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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미래를 묻다] 과학수사, 4차 산업혁명을 만나다

중앙일보 2020.06.15 00:27 종합 24면 지면보기

디지털·바이오 수사 혁명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과학수사가 일취월장하고 있다. 지난해 경찰은 30여 년 전 경기도 화성에서 10건의 연쇄 살인을 저지른 이춘재를 잡아냈다. 피해자 내의에 남겨진 희미한 유전자(DNA) 흔적을 분석할 정도로 과학수사가 발전한 덕분이었다. 최근에는 16년 전 강원도 삼척에서 70대 노인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내기도 했다. 범인은 사건 이듬해 또 다른 절도 범죄를 저지르다 사망했지만, 흐릿한 쪽지문을 증강해 살려내는 과학수사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사망한 절도범의 혈액을 보관했던 국과수의 끈기도 중요했다.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활용해
흐릿한 쪽지문으로도 범인 파악
K-방역에 쓰인 동선 추적 기술
범죄 정황 밝히는 유력한 수단

‘K-유전자 감식’ 알린 서래마을 사건
 
첨단 과학수사의 핵심은 DNA 감식이다. 범죄 현장에서 찾아낸 혈액이나 침, 또는 모근이 붙어 있는 모발 등에서 뽑아낸 유전자를 이용한다. 유전자 감식의 위력은 2006년 서래마을 영아 살해·유기 사건을 통해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인 부부가 집안 냉동고에서 영아 2명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신고한 후 출국해버렸다. 그런데 경찰이 DNA 감식을 통해 사망한 영아들이 부부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심한 임신 거부증을 앓던 부인이 저지른 참혹한 범죄였지만, 우리 경찰의 유전자 감식 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도록 해준 사건이기도 했다.
 
부모에게 물려받는 DNA는 가장 확실한 개인 식별 수단이다.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남들과 조금씩 다른 DNA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30억 개에 이르는 ‘염기서열’을 모두 읽어낼 수는 없다. 염기서열의 분량은 단순히 프린트만 해도 A4 용지 60만 장이 필요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라픽=최종윤

그라픽=최종윤

신속한 감식이 필요한 과학수사에서는 염기서열을 꼼꼼하게 읽어낼 여유가 없다. 그 대신 DNA에서 같은 염기가 반복되는 ‘단일연쇄반복(STR, Short Tandem Repeats)’이라는 부위의 화학적 특징을 활용한다. 현장에서 수거한 아주 적은 양의 DNA를 화학적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증폭시켜주는 ‘중합효소 연쇄반응(PCR, Polymerase Chain Reaction)’이 핵심이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코로나19 진단키트에서 사용하는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법이다.
 
DNA에 앞서 과학수사에서 사용했던 신원 확인 수단은 손가락 지문 감식이다. 본격적으로 범죄 수사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부터였다. 지문으로 범인을 특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사람은 영국의 프랜시스 골톤이었다. 진화론을 정립한 찰스 다윈의 외사촌이었고,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신봉했던 엉터리 우생학을 처음 주장한 생물학자이기도 했다.
 
지문은 흔히 활처럼 휘어진 ‘궁상문’, 나선형의 ‘와상문’, 말굽처럼 굽어진 ‘제상문’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지문으로 범인을 특정하려면 지문을 구성하는 가는 선들이 갈라지거나, 합쳐지거나, 끊어지는 등의 세부적인 특징을 파악해야만 한다. 지문 감식 전문가들이나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었다.
 
과학수사의 역사는 13세기 송(宋)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송의 사법 관료였던 송자(宋慈)가 당시의 시신 부검과 독극물 감별 방법을 모아 『세원집록(洗寃集錄)』을 편찬했다. 서양의 부검은 16세기께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의 과학수사는 대부분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용의자의 자백이 필요했다. 잔인한 고문도 마다할 수 없었고,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도 많았다.
 
현대의 과학수사는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다. 과학적 증거를 이용하면 굳이 강압적인 방법으로 자백을 받아낼 필요가 없어진다. 첨단 과학수사가 사회정의를 바로잡고, 인권을 지켜주는 수단이 되는 셈이다.
 
미래의 과학수사에서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인터넷·모바일과 같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실시간 자동화가 키워드가 될 것이다. 범죄 현장의 증거 수집에서부터 자동화된 분석의 결과를 활용해서 범인을 특정하는 모든 과정이 자동화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이 과학수사에서도 디지털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는 뜻이다.
 
이미 과학수사의 디지털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의 수작업에 의존하던 지문 감식은 자동화가 완성됐다. 블랙박스 영상에 사용하는 이미지 증강기술까지 결합하면 희미한 쪽지문으로도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
 
범죄의 정황도 훨씬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CCTV와 신용카드·교통카드 사용 실적을 이용하면 범인이 범죄 현장을 오가는 과정을 확실하게 알아낼 수 있다. ‘K-방역’에서 사용하는 감염자의 동선 추적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데이터베이스(DB)도 과학수사의 발전에 꼭 필요한 디지털 기술이다. 연쇄 살인범 이춘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경찰이 구축해놓았던 DB 덕분이었다. 범인의 DNA에서 찾아낸 유전정보를 활용해서 눈동자나 머리카락의 색깔을 추정하여 몽타주를 만드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수사관의 보조 도구
 
과학수사가 만능일 수는 없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섣불리 사용하거나, 과학적 증거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오히려 과학수사를 망쳐버리는 독이 될 수 있다. 과학수사의 모든 과정에 대한 전문가의 철저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노련한 수사관의 경험에서 우러난 직관은 절대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의 과학수사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이는 질병 진단에서와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X레이나 CT·MRI를 분석해 질병 여부를 판독한다. 그러나 최종 진단은 여전히 노련한 의사의 몫이다. 과학수사와 질병 진단에서 활용하는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은 인간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수단일 뿐이다.
 
과학수사의 오류도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모씨에 대한 재심이 진행되는 이춘재 8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학수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주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과학수사의 오류…여중생 살인 사건의 전말
올림픽 열기로 들떠 있던 1988년 9월 충남 태안에서 열세살 여중생을 살해한 범인으로 잘못 지목되었던 윤모씨에 대한 재심이 시작됐다. 작년 여름 강화된 DNA 검사로 이춘재가 진범으로 밝혀진 덕분에 20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씨도 한을 풀 수 있게 됐다.
 
대체 윤씨는 왜 누명을 썼던 걸까. 당시 2년 동안 여덟 차례나 연이어 벌어진 연쇄살인으로 궁지에 몰렸던 경찰이 낯선 과학수사 기법에 주목했던 것이 문제였다. 현장에서 수거한 체모를 통해서 범인의 혈액형이 B형이고, 체모에 중금속인 타이타늄이 일반인보다 300배나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듬해 7월 경운기 수리공이었던 윤씨를 검거했고, 윤씨에게서 직접 채취한 체모의 동위원소 분석 결과가 현장 증거물과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도 확보했다. 대법원은 과학적 감정을 근거로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그런데 이춘재가 검거되면서 30년 전 경찰의 과학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언론에 ‘동위원소 분석’이라고 알려진 국과수 분석은 사실 소재의 품질 관리에 사용되는 ‘중성자 방사화 분석’이었다. 강력한 중성자 빔을 10시간이나 쬐어줘야 하는 까다로운 분석법이다. 그러나 모발의 동일인 여부를 판단하는 과학적 기준은 분명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에 대한 맹신이 애꿎은 윤씨에게 누명을 씌워버렸다.
 
동위원소 분석만 부실했던 것이 아니었다. 8차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진 이춘재의 혈액형은 엉뚱하게도 O형이었다. 경찰이 추정했던 B형은 엉터리였다. 사건 현장에서 수거했던 체모가 범인의 몸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중성자 방사화 분석에 사용한 체모의 정체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재심이 시작된 지금, 검찰은 황당한 억지를 부리고 있다. 경찰이 엉뚱한 시료의 분석값을 범인의 것으로 바꿔치고, 윤씨의 체모 분석값 또한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한다. 검찰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조작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검찰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당시의 어설픈 감정서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윤씨를 법정에 세운 게 검찰이었다.
 
윤씨 재심의 재판부는 국가기록원에서 압수한 체모 2점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모양이다. 체모가 이춘재의 것으로 판명되면 재심이 훨씬 쉬워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체모가 이춘재의 것이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어차피 정체도 불확실한 체모의 분석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윤씨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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