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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 어쇼어' 포기…'괴짜 방위상' 고노, 日 발칵 뒤집다

중앙일보 2020.06.16 11:46
일본 정부가 육상배치형 탄도미사일 요격 체계인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 배치 계획을 돌연 중단하면서 그 파문이 커지고 있다. 
 

고노 "비합리적 투자 미련없이 접자"
미·일동맹 상징적 사업 전격 중단
"차기 총리 겨냥한 승부수" 해석도
"아베가 허가", 정권 내부도 당황
자민당도 "무책임, 총리가 설명해야"
아베 정권 레임덕 증거, 타격 불가피

전날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의 갑작스러운 발표를 일본 언론 대부분이 16일 1면 톱으로 실었다.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 [로이터=연합뉴스]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 [로이터=연합뉴스]

 
고노는 '배치 프로세스의 정지'라고 표현했지만, 언론들은 일제히 '백지화'로 받아들였다.  

 
일본 정부는 방위성의 결정을 토대로 곧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주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이지스 어쇼어' 도입 사업의 최종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다며 2017년 미국산 '이지스 어쇼어'의 도입을 결정했다.  
 
이후 4500억엔(약 5조640억원)에 달하는 배치 비용과 10년 이상 수천억엔이 들어가는 시설 수리비에 대해 "너무 비싸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배치 예정지(아키타현과 야마구치현) 주민들의 반대 속에서도 배치 작업을 강행해온 아베 정권엔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고노가 내세운 계획 중단의 이유는 기술적인 한계에 따른 비용과 시간문제였다. 특히 요격 미사일을 발사할 때 사용하는 추진 보조장치(부스터)를 훈련장 내에 낙하시킬 수 있는지를 기술적으로 확신하기 어렵다고 했다. 
 
부스터를 훈련장 내에 떨어뜨릴 수 없다면 배치 지역 주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프트웨어만 손을 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하드웨어까지 개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결국 중단을 결정했다고 고노는 설명했다. 
 
하드웨어까지 개량하려면 10년 이상의 기간과 2000억엔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분석의 결과였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미·일 동맹 심화의 상징’으로 애지중지했던 이 사업의 중단엔 '괴짜 방위상' 고노의 개인적인 기질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 신문 보도에 따르면 고노는 올해 들어 미국으로부터의 도입이 결정된 장비들의 목록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도입을 결정했을 당시보다 가격이 크게 오른 장비들을 대상으로 '도입을 단념할 경우 대체 가능한 선택지가 없는지'를 주로 체크했다. 예산 낭비를 막고, 방위비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이지스 어쇼어'의 부스터 낙하 문제가 제기되자 고노는 "합리적이지 않은 투자다. (이지스 어쇼어가 아닌) 다른 방식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국방 담당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미련 없이 포기하자"며 결단을 내렸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고노는 이달 4일과 12일 두 차례 걸쳐 아베 총리를 만나 "합리적이지 않다"고 이해를 구했고, 결국 동의를 받아냈다고 한다. 평소 ‘고독한 이리’로 불릴 만큼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로, 튀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 고노 다운 발상이었다.
 
지난해 9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고노 다로 방위상이 일본 자위대 고관들과의 만남에 앞서 사열을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9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고노 다로 방위상이 일본 자위대 고관들과의 만남에 앞서 사열을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번 결단을 놓고는 "차기 총리 관련 여론조사에서 3~4위권을 달리는 고노가 승부수를 던진 것"이란 해석도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아베 총리가 고노의 제언을 마냥 유쾌하게만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아베 정권의 간부는 고노에 대해 “제 정신이 아니다”라는 비판까지 쏟아내고 있다. 
 

정권 핵심부에선 ‘이번 발표는 고노 방위상이 개인적으로 ‘오버’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그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일 관계에 미칠 악영향이 걱정인 외무성도 당연히 발칵 뒤집어졌다. 
 
또 16일 열린 자민당의 국방부회·안보조사회 합동 회의에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란 비판이 속출했고, 아베 총리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방위상을 지낸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안보조사회 회장은 "'이지스 어쇼어'를 포기한다면 대신 (헌법상 보유가 가능한지 논란이 있는) '적 기지 공격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미국의 신형 탄도미사일 방어체계인 이지스 어쇼어. [록히드마틴 홈페이지]

미국의 신형 탄도미사일 방어체계인 이지스 어쇼어. [록히드마틴 홈페이지]

 
일본 정치권에선 '아베 정권이 레임덕 상태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위가 어찌 됐든 2017년 12월부터 아베 총리가 정력적으로 주도해온 사업이 백지화됐다. 
 
또 아베 총리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이 '이지스 어쇼어' 배치 예정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총리의 위신이 크게 실추됐다”는 주장이 자민당 내부에서 쏟아지고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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