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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려나보다

중앙선데이 2020.06.13 00:30 690호 31면 지면보기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고 싶은 거 다 한 정부·여당
총선 압승으로 한발 더 나아가
사회 갈등의 n차 팬데믹 유발
극복 비용은 갈수록 커질 것

지난 대선 무렵 이런 구호가 있었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이 뭘 해도 지지하겠다는, 열혈 지지자들의 무조건적 애정 표현이었다. 그런 ‘신도(信徒)급’ 지지자는 아니더라도, 그때는 그 구호를 듣고 보며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 정권에 대한 실망이 워낙 컸던지라 신임 대통령이 무엇을 해도 그보다는 나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사람들이 갈수록 늘었다. 그래도 설마 하며 이해하려 애썼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건, 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부담이 커진다 해도 어차피 치러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케어며 주거복지, 도시재생이나 아동수당, 기초연금 같은 복지 정책들도 재원(財源)에 대한 설명이 없긴 해도 가야 할 방향인 건 맞았다. 탈원전조차도 대안이 없다고 부정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야 할 문제였다. 가다가 힘이 부치면 쉬어갈지언정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단 나을 수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전 정권 뺨을 칠 만큼 실패를 거듭한 인사 역시 개탄스럽긴 해도 과거 어느 정권도 극복하지 못했던 난제였다. 그랬기에 ‘조국 사태’ 같은 충격까지 겪은 유권자들이 집권당에 승리를 안겨준 것일 터였다.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야당에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표를 줄 수 없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압도적 의석 차이는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태 하고 싶은 거 다 해온 정부·여당은 지난 총선의 압승을 또 하나의 ‘하고 싶은 거 다 해!’ 승인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그야말로 뭐든 다 할 생각인 모양인데, 참으로 위험해 보인다.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제까지는 결국 실패로 결론이 난다 해도 돌이킬 수 있는 거였다.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어쩌랴. 그것이 민주주의인 것을. 좋은 교훈을 얻은 대가로 여기고 바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선데이칼럼 6/13

선데이칼럼 6/13

조국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인사는 당선으로 마치 무소불위 권력을 손에 쥔 양 ‘복수’를 외쳤다. 그에게는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공수처가 마치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복수의 칼인 듯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몰라도 국회의원으로서의 첫 일성이 “현충원에서 친일파 파묘”였던 인사는, 자신의 판사 시절 무능을 운운한 사법부 인사들을 겨냥해 ‘탄핵’을 외쳤다. 법을 천직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초법적 발상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치부의 도구로 삼은 혐의를 받는 인물을 비례대표 공천한 집권당 대표는 자기 잘못을 사과하는 대신 소속 의원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당론에 반해 소신 투표를 했던 전직 의원을 징계함으로써 초선들의 기를 죽였다. “당론을 따르지 않으려면 탈당을 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초선의원들까지 생겼다. (이런 인물들이 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하려고 하는 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영방송 사장들을 강제 사퇴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던 정권이 총선 승리 후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부터 꺼내 들었다. 가짜뉴스야 대표발의한 의원 말대로 300배로 징벌해도 부족하지만, 원조 가짜뉴스, 원조 ‘기레기’와 동행하고 있는 정권의 입에서 나오니 순수한 의도로 들리지 않는다.
 
이른바 ‘역사왜곡금지법’도 같은 맥락이다. 역사 왜곡이란 권력이란 장갑을 낀 손으로만 빚을 수 있는 것이고, 이 법을 사용할 사람 역시 권력을 쥔 쪽일 테니 권력의 향배에 따라 역사가 춤을 출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배신자·쓰레기의 죗값을 계산하겠다”는 북한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 국민은 졸지에 죄인이 됐다. 김여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부는 탈북단체들을 고발했고, 정부·여당이 한마음이 돼 이들을 처벌할 법을 찾거나 만들려 하고 있다.
 
53년 만에 국회를 일방 개원해 국회의장을 선출한 집권당은 18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겠다는 소리를 거침없이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제1야당과 룰미팅도 없이 선거법을 개정해 총선 자체를 코미디로 만든 집권당이니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 이제 범여권의 도움이 필요 없는거대 여당이 됐으니 보이는 게 뭐가 있겠나. 명백한 증거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은 한명숙 독직 사건을 뒤집겠다는 호연지기의 출발점도 바로 거기다.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려고 ‘작심’했나 보다. 아무리 지적해도 자기들 하고 싶은 건 다 해온 정권 아닌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못했던 일들을 이들은 한뼘 고민 없이 내지른다. 그들이 앞으로 하려는 일들이 정말 돌이키기 어려운 것인지라 벌써부터 두렵다.
 
하지만 어쩌겠나. 유권자들이 그들에게 그럴 힘을 쥐여줬는데 말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지금 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듯, 반대쪽의 또 다른 괴물들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지르는 힘의 크기만큼 반작용도 클 게 분명하다. 사회 갈등의 n차 팬데믹이 그렇게 유발되고 증폭된다. 현명한 우리 국민은 그것 역시 극복하겠지만, 갈수록 커지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것이 다 국민의 복(福)이요, 업(業)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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