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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의 이코노믹스] 월 32만원 지급해도 기존 복지제도 개편과 증세 불가피

중앙일보 2020.06.16 00:14 종합 24면 지면보기

기본소득 논쟁의 안과 밖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가위 ‘기본소득 백가쟁명’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돼온 논쟁에 정치권이 가세함으로써 기본소득은 대한민국 복지의 핵심 화두가 됐다. 특히 주로 진보 진영이 주장해왔던 기본소득 도입 주장에 더해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소득 카드를 꺼내 들면서 기본소득은 이제 여야 모두의 핵심 복지정책 공약으로 자리를 굳혀가는 모양새다.
 

복지국가 근본 틀 바꾸는 논의
핵심 복지정책 공약으로 떠올라
관건은 최소 200조원 재원 조달
개념과 필요성 찬찬히 따져봐야

원래 정책이라는 것이 정치 바람을 타면 그 필요성이나 타당성을 꼼꼼히 따져볼 겨를도 없이 현실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다 그렇게 정책화됐다. 기초연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개 이런 정책은 반대하는 쪽에서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지적했지만 결국 현실화됐다. 사실은 어떤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정책은 정치과정에서 통과될 확률이 높아진다. 왜냐고? 포퓰리즘에 영합한다는 이야기는 대중이 선호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정치 과정에서 대중의 선택은 절대적이다. 기본소득도 그런 경로를 밟을까 걱정이다. 찬반의 의견은 차치하고 우선 그 개념과 필요성에 대해 찬찬히 따져보는 게 중요한 이유다.
 
먼저 개념을 보자. 기본소득지구연맹(Basic Income Earth Network)은 기본소득을 ‘자산조사나 근로조건 등 어떤 조건도 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으로 정의한다. 기본소득은 ▶정기적 ▶현금 지급 ▶개인 단위 ▶모든 국민에게 지급되는 보편성 ▶자산조사나 근로조건 등이 필요 없는 무조건성 ▶충분성 등 모두 6개의 특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 실시한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은 썼지만, 일회성 지급이고 용처가 가맹점 등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엄밀히 보면 기본소득은 아니다.
  
일하지 않아도 받는다는 게 특징
 
스위스가 2016년 기본소득 도입을 놓고 국민투표에 나섰을 때 제네바에 내걸렸던 대형 포스터. ’당신의 소득을 책임져 준다면 어떠시겠습니까?“라는 내용이다. 스위스 국민은 부결을 선택했다. [AP=연합뉴스]

스위스가 2016년 기본소득 도입을 놓고 국민투표에 나섰을 때 제네바에 내걸렸던 대형 포스터. ’당신의 소득을 책임져 준다면 어떠시겠습니까?“라는 내용이다. 스위스 국민은 부결을 선택했다. [AP=연합뉴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의 개념은 19세기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성장했던 자본주의 체제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형성됐다. 즉 산업혁명의 여파로 대다수 노동자가 공장 노동자로 전환됐고 실업 등의 문제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러한 사회적 장치가 없이는 노동자의 불만이 높아지고 그 결과는 사회주의 혁명일 수도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복지국가의 개념이다.
 
현재 복지국가의 근본인 사회보험도 그렇게 성립됐다. 사회보험의 시초는 1880년대에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산재보험·의료보험·노령연금이다. 당시에 비스마르크도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보험 정책을 제시했다. 산업화 시기에 임금노동자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시작된 셈이다. 사회보험은 임금노동자가 처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즉 평상시에는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노동을 하지 못할 위험에 처하면 생계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국민연금은 노령으로 노동을 못 하게 됐을 때, 고용보험은 실업으로 생계가 어려워질 때 방패막이가 된다.
 
복지국가의 시작이 임금근로자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시작됐다면, 기본소득은 근로조건을 요구하지 않는 정책이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의 기본 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현재 복지국가의 근본 틀을 흔들 정도로 과연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필요한가?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는 쪽은 ‘그렇다’고 답하며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불평등 해소에는 큰 도움 안 돼
 
기본소득 제안 및 시범사업

기본소득 제안 및 시범사업

첫째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노동 없는 미래’가 오리라는 점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활용으로 노동 수요가 줄어들 것이고, 일하지 않는 (혹은 일하고 싶지만 못 하는) 계층에 대한 복지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의 복지체제와는 다른 체제가 요구되고 그에 가장 합당한 것이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이유는 증가하는 불평등의 문제다. 단순한 절대빈곤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의 확대가 문제고 그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상당히 타당한 이유인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선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대폭 줄 것이라는 예측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1, 2, 3차 산업혁명 시기에도 그런 우려는 컸다. 하지만 매번 오히려 일자리는 늘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일자리의 총량이 준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유형이 변해온 것이다. 즉 4차 산업혁명도 기존의 생산직 일자리 등은 줄 수 있지만, 인공지능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 업종은 오히려 대폭 더 늘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 것이라며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하나의 가설이지 사실은 아니다.
 
기본소득을 통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불평등은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문제고 해결돼야 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불평등 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모두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불평등 완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본소득의 수준이다. 기본소득의 원칙 중 하나는 충분성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충분한 수준인가? 기존의 기본소득 논의에 의하면 ‘충분한 수준’은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GDP 수준이 2000조원 수준이라고 보면 그 25%인 500조원을 5200만 국민에게 나누어주는 주면 충분한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 그 시나리오에 따르면 1인당 80만원이 된다.
 
한국이 현재 전체 공적 복지지출에 사용하고 있는 액수가 GDP의 약 11% 수준이다. 현재의 전체 사회복지 지출의 두 배 이상을 ‘충분한 수준’의 기본소득에 사용해야 한다. 타협안으로 제시되는 GDP의 10~15%를 지급하는 안은 국민 모두에게 월 32만~48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이 또한 200조~3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하다. 기존 복지제도의 대폭 개편과 함께 증세가 없이는 현실적으로 마련하기 어려운 규모다.
 
보수·진보 모두에 매력적인 기본소득
기본소득의 특징 중 하나는 진보와 보수가 모두 찬성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는 ‘절대적인 평등’이라는 이념에서 기본소득제도를 찬성한다. 보수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기본소득에 우호적이다. 실제로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시장 경제 옹호 경제학자였던 시카고대학의 밀턴 프리드먼 같은 교수도 일종의 기본소득제도를 제안한 적이 있다. 다만 그 전제조건은 기존의 모든 복지제도를 대폭 정리해 기본소득으로 통합한다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복지체제를 운영하는 큰 정부가 아니라 작은 정부가 가능해질 것이고, 국민은 받는 현금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택해서 사용하리라는 구상이다.
 
이러한 보수·진보 모두의 관심을 반영하듯 여러 국가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제안과 시범사업이 실시됐다.
 
그중 가장 파격적인 것이 2016년에 국민투표에 부쳐진 스위스의 기본소득 안이다. 하지만 그 안은 유권자의 약 77%가 반대해 부결됐다. 그 이유는 재원마련 책이 없다는 것과 기존의 복지가 축소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기본소득 논쟁에서 분명한 점은 아직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완전한 기본소득을 실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핀란드의 기본소득제도도 실업수당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검토됐던 것이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은 아니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제안해 화제가 되는 기본소득 안도 그 내용을 보면 재원마련의 문제 때문에 월 1만7000원 수준의 지급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본소득의 ‘충분성’에 한참 못 미치는 용돈 소득에 그치는 안이다.
 
GDP 대비 공적 복지지출 규모로 본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은 OECD 평균(21%)의 약 절반 수준이다. 아직은 상당히 취약한 복지국가라는 얘기다. 상당히 성숙한 북구의 복지국가에서도 아직 경험이 없는 기본소득이 마치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국가의 궁극적인 목표처럼 포장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복지 행정으로 시카고대에서 박사 학위를 했고,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회장과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을 거쳤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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