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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성당서 코란 읽었다, 에르도안 국뽕카드에 그리스 반발

중앙일보 2020.06.16 05:00
1500년 전 비잔틴 건축을 대표하는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성소피아)를 두고 터키와 그리스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과거 그리스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이곳에서 최근 코란을 읽는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면서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관문인 이스탄불은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튀르크에 함락되기 전까지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다. 그 중심에 상징과도 같은 아야 소피아가 세워졌다. 그리스정교회 성당이었던 아야 소피아는 모스크로 바뀌었다가, 1935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관문인 이스탄불은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튀르크에 함락되기 전까지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다. 그 중심에 상징과도 같은 아야 소피아가 세워졌다. 그리스정교회 성당이었던 아야 소피아는 모스크로 바뀌었다가, 1935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박물관을 모스크로 환원 시도
지방선거 패배 후 지지층 결집
민심 이용한 일종의 '국뽕' 전략
천연가스 시추 문제도 갈등 뇌관

◇‘콘스탄티노플 함락’ 기념식서

지난달 29일 터키 정부는 아야 소피아에서 비잔틴(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 함락 567주년 기념식을 치렀다. 이때 참석한 이맘(종교지도자)이 코란을 낭독한 것이다.  
 
행사의 성격에서부터 코란 낭독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그리스 외교부는 “코란 낭독은 전 세계 기독교 신자들의 믿음에 대한 모욕”이라고 즉각 비난했다.  
 
이에 질세라 터키 외교부도 “그리스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수도에 모스크가 없는 나라”라면서 “코란 낭독으로 동요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불관용을 잘 드러낸다”고 반격했다.
 
지난달 29일 아야 소피아에서 콘스탄티노플 함락 567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맘(종교지도자)이 코란을 낭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아야 소피아에서 콘스탄티노플 함락 567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맘(종교지도자)이 코란을 낭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야 소피아에서의 코란 낭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슬람주의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집권 이듬해인 2015년 4월 아야 소피아에서 코란 낭독 행사를 강행했다. 
 
터키 건국 이후 세속화 과정에서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가 아닌 박물관으로 성격을 바꾼 지 8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터키의 이슬람 단체들은 사원으로의 회귀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었다. 이런 민심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코란 낭독을 한 것이었다.  
 

◇이스탄불 선거 패배로 가속화  

그리스와 갈등이 커질수록 이런 경향은 점점 더 강해졌다. 지난해 3월 25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당시 그리스 총리가 터키 코앞에 있는 아가토니시 섬을 방문하기 위해 헬기로 이동하던 중 터키 전투기가 위협 비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오스만튀르크(터키의 전신)로부터 독립전쟁(1821~29년)을 시작한 날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지 기반인 이슬람 보수층 표심을 겨냥해 벌인 일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에르도안은 선거 과정에서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 환원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 9일 국무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 9일 국무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에 앞서 같은 달 15일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모스크 테러사건도 이런 움직임에 불을 질렀다. 테러범이 자신의 테러선언문에서 “성소피아의 미나렛(이슬람사원 첨탑)을 없애고 콘스탄티노플을 다시 기독교 품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내용을 적은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안 그래도 박물관이란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의 뺨을 때려준 격이었다.  
 
그런데 정작 선거 결과가 문제가 됐다. 최대 격전지이자 경제 중심지인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재선거까지 치르는 접전 끝에 야당에 패하고 만 것이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에르도안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패배”라고 짚었다.  
 
지난해 6월 23일(현지 시각) 치러진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에서 야당인 공화인민당(CHP) 후보 에크렘 이마모을루가 승리하자 27일 지지자들이 시청 앞에 모여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6월 23일(현지 시각) 치러진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에서 야당인 공화인민당(CHP) 후보 에크렘 이마모을루가 승리하자 27일 지지자들이 시청 앞에 모여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총리 시절을 포함해 14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오던 에르도안의 입장에선 뭔가 반격 카드가 필요했다. 결국 에르도안은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일종의 ‘국뽕’ 카드인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 환원을 다시 꺼내 들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에르도안은 지난 3일 여당인 정의개발당(AKP)과 모임에서 “모스크화 작업에 들어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 달 2일엔 행정법원이 이 문제를 둘러싼 판결을 할 예정이다.  
 

◇그리스 EEZ서 천연가스 시추     

그리스는 1832년 독립할 때까지 400년간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양국 사이에 쌓인 감정이 하나둘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함께 사는 키프로스 섬 문제다.  
 
터키는 터키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974년 키프로스 섬에 병력을 파병, 83년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을 세웠다. 
 
이후 그리스계가 중심인 키프로스 공화국과 남북으로 분단돼 계속 대치하고 있다. 현재 국제사회는 북키프로스를 인정하지 않는다. 유엔이 승인한 키프로스는 2004년 유럽연합(EU)에도 가입했다.  
 
최근엔 자원 개발을 두고 키프로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터키 정부가 키프로스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천연가스 광구 개발을 위한 탐사 시추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7월 9일 터키의 탐사 시추선이 터키 해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키프로스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서 천연가스 광구 개발을 위한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7월 9일 터키의 탐사 시추선이 터키 해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키프로스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서 천연가스 광구 개발을 위한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키프로스 정부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고 격렬히 반발하고, EU가 제재안을 채택하는 등 터키를 압박했지만 에르도안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에르도안은 “북키프로스의 권리가 강탈당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터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달 말 그리스의 EEZ 내에서도 천연가스 탐사를 시작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터키가 실제 행동에 들어갈 경우 그리스와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 회귀 문제와 더불어 천연가스 개발이 터키ㆍ그리스 양국 분쟁의 살아있는 뇌관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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