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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40년 묶였던 공덕 땅, 20년 재연장에···땅주인 "양아치냐"

중앙일보 2020.06.14 05:37
서울 공덕오거리, 이 빌딩 숲 한가운데(전광판 아래) 공원으로 40년간 묶여 있는 땅이 있다.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 도시공원 일몰제에 따라 해제될 줄 알았지만, 서울시는 이 땅을 다시 묶었다.

서울 공덕오거리, 이 빌딩 숲 한가운데(전광판 아래) 공원으로 40년간 묶여 있는 땅이 있다.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 도시공원 일몰제에 따라 해제될 줄 알았지만, 서울시는 이 땅을 다시 묶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오거리 큰 길가에 40년간 공원으로 묶여 있는 땅이 있다. 공덕동 250번지 일대에 위치한 공덕공원(1606㎡)이다. 주변이 속속 고층건물로 바뀌어도 이 땅만 옛날 그대로, 저층의 낡은 건물 밀집지역으로 있다. 효성그룹 본사 맞은편 이 낡은 건물에는 선거 때마다 선거사무소가 자리 잡는다. 정치권에서 현수막 명소로 소문났다. 오거리 모퉁이에 있어 사방에서 잘 보이는 덕이다.  

서울 공덕오거리 선거 현수막 명당자리
40년전 정비구역 내 공원으로 지정
공원 일몰제 앞두고 해제되나 했더니
서울시 땅 용도 바꿔 "일몰 20년 재연장"
땅주인들 "이게 행정인가, 양아치인가"

 
엄밀히 상업용지인데 공원으로 지정돼 40년간 묶인 이 땅의 역사는 이달로 끝날 줄 알았다. 1999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뒤 20년이 넘도록 조성하지 않은 공원ㆍ도로 등이 다음달 1일자로 일괄 해제를 앞두고 있어서다. 일명 도시공원 일몰제다. 공공이 인허가권을 무기로 더는 사유재산 침해를 하지 말라고 만든 제도다.  
 
하지만 토지주들은 올 초 서울시로부터 “시효가 20년 더 연장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7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결과 공원 용지가 공공공지로 변경됐고,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일몰까지 20년을 다시 세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공공공지는 공원과 같은 기반시설이다. 하지만 공원과 다르게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다. 일종의 유휴부지다. 서울시는 입지 좋은 이 땅에 청년임대주택을 짓기를 원하고 있다. 토지주 권 모 씨는 “공원으로 지정돼 40년간 사유재산을 침해받았는데 자기네들 쓰고 싶은대로 용도를 바꿔 또 제한하다니…. 당하는 입장에서 이게 행정인가 싶다. 양아치보다 더 심한 행패 같다”며 토로했다.
공덕공원의 모습. 기업은행 전광판 아래 삼각형 땅이다. 한은화 기자

공덕공원의 모습. 기업은행 전광판 아래 삼각형 땅이다. 한은화 기자

서울시와 마포구는 일몰제를 앞두고 이 땅의 용도를 입맛대로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핸디캡이 있는 땅”(마포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핸디캡 역시 공공이 씌웠다.  
 
서울시는 1979년 마포로 1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 정비구역을 지정했다. 지하철 5호선 마포역부터 애오개역까지 이르는 대로변 일대를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땅은 이 재개발 사업을 위한 근린공원으로 지정됐다. 민간 개발업자가 마포로 1구역에서 재개발 사업으로 빌딩을 짓고자 할 때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축 연면적의 비율)을 높여주는 대신 이 공덕 공원용지를 매입해 공공에 기부채납하게 했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은 진척이 없고, 공덕 공원은 공원으로 매입되지 못한 채 40년째 공원으로만 묶여 있다. 

재개발 사업이 5년이 지나도 진척이 없으면 해제토록 2012년 법이 바뀌었지만, 소급적용은 안 된다. 즉 2012년 이전에 지정된 정비구역은 해당 사항이 없다. 공공이 작심하고 정비계획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 저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난해 서울시는 공원용지를 공공공지로 바꿨다.  
기업은행 앞 공덕동 255 일대가 공덕공원 부지다. 공덕역 5번 출구와 맞닿아 있다.

기업은행 앞 공덕동 255 일대가 공덕공원 부지다. 공덕역 5번 출구와 맞닿아 있다.

“긴 세월 동안 공공에서 차라리 매입해 공원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서울시와 마포구는 공원 매수의 의무가 없다는 답변만 했습니다. 민간에서 사들여 기부채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땅만 챙기겠다는 공공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심지어 기부채납도 받기 전에 원래 묶은용도인 공원이 아니라 공공공지로 용도를 바꿔 임대주택을 짓겠다니 억울할 따름입니다. 이게 공공 땅입니까. 40년간 공원이라고 제약받아온 토지주들은 뭐가 됩니까.”(토지주 권 모 씨)  
 
서울시와 마포구는 이 땅이 일몰제에 해당하더라도, 어차피 정비구역 지정 및 계획이 바뀌지 않는다면 별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해제 계획도 없다. 탁월한 입지다. “공원보다 개발 여지가 더 많은 땅이라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공공지로 바꾼 것”이라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원하는 대로 개발할 수 있는 미래의 유휴부지인 셈이다.  
 
마포로 1구역은 79년에 지정됐다. 광범위한 도심 재개발 사업이다. 당시 정부는 가난했다. 도심 내 빌딩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이른바 부자였다. 가난한 정부는 부자들의 개발 행위를 거들면서 원하는 곳을 찍어 공원이나 도로 등으로 기부채납을 받았다. 공덕 공원 같은 사연은 당시 흔했다지만 공공이 가난하지 않은 지금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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