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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내 알제?” 딸 왕따 시킨 친구 찾아간 엄마, 아동학대일까

중앙일보 2020.06.16 12:00
[연합뉴스]

[연합뉴스]

1년간 딸 따돌린 친구 찾아가 “니 내 알제?”

A씨는 2017년 6월 말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가 9살 딸을 따돌린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폭력을 신고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B양이 1년에 걸쳐 딸을 따돌렸다고 인정했다. 화장실이나 운동장에서 놀이 중 딸을 수차례 따돌리고, 친구들에게 험담하며 딸과 놀지 말라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B양을 아예 다른 반으로 옮기기를 원했지만 학폭위는 ‘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보복행위 금지’를 명령했다. 이에 A씨는 학교 측의 동의를 얻어 학교 수업을 직접 참관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딸과 함께 학교에 간 A씨는 B양에게 “야, 내가 누군지 알제. 나 이 친구 엄마다. 앞으로 딸 건드리지 말고, 아는 체도 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점심시간에는 B양이 앉은 소파 옆자리에 앉아 그를 지켜봤고, B양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음 날 A씨는 등교하는 B양을 향해 “야, 니 내 아는데 왜 인사 안 해”라고 말했고, 교실 앞 복도를 걸어 다니며 B양을 계속 쳐다봤다. 또 자신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학교폭력범은 접촉금지!!!”라는 글을 남겼다.
 
자신을 학교폭력 피해자의 엄마라고만 생각했던 A씨는 그로부터 약 1년 반 후 법정에 서게 됐다. B양을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였다.
 

1심 재판부 “정서적 아동학대, 명예훼손” 

1심 재판부는 A씨가 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B양에게 지속해서 접근했고, 이로 인해 B양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등 심리적 위협을 느낀 것에 비추어 이를 정서적 학대행위로 봤다. 또 같은 반 학부모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있는 학부모들은 A씨의 카톡 상태 메시지를 볼 수 있는데, B양을 ‘학교폭력범’이라고 언급한 건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했다.  
 

2심 재판부 “아동학대는 아니지만 명예훼손은 인정” 

그러나 2심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아동학대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다. 정서적 학대행위란 아동의 마음 자세나 태도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것에 현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로, 아동을 때리거나 유기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행위라고 봤다. 2심 재판부는 “다소 부적절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딸에 대한 추가적인 학교폭력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므로 정서적 아동학대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반 학부모들이 가입해 수시로 대화를 주고받는 카톡방에 학폭위 처분 내용과 관련된 상태 메시지를 보이도록 공개한 건 비방할 목적으로 사실을 드러내 B양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명예훼손도 무죄 취지 파기환송 

대법원은 다시금 다른 판결을 내놨다. A씨의 혐의를 모두 무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재판장 이동원 대법관)는 A씨의 명예훼손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2심 재판부에 사건을 다시 살펴보라며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학교폭력범’이라는 단어는 학교폭력을 저지른 사람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학교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A씨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것이 B양을 지칭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또 이 문구가 B양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하기에 충분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실을 드러냈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A씨의 정서적 아동학대 부분을 유죄로 봐야 한다는 검사 측 주장에 대해 “무죄로 본 2심 재판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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