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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위스키 마실 때도 디캔터가 필요할까

중앙일보 2020.06.16 11: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72)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물건, 디캔터(Decanter). 와인병에서 옮겨 담아 와인에 남아있는 찌꺼기를 거르거나 와인의 공기 접촉을 늘리기 위해 사용한다. 디캔터에 옮겨진 와인은 공기에 닿는 면적이 늘어 산화가 시작되는데, 이를 ‘와인을 호흡시킨다’고 한다. 와인 속으로 공기가 들어가면, 산화와 증발이 시작되면서 향과 맛이 두드러지게 된다. 또 와인의 산미와 아황산 나트륨 등을 날려서 맛을 부드럽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 디캔터는 와인에만 필요한 물건일까? 위스키는 디캔터가 필요 없을까?
 
와인과 디캔터. [사진 pixabay]

와인과 디캔터. [사진 pixabay]

 
위스키는 온도나 디캔팅 여부를 와인보다 덜 따지는 술이지만, 디캔터로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술이다. 위스키를 디캔터에 담으면 아름다운 색을 즐기기 좋다. 대부분의 위스키에는 라벨이 붙어있어서 위스키 색을 온전히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된다. 투명한 디캔터에 위스키를 담으면, 아무 장애물 없이 색을 바라볼 수 있다. 투명한 잔에 따라도 위스키 색에 집중할 수 있지만, 병에 가득 담긴 위스키가 잔에 조금 담긴 위스키보다 눈에 더 들어온다.
 
대부분의 위스키는 오픈과 함께 마시기 편하지만, 와인 못지않게 ‘산화’가 필요한 위스키도 있다. 알코올 도수가 50도 이상인 위스키는 공기 접촉이 필요하다. 높은 알코올 도수의 위스키는 알코올 향이 너무 강해서, 이 향이 위스키의 좋은 향을 덮어버린다. 그래서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위스키를 디캔터에 담아두면 너무 강한 알코올 향은 날려버릴 수 있다. 알코올 향이 날아간 자리엔 숨어 있던 위스키의 향이 찾아온다.
 

디캔터에 담긴 위스키. [사진 시나노야]

 
디캔터는 위스키에 대한 편견을 버려준다. 값싼 블렌디드 위스키라도 디캔터에 담아서 마시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값싼 위스키’라는 시선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좋은 건, 디캔터에 위스키를 담아둔 뒤에 어떤 위스키를 담았는지 잊어버리는 것이다. 3만 원짜리 위스키가 30만 원짜리 위스키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디캔터는 아주 많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소재도 다양하다. 유리, 도자기, 세라믹, 크리스털… 가격은 몇만 원 짜리부터 수 십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특히 고급 크리스털 디캔터는 매우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일부 위스키 브랜드는 고급 디캔터를 갖길 원하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디캔터 한정 위스키를 출시하고 있다. 디캔터가 위스키보다 비싼, 배보다 배꼽이 더 비싼 경우도 있지만, 좋아하는 위스키 브랜드 디캔터는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버번 위스키의 크리스탈 디캔터 한정 제품. [사진 브라운포맨]

버번 위스키의 크리스탈 디캔터 한정 제품. [사진 브라운포맨]

 
위스키는 오감으로 즐기는 술이다. 위스키를 마실 때 디캔터를 쓰면, 그냥 위스키를 마실 때보다 더 많은 감각이 깨어날지 모른다. 디캔터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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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김대영 위스키 인플루언서 필진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 위스키 덕후이자 싱글몰트 위스키 블로거다.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살기도 했다. 위스키와 위스키 라벨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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