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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스포츠가 된 바둑, 그 명과 암

중앙일보 2020.06.17 00:04 경제 7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바둑이 스포츠가 될 줄은 진정 몰랐지만 곡절 끝에 스포츠가 됐다. 바둑은 2009년 55번째 종목으로 대한체육회에 정식 가맹했다. 하나 겉옷이 바뀌었을 뿐 속까지 바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순위제 상금 연간 0원 기사 속출
시니어대회 등 타개책 될지 주목

바둑이 스포츠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돈’과 관련이 깊다. 바둑은 국위선양에 크게 기여를 해 그 공로로 조남철, 조치훈, 조훈현, 이창호 등 4명의 프로기사가 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 바둑에 국가지원은 한 푼도 없었다. 국가기관에 소속이 돼 있지 않아 법에 따라 지원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바둑은 소속을 찾아야 했다. 어디 소속되는 게 옳을까. 일본의 후지사와 슈코 9단은 바둑이 뭐냐고 묻자 “예든 도든 잡기든 본인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그의 머릿속에도 스포츠는 없었다.
 
현실적으로 바둑이 선택 가능한 곳은 대한체육회와 예총 두 곳이었다. 엘리트 위주로 간다면 예술이고 대중성을 중시한다면 스포츠였다. 바둑은 스포츠로 방향을 잡았다. 바둑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누가 이기는지 승부를 낸다. 이 점은 스포츠와 가깝고 예술과는 거리가 있다.
 
하나 체육학 교수들은 “체육은 큰 근육을 써야 한다. 바둑돌을 나르는 것은 큰 근육과 무관하다”고 반발했다. “뇌도 근육이다. 가장 큰 근육이다”라는 최신이론이 등장했고 “바둑이 스포츠면 고스톱도 스포츠”란 조롱도 이어졌다. 때마침 마인드 스포츠(mindsports)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브릿지·체스·바둑 3종목의 보드게임이 올림픽에서도 일부 인정받게 됐다. 바둑은 결국 대한체육회 가맹에 성공했고 이듬해인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한국이 3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바둑은 도약하는 듯했다. 군 면제 혜택은 전보다 줄었지만 앞으로 올림픽도 가능하다는 희망이 있었다. 여기까지 바둑과 스포츠의 결합은 성공적이었다.
 
후유증은 좀 서서히 찾아왔다. 바둑은 10대 소년부터 70대 노인까지 함께 앉아 시합을 벌인다. 바둑이 자랑하는 노소동락의 근사한 풍경이었다. 바둑에 은퇴란 없다. 죽을 때까지 바둑을 둔다는 것은 프로기사의 당연한 권리요 염원이었다. 한데 스포츠가 되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떻게 먹고 사느냐.
 
‘대국료’란 세 글자가 화두로 떠올랐다. 기사는 공식 바둑을 두면 승패 불문하고 대국료를 받아왔다. 예술인이 공연을 하고 돈을 받듯 그렇게 받아왔다. 그러나 스포츠가 되면서 대국료를 주는 대회는 점점 사라졌다. 스폰서 입장에선 세계대회를 열면 중국, 일본까지 수백명이 참가하는데 일일이 다 대국료를 준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골프처럼 64강이나 32강 컷오프제도가 도입되었고 순위에 따른 상금제가 점차 대세로 굳어졌다. 1년 내내 상금이 0원인 기사가 속출하게 됐다.
 
많은 기사들이 대국료가 있던 옛날을 그리워하며 ‘스포츠’가 초래한 현실에 갈등하고 반감을 표시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익부 빈익빈에 따른 복지제도, 은퇴문제 등 해결 불가능한 난제들이 조용히 덩치를 키우고 있다.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차민수 5단이 프로기사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지난 2월이다. 그는 ‘대국료 있는 대회 다수 신설’ 등을 공약으로 내걸어 크게 지지를 받았다. 차회장은 코로나로 올스톱된 상황에서도 30대와 40대만 출전하는 ORO 3040바둑챔피언십과 50대 이상만 출전하는 농심 백산수배 시니어세계바둑 등 두 개의 대회가 가을에 시작된다고 전한다. 상금을 10~20대가 싹쓸이하는 현실에서 대국료를 나누기 위해 우회로를 찾은 것이다.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가장 비정한 프로스포츠에서 이런 모습은 바둑이 유일하다. 스포츠가 된 지 어언 11년, 바둑은 과연 스포츠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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