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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에 떠맡긴 투명페트 분리…서울 '늑장'에 전국이 밀렸나

중앙일보 2020.06.16 05:00
노원구 아파트(환경공단 모니터링 대상 단지)에 설치된 투명페트 전용 수거함과 안내 포스터. 김정연 기자

노원구 아파트(환경공단 모니터링 대상 단지)에 설치된 투명페트 전용 수거함과 안내 포스터. 김정연 기자

 
“사모님, 다음부터는 이거(페트병) 껍데기를 떼셔야 해요.” 
“학생, 이거는 여기 넣으면 안 돼.”
  
지난 8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단지 주차장. 재활용품 수거 구역에 서 있던 경비원 김모(66)씨가 재활용품을 내놓는 주민들에게 비슷한 당부를 거듭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마대에서 음료병을 꺼내 ‘투명 폐페트병 분리배출 시범사업’이라고 적힌 마대에 옮겨 담기도 했다.
 
노원구 아파트(환경공단 모니터링 대상 단지) 내 다른 투명페트수거함. 이곳을 담당하는 경비원 A씨는 문구용 칼을 아예 목에 걸고 다니며 끊임없이 라벨을 제거하고, 주민들에게도 계속해서 "라벨 떼서 버리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의 투명페트 수거함에는 라벨이 제거된 페트의 비율이 높았다. 김정연 기자

노원구 아파트(환경공단 모니터링 대상 단지) 내 다른 투명페트수거함. 이곳을 담당하는 경비원 A씨는 문구용 칼을 아예 목에 걸고 다니며 끊임없이 라벨을 제거하고, 주민들에게도 계속해서 "라벨 떼서 버리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의 투명페트 수거함에는 라벨이 제거된 페트의 비율이 높았다. 김정연 기자

 
김씨 곁에 있던 관리사무소 직원 서모(74)씨는 문구용 칼을 가지고 주민들이 내놓은 페트병의 라벨을 벗기고 있었다. 서씨는 “라벨을 떼고 가져오는 주민은 30~40%밖에 되지 않는다”며 “시간이 있을 땐 내가 떼지만, 350세대 분량을 혼자 할 때는 시간상 다 못 뗄 때도 잦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 아파트 단지는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의 무색 페트병 별도배출 시범사업의 모니터링 대상이다. 투명한 페트병만 모아 고품질의 재생원료를 만들기 위한 정책의 확산을 위한 ‘테스트베드’격인 곳이다.
 

투명페트 재활용, 세척·라벨 제거가 핵심인데… 

국내 비축된 페트 재생원료는 그간 라벨과 유색페트 등이 섞여 품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됐다. 연합뉴스

국내 비축된 페트 재생원료는 그간 라벨과 유색페트 등이 섞여 품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됐다. 연합뉴스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 중 페트(PET,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는 따로 모아 재활용할 경우 의류용 섬유 등 쓰임새가 다양하다. 그간 국산 재활용 페트는 일본산 재생페트보다 ‘하(下)품’으로 취급됐다. 색이 포함된 페트와 투명한 페트가 섞이고, 페트병에 음료나 이물질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환경부는 지난 2월부터 서울‧부산‧천안‧김해‧제주‧서귀포 등 6개 지자체에 '무색 페트병 별도배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투명 페트만 모으는 과정의 관건은 페트 겉면을 둘러싼 라벨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페트병의 라벨과 뚜껑은 PET가 아닌 다른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지는데, 페트와 섞이면 재활용원료의 순도가 떨어지고 품질이 낮아진다. 요즘엔 라벨을 PET 재질로 만들기도 하나, 색이 들어갔다면 이 역시 제거해야 한다.
 
성북구 한 아파트 (환경공단 모니터링 단지)에 설치된 투명페트 수거함의 내용물. 대부분 라벨이 제거되지 않고, 내용물이 씻기지 않은 페트도 보인다. 김정연 기자

성북구 한 아파트 (환경공단 모니터링 단지)에 설치된 투명페트 수거함의 내용물. 대부분 라벨이 제거되지 않고, 내용물이 씻기지 않은 페트도 보인다. 김정연 기자

 
액체 내용물이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세척도 중요하다.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유용호 사무관은 “재활용 과정에서 세척을 하긴 하지만 이물질이 많이 묻어 있을수록 세척수 자체가 오염되고, 물을 많이 갈아야 하므로 재활용 비용이 늘어난다”며 “배출 전, 음료나 이물질이 눌어붙지 않았을 때 깨끗이 씻어서 내는 게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경비아저씨'에 달린 정책 성과

위 사진과 같은 단지의 다른 수거장의 투명페트 수거함. 라벨, 뚜껑, 플라스틱 고리를 모두 제거한 완벽한 배출 예시의 투명페트를 유일하게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이날 돌아본 4곳의 수거함 중 완벽한 예시대로 배출한 페트는 이곳에서 발견한 생수페트병 6개뿐이었다. 이곳을 담당하는 경비원은 A씨는 1분에 한 번씩 쉴새없이 페트병 배출 자루를 점검했다. 김정연 기자

위 사진과 같은 단지의 다른 수거장의 투명페트 수거함. 라벨, 뚜껑, 플라스틱 고리를 모두 제거한 완벽한 배출 예시의 투명페트를 유일하게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이날 돌아본 4곳의 수거함 중 완벽한 예시대로 배출한 페트는 이곳에서 발견한 생수페트병 6개뿐이었다. 이곳을 담당하는 경비원은 A씨는 1분에 한 번씩 쉴새없이 페트병 배출 자루를 점검했다. 김정연 기자

 
하지만 기자가 이틀간 시범 사업 대상 아파트를 방문해보니 주민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주민 중엔 투명페트는 일반 플라스틱 배출 마대가 아닌 다른 마대에 담아야 하는 것을 모르는 이가 많았다.
 
그나마 한 달간 경비원들이 제대로 안내한 아파트의 라벨 제거율이 높은 편이었다. 노원구 한 아파트의 경비원 이모(66)씨는 "뉴스를 자주 보는 세대는 그래도 알던데, 연세 있는 분들은 잘 몰라서 라벨을 안 뗀 채로 가지고 나오신다"며 "직접 말로 알려드리면 다음부터는 떼오신다"고 말했다. 주민 임모(39)씨는 "엘리베이터의 포스터를 보고도 몰랐는데, 경비 아저씨가 말해주셔서 알았다. 그다음부터는 떼서 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단지에서도 경비원의 노력에 따라 라벨 제거율이 달랐다.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한 아파트 내의 두 수거장 중 한 곳은 경비원이 페트병 수거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다른 한 곳은 매번 페트병 수거 자루를 들여다보며 점검했다.  
 
성북구 한 아파트(환경공단 모니터링 단지)에 설치된 일반 플라스틱 배출함에 섞여있는 투명페트들. 이 구역은 투명페트 분리, 라벨제거, 세척 등이 모두 잘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김정연 기자

성북구 한 아파트(환경공단 모니터링 단지)에 설치된 일반 플라스틱 배출함에 섞여있는 투명페트들. 이 구역은 투명페트 분리, 라벨제거, 세척 등이 모두 잘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김정연 기자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천안시 역시 아파트마다 상황이 달랐다. 시민 조모(32)씨는 “몇 달 전부터 투명페트 분리수거 안내가 붙어있었지만 다들 잘 지키지 않는 것 같다”며 “가끔 부모님 댁에 가면 그 아파트는 분리수거가 잘 되고 있어, 편차가 큰 것 같다”고 전했다.
 
단지 내 방송, 엘리베이터 포스터로 홍보가 용이한 아파트에 비해 소규모 빌라는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용산구에서 만난 빌라 경비원 A씨는 “라벨 제거는 바라지도 않고 투명페트만 따로 담아주기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전했다.
 

홍보 잘된 곳도 라벨 제거율 41%에 그쳐

한국환경공단에서는 지난 2월부터 서울 시내 6개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투명페트 분리배출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지난 5월까지 수거 결과를 보면 투명페트 배출 마대에 수거된 총 12톤 110㎏ 페트병 중 라벨을 뗀 페트병은 5톤 50㎏으로 약 41%에 불과했다. 유색페트 등 이물질도 1톤 379㎏, 11%나 됐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모니터링 대상이라 2월부터 비교적 홍보가 잘 된 단지에서 이 정도면, 다른 단지는 라벨 제거 비율이 더 낮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성북구 한 아파트(환경공단 모니터링 단지) 재활용품 수거 구역 한켠에 큰 현수막으로 투명페트 분리배출을 안내하고 있었지만, 보고도 잘 모르는 주민이 꽤 있었다. 김정연 기자.

성북구 한 아파트(환경공단 모니터링 단지) 재활용품 수거 구역 한켠에 큰 현수막으로 투명페트 분리배출을 안내하고 있었지만, 보고도 잘 모르는 주민이 꽤 있었다. 김정연 기자.

 
주민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탓에 정책 당국과 수거업체, 아파트 입주민 사이에 끼인 경비원들의 고충이 커졌다. 서울 성북구의 아파트 경비원 이모(72)씨는 "자정 넘게 페트병을 정리하고, 다음날 새벽 4시에 다시 나와서 또 정리해야 한다. 분리수거 말고도 다른 일이 많은데 거의 밤을 새울 지경"이라고 어려움을 전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측은 "전국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지상파TV 등을 통한 홍보를 준비하고 있다"며 "지자체 시범사업 기간에는 지자체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해 해당 지자체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출량 가장 많은 서울의 늦장 "코로나 탓에…" 

김해시는 폐 페트병을 가져오면 종량제봉투 혹은 봉사시간으로 교환해주는 사업을 진행했다. 김해시 관계자는 "호응이 좋아서 공동주택에 '출장수거'를 나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자료 김해시

김해시는 폐 페트병을 가져오면 종량제봉투 혹은 봉사시간으로 교환해주는 사업을 진행했다. 김해시 관계자는 "호응이 좋아서 공동주택에 '출장수거'를 나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자료 김해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6개 지자체 중 서울을 제외한 5개 시는 2월부터 공공 배출장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분리배출을 안내하고, 공공수거 구역의 페트 배출량을 집계하는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김해시는 폐 페트병 10개를 가져오는 이에겐 종량제봉투 1장, 봉사시간 인정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공공수거 대상이 아닌 아파트를 방문해 페트병을 수거하는 ‘출장 투명페트 교환사업’도 진행했다. 김해시 관계자는 “투명페트 수거를 몰랐던 주민도 교환사업을 통해 알게 되는 등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반면 시범사업 6개 시 중 인구와 폐기물 배출량이 가장 많은 서울은 5월에서야 아파트 포스터 배포 등 본격적인 홍보 활동이 시작했다. 애초 환경부는 유색‧무색 페트병을 따로 배출하는 시스템이 있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준비가 부족한 것을 고려해, 서울시에 마대자루 1만 7000장과 비닐봉투 17만매를 제공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지난 4월까지 배포한 수량은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지난달인 5월에야 물품 배포와 포스터 부착에 적극 나서면서 본격적인 분리배출이 시작됐다. 서울시는 3월 25일자 공문에서 ‘코로나 사태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시범운영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4.15 총선 이후 시‧구 동시 집중 홍보, 5월 첫째 주부터 배출 일괄 시행 및 수거‧선별 점검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초 7월 본격 시행 예정이었던 공동주택(아파트) 투명페트 수거사업은 12월로 시기를 늦췄다. 환경부 관계자는 "인구도 가장 많고 배출도 가장 많은 서울이 준비가 덜 됐는데 무작정 시작하기는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투명페트 분리배출을 위해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사람들을 만나 대면 홍보가 중요한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대면 홍보를 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 등에서 적극적으로 따라주지 않은 측면도 있고, 재난지원금 등으로 바쁜 동사무소와 자치구에 강하게 요구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던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12월 시행까지 전 자치구에서 분리배출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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