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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 바꿔버린 자식들···할머니는 3년간 찜질방 전전했다

중앙일보 2020.06.15 06:00
"자식들에게 버려진 88세 새우등 할머니의 처절한 몸부림을 아시나요?"
 

'가족'에 의해 일어나는 노인학대 89%

지난해 5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6명 자녀를 둔 88세 한 할머니 이야기였다. 청원자는 자식들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다 나무에서 떨어져 허리가 새우등처럼 휘어진 할머니 이야기를 적었다. 함께 살던 할아버지가 사망한 뒤 3년간 노인학대 보호기관과 찜질방을 전전한다는 내용이었다. 
청원인은 "자식들로부터 방임과 유기, 재학대로 노인학대 보호기관에 재입소했다"며 "자식들이 할머니 몰래 이사하고 전화번호도 바꿔버려 할머니는 아들과 딸 집도,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적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어르신 학대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15일 세계 노인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학대 통계를 처음으로 작성한 2005년엔 서울지역 노인학대는 590건이었다. 2010년 863건, 2015년엔 1061건으로 증가해 지난해엔 1963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단순 비교하면 2005년 대비 2.3배 어르신 학대가 늘어난 셈이다. 서울시는 "서울시 노인학대 신고접수는 2007년 최저치인 375건이었으나 점차 증가해 15년간 연평균 972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어르신 학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늘어나는 어르신 학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어르신 학대…'가족'이 89.1%에 달해

이번에 발표한 자료는 서울시가 운영 중인 노인 보호 전문기관 운영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서울시는 2004년 남부노인 보호 전문기관을 시작으로 서울에 총 3곳의 노인 보호 전문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24시간 상담 전화 등을 통해 학대를 당한 어르신을 보호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학대를 받은 어르신 5명 중 4명은 여성(81.5%)인 것으로 조사됐다. 어르신을 학대한 사람은 가족(89.1%)이었다. 아들(37.2%)과 배우자(35.4%), 딸(11.9%) 순으로 가족에 의한 학대가 많았다. 학대 피해 노인이 자녀나 배우자와 동거하고 있는 경우(73.1%)가 많은 데 따른 결과였다. 어르신을 학대한 행위자는 남성(78.3%)이 많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어르신 학대 가운데 89.1%가 가족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 서울시]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어르신 학대 가운데 89.1%가 가족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 서울시]

학대유형별로는 정서적 학대(49.2%)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론 신체적 학대(40.3%)가 뒤를 이었다. 서울시는 "노인학대는 지속해서 발생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한 달에 한 번 이상 발생이 67.5%에 이른다"고 밝혔다. 학대 지속기간은 5년 이상이 38.5%로 가장 많았다. 1년 이상 5년 미만은 33.6%로 2위를 차지했고, 1개월 이상 1년 미만 학대가 유지된 것도 15%에 달했다. 서울시는 "1년 이상 학대가 지속하는 경우가 72.1%로 학대가 반복,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는 서울시 인구 중 만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2005년 7.2%에서 지난해 15.2%로 늘었다고 밝혔다. 2005년 65세 이상 인구는 73만1349명이었으나 지난해 147만8664명으로 증가했다. 서울시는 "고령화로 사회와 가족의 부양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부양부담자의 스트레스나 부담을 가중시켜 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노인학대 문제 해결을 위해 신고 중심의 노인학대 대책을 지역사회 기반의 '예방'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학대 피해 노인을 위한 쉼터 등의 보호를 강화하고, 어르신 인권에 대한 교육 등도 정비하기로 했다. 또 시립노인시설에 '노인 인권 옴부즈맨'을 도입해 노인학대 행위가 적발된 시립시설에 대해서는 시설운영 재위탁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진우 서울시 복지기획관은 "노인학대 예방을 위해 기존 제도를 되짚어보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개선해 노인학대 없는 서울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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