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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농사꾼, 해남 땅끝마을서 마늘 대신 바나나 키운다

중앙일보 2020.06.16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직 푸른 바나나들이 가지에 매달려 익어가고 있었다. 해남지역 첫 바나나 농장 주인 신용균(74)씨는 “바나나가 노랗게 익어 수확하기 시작하는 7월이면 해남도 바나나 산지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이상기온 대응, 고소득 올릴 방법”
지자체마다 아열대작물 재배 도전
문경은 재배단지 세우고 기술교육
장성엔 국립 아열대작물 실증센터

신씨가 바나나를 키우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상기온’ 때문이다. 광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2019년 12월부터 2월까지 광주·전남 겨울철 평균 기온은 4.8℃로 1973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따뜻했다.
 
국산 바나나 재배는 한국에서 가장 따뜻한 제주도 지역에 집중돼 왔다. 신씨는 “아열대 작물을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려면 가장 중요한 조건이 기온”이라며 “겨울에도 비닐하우스 온도를 18℃ 이상 유지해야 하는데 해남은 내륙에서 가장 남쪽이라 다른 곳보다 따뜻해 입지조건이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씨의 비닐하우스를 찾은 11일은 비가 내린 탓에 약간 선선한 날씨였다. 하지만 바나나가 자랄 수 있는 생육조건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러도 가동하지 않았다. 가을철로 접어드는 9월에도 해가 저문 뒤에만 난방시설을 가동하면 된다.
 
신용균씨(오른쪽) 부부가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자신의 바나나 비닐하우스에서 7월 출하를 앞둔 바나나 상태를 살피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신용균씨(오른쪽) 부부가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자신의 바나나 비닐하우스에서 7월 출하를 앞둔 바나나 상태를 살피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국산 바나나는 수입산보다 친환경으로 재배하면서 신선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신씨는 “바나나 소비자가 외국산을 꺼리는 이유가 농약과 방부제 우려 때문”이라며 “국산은 장기 운송이 필요하지 않아 농약 등을 쓰지 않으면서 나무에서 아주 노랗게 익은 바나나를 수확한다”고 했다. 신씨는 “13살부터 농사를 시작해 60년 동안 벼·마늘·양파·호박·배추 등 안 키워본 작물이 없지만, 가격 등락 폭이 너무 심한 탓에 수지타산이 안 맞아 그만뒀다”고 했다.
 
그는 “배추를 키워 팔 때도 가격이 폭락하면 5t 트럭에 한가득 채워 농산물 도매시장에 보내도 1대당 20~30만원밖에 수익이 나지 않았다”며 “인건비 떼고 나면 무조건 손해 보는 장사”라고 했다.
 
해남군은 농민에게 패션프루트·애플망고 등 아열대 작물 재배를 권장하고 있다. 신씨도 해남군으로부터 바나나를 기르는 데 필요한 농업기술 교육과 예산 지원을 받아 바나나 재배에 도전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농민들이 아열대 작물로 고소득을 올리고 배추나 마늘·양파 등 특정 품종에만 생산이 집중돼 가격 폭락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막을 방법이 아열대 작물 재배 등 품종 다변화다.
 
전문가들은 기후만 맞는다면 아열대 작물의 국내 생산이 충분할 것이라 본다. 박재옥 전남농업기술원 과수연구소 박사는 “토양 조건은 아열대 지방과 국내의 큰 차이가 없어 기후적인 조건이 중요하다”며 “연간 일조량도 이미 바나나가 생산 중인 제주도 1936시간과 비교해 전남 완도가 352시간, 고흥이 799시간 더 높아 조건도 맞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해남군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지자체들이 아열대 작물 재배에 도전한다. 바나나의 경우 전남 강진군에서 재배 중이고 제주도는 10여 농가가 20.2㏊ 규모의 바나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경남도 6.5㏊, 경북 1.1㏊ 등 전국적으로 점차 바나나 재배 농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경북 문경시는 지난 11일 산양면 반곡리 일원에 3600㎡ 면적의 아열대 작물 재배 하우스를 완공했다. 이곳에서 애플망고, 천혜향, 황금향, 레드향 등 아열대 작물을 키우고 아열대 작물 재배를 희망하는 농업인을 교육한다.
 
전남 장성군에는 3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국립 아열대 작물 실증센터’가 들어선다. 아열대 작물을 연구하고 키우는 연구동과 온실 등 20㏊ 규모의 시설이다. 장성군은 아열대성 기후변화 연구에 적합한 내륙지역이라는 점을 입지 배경으로 내세웠다.
 
해남=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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