광받을 전망이다. 4일 오후 반누리반품닷컴 천안점에서 소비자들이 가전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천안=전영선 기자

‘집콕’에 맛 들인 소비자    

지난 4일 오후 천안 대흥동에 있는 리퍼브 매장(refurbished·반품·전시 제품을 손질한 상품) ‘반누리반품닷컴(이하 반누리)’ 천안점. 거리엔 인적이 드물어도 이곳엔 20~60대 손님들이 꾸준히 들어온다. 지하철(1호선)이 연결돼 있어 서울서 온 고객도 적지 않다. 리퍼브 산업은 반품된 가구와 가전, 주방용품에서 육아용품까지 집에서 쓰는 거의 모든 것을 싸게 팔고 있어 코로나19를 뚫고 급성장 중이다. 
 
반누리 16개 지점 중 천안점이 가장 규모가 크고(1983㎡ㆍ600평) 매출이 많다. 반누리는 6월 들어 2개 지점을 더 냈다. 유사한 사업을 시작하는 회사들도 많다. 천안점 김정구 사장은 “평일엔 200팀, 주말엔 800~1000팀이 매장을 찾아 줄까지 선다”고 말했다. 반누리의 5월 매출은 1월보다 150% 정도 늘었다. 내년 결혼을 앞두고 예비 남편과 함께 매장을 찾은 허수빈(27)씨는 “발품만 팔면 새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다”며 “이곳뿐만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전국 여러 리퍼브 매장을 꾸준히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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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소비 메가 트렌드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전문가들은 '삶의 중심이 된 집(Home)'을 말한다. 집은 이제 ‘작은 우주’다. 잠만 자는 집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노는 집으로 무한 확장 중이다. 반누리 같은 리퍼브 매장이 흥하는 것은 코로나 이후의 메가트렌드인 집과 장기불황형 경제 구조의 시대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집 중심 시대, 각 소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집 중심 시대, 각 소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집, 투자 대상에서 실존의 공간으로 

조기영 롯데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 상무는 “집이 소비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집의 기능이 세분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질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주말에 집중적으로 일어나던 소비는 온라인을 통해 평일로 분산되고, 집 밖에서의 지출은 집 주변의 상권으로 한정된다. 조 상무는 “원거리에서 살면서 더 쾌적한 환경, 좀 더 넓은 집에 사는 것을 택하는 쪽으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며 “사무실 수요가 줄면서 명동이나 을지로 등 도심의 상업용 부동산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도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으로 온 식구가 집에서 생활하게 돼 집의 필요 용량이 150%가량 늘다 보니, 1970년대 만든 4인 가족 기준 30평형 아파트는 맞지 않게 됐다”며 “앞으로 주거 사이즈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한동안 인기가 떨어졌던 외곽 대형 아파트의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가치(근거리 역세권ㆍ학군ㆍ투자가치)를 포기하더라도 큰 집을 선택할 소비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부산 기장군에 이케아 동부산점이 지난 2월 13일 개장하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사진 이케아]

부산 기장군에 이케아 동부산점이 지난 2월 13일 개장하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사진 이케아]

‘헬싱키 스타일’로 변한 한국 소비자

부동산 시장의 흐름 변화가 장기적 관찰 대상이라면, 홈퍼니싱과 생활 가전의 급성장은 현재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징후다. 한샘·현대리바트·이케아코리아의 1분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20~25% 증가했다. 집 꾸미기·홈데코 상품 기획관을 발 빠르게 편성한 쿠팡 등 주요 온라인 몰에서도 관련 매출이 증가했다. 11번가에선 2~6월 9일 시공 리모델링 카테고리의 성장은 전년 대비 578%에 달한다. 인테리어 앱인 오늘의 집 방문객도 코로나19 이후 50% 이상 증가(1월 이전 대비)했다. 오늘의 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의 류승완 광고ㆍ제휴 본부장은 “50대 이상 가입자도 많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한샘의 리모델링 패키지 판매 건수는 코로나 이전인 1월 대비 80.1% 증가했다. 전년 1분기 대비해서는 무려 286% 성장했다. 한샘은 리모델링 쇼룸 매장을 올해 중 26개에서 50개로 늘릴 예정이다. 인테리어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2500명 추가 채용해 다가올 인테리어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 
한샘닷컴 사이트에서 실제 시공 사례와 공사 후 모습을 가상현실(VR)로 둘러보는 모습. 사진 한샘

한샘닷컴 사이트에서 실제 시공 사례와 공사 후 모습을 가상현실(VR)로 둘러보는 모습. 사진 한샘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을 ‘헬싱키 스타일’이라고 소개했다. “날씨가 안 좋아서 집에 오래 갇혀 있는 시간이 많아, 집안을 꾸미면서 힐링을 한다”는 것이다.
 

6인용 식탁의 의미  

집안 가구의 중심으로 6인용 식탁이 등장한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재택과 온라인 수업으로 업무공간이 필요해지면서 집집마다 큰 식탁을 사들이게 됐다. 가구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후 판매된 식탁의 절반 이상이 6~8인용 대형 식탁이다. 기존에는 간편한 4인용 식탁이 90% 이상이었다. 까사미아에서는 식탁형 데스크와 책장, 상판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식탁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2~4월 관련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4% 증가했다. 까사미아 관계자는 “재택근무와 홈스쿨링이 장기화하면서 이 트렌드는 최소 2~3년은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 헬스쿠션 '엑스젤'의 39만원짜리 젤 쿠션은 일본서 2~3주에 한번씩 수입되자마자 팔려나가 항상 공급 부족이다. 엑스젤 판매사인 한국메사 박용범 본부장은 "코로나 이후 매출이 30% 늘었다"며 "소비의 축이 개인의 편안함, 집에서의 웰빙으로 이동한 듯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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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 주요 가전제품을 바꾸는 현상도 나타났다. 식기세척기가 대표적이다. 전자랜드에선 1~5월 식기세척기 판매가 무려 516%, 같은 기간 롯데하이마트에서는 280% 증가했다. 롯데하이마트 손기홍 생활2팀장은 “한번 써본 사람이 주변에 입소문을 내 돌밥돌밥(돌아서면 밥차리고) 기간이 끝나고도 식기세척기 판매 증가가 계속돼 대세 트렌드로 굳었다”고 전했다. 
 

집으로 수렴하는 소비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미국 월트디즈니컴퍼니의 희비는 ‘생활의 중심이 된 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극장과 테마파크 폐쇄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5% 줄어드는 와중에서도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의 가입자는 출범 6개월 만에 600만명이 됐다. 당초 4년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8분의 1로 단축했다. 넷플릭스는 1분기 가입자를 1600만명 늘려 2억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롯데하이마트에선 1~5월 식기세척기 판매가 280% 증가했다. 집콕으로 늘어난 가사노동을 줄이기 위한 가전제품으로 소비가 몰리고 있다. 사진 롯데하이마트

롯데하이마트에선 1~5월 식기세척기 판매가 280% 증가했다. 집콕으로 늘어난 가사노동을 줄이기 위한 가전제품으로 소비가 몰리고 있다. 사진 롯데하이마트

운동과 취미 활동도 집이 중심이다. 온라인 취미·자기계발 플랫폼인 '클래스 101'의 1분기 이용자는 전년 동기 대비 3배 증가했다. 500여개 강좌를 운영하는 이곳은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1월 누적 방문자가 이미 850만명에 달하고 있었다. 코로나19는 여가 활동이 디지털화로 되는 추세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이는 곧 오프라인 공간의 헬스장과 교습소의 몫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다. 
 
조 상무는 “의류·신발과 같은 ‘보여주기 위한’ 소비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세아상역, 신성통상 등 의류 주문자상표생산(OEM) 업체들은 지난 3월부터 인력 감축에 돌입했고 LF·삼성물산 등 패션 대기업까지 임원 급여 삭감과 무급 휴가를 단행해 비상 경영 체제로 운영 중이다.     
 
서용구 교수는 “코로나 19로 어중간한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하는 유통·소비재 기업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라며 “소비자 요구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에 맞춰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선·추인영·곽재민·문희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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