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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귀여워해줬지"···日, 징용사과 대신 군함도 왜곡 파문

중앙일보 2020.06.14 19:02
--이지메(집단 따돌림)가 있었느냐.  
"아니 귀여워해 줬지, 손가락질 등은 안 당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때
"징용 피해자 기리겠다" 약속해놓고
막상 공개된 전시장 왜곡 증언 가득
"조선인들 우유배달해 먹어" 증언도
교도 "역사 수정주의 비판 불가피"
경직된 한일관계에 또 다른 악재

 -채찍질은.
"노동시켜야 하는데, 채찍질하겠냐."
-맨몸으로 노동했나.
"(맨몸이 아니라) 아버지 탄광작업복에 재가 많이 묻어나왔다."
-돈은 잘 받았나.
"잘 받았다. 돈 떼어먹었으면 그냥 뒀겠냐."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나가사키현의 하시마. 멀리서 본 섬의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로도 불린다. [서승욱 특파원]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나가사키현의 하시마. 멀리서 본 섬의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로도 불린다. [서승욱 특파원]

 
일본 정부가 도쿄도(東京都) 신주쿠(新宿)구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마련한 산업유산정보센터, 이곳에 '스즈키 후미오(鈴木文雄·사망)의 증언'이라며 전시한 내용이다.
 
재일교포 2세라는 스즈키의 발언은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들 중 한·일 양국에서 가장 논란이 컸던 나가사키(長崎)시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에 관한 내용이다.
 
스즈키는 하시마 탄광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말을 토대로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대우가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쏟아냈다. "아버지의 이런 증언은 맞다. 자신감을 갖고 한 것"이라고도 했다.
 
하시마에서 두부 가게를 했다는 일본인은 "조선인들이 우유를 정기적으로 배달시켜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급여를 제때에 정확하게 받았다는 대만인의 말도 소개됐고, 그의 월급봉투가 전시됐다.
 
"영화 군함도를 보고 화가났다. 모두 거짓말이라고 들었다"는 일본인의 증언도 있었다. 
 
일반 관람을 하루 앞두고 14일 내·외신 기자들에게 사전 공개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물들이 당초 설립 취지와는 달리 하시마 강제 징용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예상된다.
 
이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밝혔던 입장, 유네스코가 일본에 요구했던 조치 사항과 전혀 다른 내용이어서 한·일 관계에 또 다른 악재가 될 전망이다.
  
2015년 7월 ‘산업혁명 유산’ 23개 시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당시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 많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로 노역했다. 정보센터 설치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사토 쿠니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고 약속했다.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는 (유네스코의) 권고를 충실히 반영하겠다”라고도 했다.  
 
당시 ‘징용 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한국을 고려한 조치였다.
일반 관람을 앞두고 14일 내외신에 공개된 일본 정부 산업유산정보센터. [공동취재단]

일반 관람을 앞두고 14일 내외신에 공개된 일본 정부 산업유산정보센터. [공동취재단]

 
14일 사전 공개된 센터의 입구엔 국제무대에서 강제 징용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며 희생자를 위해 정보센터를 설립하겠다는 5년 전 사토 대사의 발언이 소개돼 있다.
 
하지만 1078㎡(약 326평)에 달하는 전시장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어떻게 산업유산을 일궈냈느냐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산업유산정보센터내에서 7개 화면을 동원해 멀티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공간.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산업유산정보센터내에서 7개 화면을 동원해 멀티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공간.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65인치 스크린 7장을 연결한 화면으로 각 시설을 설명하고, 메이지 유신의 역사와 근대 산업의 발전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하시마를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형화면도 있었다.  
 
한국 관련 전시는 차별의 존재를 부인하는 증언들, 그외엔 자신들이 발령했던 징용령에 대한 설명과 한·일청구권협정 내용 정도였다.  
하시마의 생존자들을 소개하는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하시마의 생존자들을 소개하는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본인의 의사에 반한 강제노역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취재진에게 나눠준 72페이지 분량의 안내 책자에도 해당 내용은 없었다. 청구권 협정을 함께 소개한 건 강제 징용 보상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센터의 전시 내용은 5년 전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했던 약속과는 방향이 달랐다. 강제징용을 반성하고 희생자를 기리기보다 오히려 ‘차별은 없었다’는 점을 부각하는 내용이었다.  
 
"왜 희생자를 기리는 내용이 없느냐"는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센터측은 "희생자는 조선인, 대만인, 일본인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학대를 받았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일본 측의 의도와 관련해 교도통신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하고 있을 당시 군함도엔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무도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를 부인하는) 정부의 대응은 이런 정설을 ‘자학사관’으로 보고 이에 반론을 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사실을 덮는 역사수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일본 유력 언론의 간부는 “그간 일본의 강제 징용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활동을 해온 단체(산업유산국민회의)에 센터의 운영을 위탁했을 때부터 일본 정부의 의도는 명확히 드러나 있었던 셈”이라고 했다.  
 
하시마는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다. 섬의 모습이 군함을 닮아 ‘군함도(軍艦島)’로도 불린다. 19세기 후반 미쓰비시 그룹이 석탄 채굴을 위해 이곳을 개발했다. 탄광 사업으로 큰 수익을 올렸으나 1974년 폐광됐다.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하시마 탄광엔 조선인 600명이 끌려가 122명이 사망했다. 
 
15일부터 일반 관람을 시작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입구.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15일부터 일반 관람을 시작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입구.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센터측은 이날 내외신의 취재 인원을 극소수로 제한했다. 30분간에 걸친 홍보 영상을 먼저 본 뒤에야 자신들이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른 취재를 허용했다. 
 
직원들이 취재진을 따라다니며 영상이나 사진 촬영을 못 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했다.
 
센터는 지난 3월 31일 개관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그동안 휴관 상태였다. 
 
외교부는 15일 주일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를 초치해 이 문제에 대해 항의하고 수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도쿄=서승욱·윤설영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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