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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曰] “어떻게 감히” 입학원서

중앙선데이 2020.06.13 00:28 690호 30면 지면보기
양영유 교육전문기자 중앙콘텐트랩

양영유 교육전문기자 중앙콘텐트랩

“조민은 남북이 통일되면 평양의 5성급 호텔 첫 지배인이 되는 꿈이 있다.” 2009년 9월 15일, 한영외고 3학년이던 조민은 부산의 한 호텔로부터 이런 내용의 ‘코넬대 추천서’를 받는다. 입학사정관을 혹하게 만들 포부다. 이 추천서를 코넬대에 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코로나 수시 ‘조민스런’ 허위·과장 우려
교사·수험생 고통, 공정·투명 대책 시급

다행인지 모르지만, 국제반에 다니던 조민은 방향을 틀어 수시로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에 합격했다. 2014년에는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의사로 꿈을 바꿨다. 조민은 억세게 운이 좋다. 부산 호텔 등 온갖 인턴 활동이 허위로 드러나고, 고3 때 제1저자로 올린 의학 논문이 취소되고, 소도 웃을 장학금을 탔어도 무탈하다. 교수 부모(조국·정경심)의 철면피 방어, 대학의 성긴 입시망, 코로나19 사태가 부른 대학가의 침묵 등 ‘3중 행운’이 겹친 덕분이다. 그 운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조민 스토리를 반추한 건 마스크 쓴 수험생의 안쓰러움 때문이다. 매일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학생들과 퇴근길 학원가 풍경은 대한민국 교육 부조화의 거울이다. 오전 8시, 학생들이 2m 거리를 유지하고 교문으로 들어간다. 철저하다. 오후 10시, 학원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등교 때 ‘2m’는 코미디다. 아슬아슬하다. 대학 가는 길은 그리도 험하다. 순간, 조민의 행운이 어른거린다.
 
조민은 입학원서를 농락했다. 대학은 속아 넘어갔다. 고려대는 “인턴십 성과로 나의 이름이 논문에 오르게 됐다”는 조민의 자기소개서를 지나쳤다. 당락 영향력과 상관없는 진실성 문제 아닌가. 도대체 뭘 봤나. 부산대 의전원도 도긴개긴이다. 서울에서 경북 영주 동양대를 오가며 인턴을 했다는데 삼척동자도 궁금해할 축지 비법을 왜 안 물었나. “최악의 학생을 뽑은 것 같아 허탈하다. 어떻게 감히 허위 경력을 낼 수 있는지 상상이나 했겠나”(부산대 의전원 교수)라고 자책할 일이 아니다. “어떻게 감히”를 간과해 수많은 수험생을 울렸다.
 
미국 대학에선 “어떻게 감히”가 용납되지 않는다. 입학원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위조하면 입학 취소, 등록 취소, 추방, 학위 취소가 불문율이다. “부정확한 언급을 하거나, 대학이 요구한 정보를 숨기거나, 거짓 정보를 작성하거나, 사기·위조 문서를 첨부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된다.(캘리포니아대 입학원서 중)” 우리도 규정이 없는 건 아니다. 2009년 조민이 낸 고려대 원서에도 “서류 위조 또는 변조 사실이 확인되면 불합격 처리한다”는 문구가 명확하다. 문구대로라면 조민은 이미 고졸이다. 논란이 일자 교육부가 엉거주춤 대책을 내놨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허위·위조 서류 제출 시 입학 취소를 의무화한 것이다. 이달 11일부터 적용됐다. 이 또한 조민에겐 행운인가.
 
팬데믹으로 수능까지 미뤄진 올해 대입에서도 수시 비율이 75%로 압도적이다. 교과 성적과 학생부종합전형이 중심인 수시는 공정성·객관성·투명성이 생명이다. 마스크를 쓰고 입시를 치러야 할 고3은 자소서와 학생부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교사도 학생도 고통이다. 벌써 ‘조민스런’ 어떻게 감히 우려가 나온다. “온라인 토론 주도적 참여” “수행평가 동영상 제출” “통일 한반도 바이러스 장관” “국제단체와 코로나 SNS 교류”…. 인력 타령만 하는 대학이 걸러낼 자신이 있는가.
 
그럴 자신이 없다면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아예 이번 1학기는 학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 동아리·봉사·창의 활동 영역을 ‘코로나 학기’로 명기하고 평가에서 제외하는 건 어떤가. 고2, 고1도 마찬가지다. 모든 대학이 입장을 밝히는 게 도리다. 개별 대학이 찔끔거릴 일이 아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도 “고3이 불이익 받지 않게 하겠다”고 말로만 하지 말고 실질 대책을 내놓으시라. ‘입시 시계’는 빠르게 돈다. “어떻게 감히”가 젊은이 인생을 망친다.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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