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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이 장면] 바람의 언덕

중앙일보 2020.06.14 00:04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박석영은 뚝심 있는 감독이다. ‘들꽃’(2015) ‘스틸 플라워’(2016) ‘재꽃’(2017)으로 이어지는 ‘꽃 3부작’을 완성한 그는 최근 ‘바람의 언덕’(2019)을 내놓았다. 쉽지 않은 제작 환경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며 장편 영화를 내놓고 있는 그는 이젠 고유한 영화적 세계를 지닌 ‘작가’라 불러도 부족함 없는 시네아스트가 되었다. 그의 영화엔 꾸준히 반복되는 서사가 있다. 바로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바람의 언덕’은 엄마 영분(정은경)과 딸 한희(장선)의 이야기다. 영분은 사연 많은 여인이다. 그는 한희를 포기했고, 한희는 자신이 고아인 줄 알고 성장했다. 여기서 영화는 엄마가 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강원도 태백에서 필라테스 학원을 하고 있는 한희. 영분은 손님을 가장해 딸을 찾고, 뒤늦게 혈육의 뜨거운 감정을 느낀다. 박석영 감독의 이전 영화에 의하면, 캐리어를 끌고 정처 없이 다니는 영분이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한희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일과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그는 학원 한구석에 텐트를 치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퇴근할 집이 없기 때문이다.
 
0612 그영화이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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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로운 이미지는 한희의 내면을 투영한다. 결핍된 영혼의 아담한 안식처. 벽에 붙여 놓은 몇 장의 사진만이 작은 탈출구가 되는 그곳. ‘바람의 언덕’은 이토록 외로웠던 사람들이 힘겹게 만나는 이야기며, 관계의 회복에 대한 희망을 전한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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