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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미국 대선의 한반도 나비 효과

중앙일보 2020.06.16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미국 역사상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12명에 불과하다. 최근 100년으로 시간대를 좁히면 3명뿐이다. 허버트 후버, 지미 카터, 조지 부시다. 리처드 닉슨의 사임으로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까지 포함하면 4명이지만, 그는 자력으로 대통령이 된 게 아니기 때문에 경우가 다르다. 미국의 미래학자이자 경제전문가인 제이슨 솅커는 최근 출간한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재선에 실패한 후버, 카터, 부시 등 3명의 공통점은 중간선거 때 실업률보다 대선 때 실업률이  더 높았던 점이라고 지적한다.
 

트럼프 재선 가도 코로나 적신호
북한의 초강경 대남 협박 공세는
트럼프의 커지는 불안감 이용해
미국을 협상으로 유인하는 책략

대공황을 겪은 후버 행정부 경우 중간선거가 있었던 1930년 말 3.2%였던 실업률이 대통령 선거가 있던 32년 말에는 16.9%로 치솟았다. 카터의 경우 중간선거 당시 5.9%였던 실업률이 2년 후 대선 때는 7.5%로 올라갔다. ‘아버지’ 부시의 경우에는 6.2%에서 7.3%로 상승했다. 92년 대선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선거구호로 내건 빌 클린턴은 부시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경제지표이고, 그중에서도 으뜸은 실업률이라는 게 솅커의 주장이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을 그가 낮게 보는 이유도 실업률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간선거가 있었던 2018년 11월 실업률은 3.2%로 유례없이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뜻밖의 코로나19팬데믹으로 상황이 돌변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경제 셧다운의 여파로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4월 14.7%까지 폭등했다. 지난달에는 13.3%로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대선 전에 중간선거 때 수준으로 실업률이 떨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올 하반기 미 경제의 V자형 회복을 전망하면서 실업률도 올 연말이면 10%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의 예상대로 되더라도 중간선거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높은 실업률 숫자를 들고 트럼프는 재선에 도전해야 한다.
 
216만 명이 감염돼 12만 명이 사망한 미국은 세계 최악의 코로나19 피해국이다. 경제 회복을 위해 서둘러 이동제한을 푼 까닭에 2차 대유행 가능성도 크다. 대선 전에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백인 경찰의 흑인 살해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폭동과 시위도 큰 악재다. 종교를 이용한 정치쇼에 군인을 들러리로 세우고, 폭동 진압에 연방군까지 동원하려 하자 군인들이 반기를 드는 군심(軍心) 이반 현상까지 나타났다. 경쟁자인 조 바이든과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면서 트럼프의 초조감은 커지고 있다. CNN 여론조사에서 55 대 41로, 14% 포인트 뒤진 것으로 나타나자 트럼프는 CNN에 ‘가짜 결과’를 철회하고 사과하라는 충격적 요구를 했다. 그만큼 초조하다는 뜻이다.
 
미 대선 판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평양 지도부가 트럼프가 처한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미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 북한이 대북전단을 빌미로 초강경 대남(對南) 협박에 나선 것은 트럼프의 불안 심리를 잘 이용하면 꽉 막힌 한반도 정세의 판을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만난 지 2년이 지났지만 평양 입장에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국이 앞서 움직이지 않으면 한국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현실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면 전환을 위해 북한은 남한을 때려 트럼프의 관심과 섣부른 대응을 유도하는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트럼프가 움직일 때까지 한반도 긴장 수위를 계속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무력도발에 나서면 한국도 맞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원칙대로 원점타격에 나서야 한다. 자칫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트럼프에게 또 다른 대형 악재다. 대선 때문에 초조해진 트럼프가 ‘전쟁보다 평화’를 명분으로 김정은에게 덥석 담판 카드를 내밀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이유다.
 
트럼프가 아니면 톱다운 방식의 북·미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 바이든이 백악관 주인이 되면 북·미 정상 간 빅딜은 물 건너 간다. 김정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빅딜을 위한 마지막 시도로 트럼프를 직접 담판으로 끌어들이는 유인책을 쓰고 있다. 대남 협박을 여동생인 김여정에게 맡긴 것도 트럼프와의 담판을 염두에 둔 역할 분담으로 보인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모욕적인 협박에도 문재인 정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다. 하노이 담판이 결렬되는 순간 한국이 북·미 사이에 끼어들 여지는 사라졌다. 지금 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직접 김정은에게 강력히 자제를 요구하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서는 한·미 동맹에 입각해 단호히 대처한다는 원칙을 한·미 정상이 공동으로 확인하고 천명하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커지는 트럼프의 불안감과 초조감이 한반도에 어떤 나비 효과를 일으킬지 주목된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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