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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가 특기라는 박병석도 곤혹…국회법 41조·48조 딜레마

중앙일보 2020.06.12 09:19
법대로 해야 할까, 말로 해야 할까.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두고 벌어진 여야의 벼랑끝 대치 속에 박병석 국회의장이 취임 일주일 만에 기로에 섰다.

중재가 특기라는 박 의장을 딜레마에 빠뜨린 건 여야의 아전인수 격 국회법 해석 싸움이다. 상임위원장 선출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12일 쟁탈의 대상은 국회법 48조 1항과 41조 2항이다. 문구는 다음과 같다.  
 
12일 쟁점이 된 국회법 조항
제48조(위원의 선임 및 개선) ① 상임위원은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의 비율에 따라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의 요청으로 의장이 선임하거나 개선한다. 이 경우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은 국회의원 총선거 후 첫 임시회의 집회일부터 2일 이내에 의장에게 상임위원 선임을 요청하여야 하고, 처음 선임된 상임위원의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에는 그 임기만료일 3일 전까지 의장에게 상임위원 선임을 요청하여야 하며, 이 기한까지 요청이 없을 때에는 의장이 상임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
 
제41조 ② 상임위원장은 제48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따라 선임된 해당 상임위원 중에서 임시의장 선거의 예에 준하여 본회의에서 선거한다.

국회는 그 동안 이 두 조항에 따라 통상 각 상임위원 선임이 끝난 뒤에 본회의를 열어 각 상임위원장 선출 절차를 밟아왔다. 그러나 이번엔 미래통합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못 챙기게 되면 상임위원 배정표도 못 낸다고 버티면서 해석의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5일 국회는 21대 국회 첫 임시회 본회의를 열어 박병석 국회의장을 선출했지만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지금까지 통합당 소속 의원들을 어느 상임위에 배치할지 정한 ‘상임위원 선임 요청안’(상임위원 배정표)을 박 의장에게 내지 않고 있다. 마감 시한은 지난 9일이었다. 국회법상 상임위원장은 지난 10일(41조 2항)까지 뽑혔어야 했다. 민주당은 지난 8일 요청안을 제출했고, 박 의장은 같은 날 양당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요청안 제출 시한을 “12일 오전”으로 못박았지만 주 원내대표가 극적으로 이 시한을 지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박병석 국회의장. 임현동 기자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박병석 국회의장. 임현동 기자

문제는 상임위원이 선임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임위원장을 선출할 수 있느냐다. 주 원내대표는 11일 “상임위원장을 뽑으려면 상임위 배정이 돼야 하고 그 중에서 위원장을 뽑는 것”이라며 “저희가 배정표를 내지 않은 상태에서 의장이 강제로 (통합당 의원들의) 상임위를 배정하고 뽑으시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상임위 배정표를 내지 않을테니 밟고 가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는 식이다. 주 원내대표가 믿는 건 41조 2항의 ‘선임된 해당 상임위원 중에서’라는 문구다. 문언대로라면 상임위원 배치가 마무리된 뒤에야 위원장을 뽑을 수 있다는 게 명확해 보여서다.  
 
그러나 민주당의 생각은 다르다. 민주당의 원내 핵심 당직자는 “이미 국회법상 시한을 통합당이 어긴 상황에서 민주당만 순서를 지키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절차를 어기더라도 의결에는 하자가 없는 만큼 위원장 선출을 강행해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상임위 배치가 완료됐고▶모든 상임위에서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고 ▶상임위원장 선출에는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이라는 일반 의결정족수(109조)가 적용되므로 ‘상임위원장 선출의 건’이 상정만 되면 표결엔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통합당의 생떼와 민주당의 멋대로 해석 사이에서 시험대에 오른 것은 박 의장이다. 박 의장이 국회법 문구대로 따르자면 통합당 소속 의원들의 상임위를 마음대로 정한 뒤에 ‘상임위원장 선출의 건’을 상정하면 된다. 48조 1항 끝부분이 상임위원 배치표를 내지 않는 교섭단체 소속 의원의 상임위는 의장이 재량껏 정할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길이지만 100명이 넘는 제1야당 의원들의 상임위를 의장이 맘대로 정한다는 건 의장에겐 정치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다. 자칫 ‘공정한 중재자’ ‘합리적 의사 진행자’로서의 권위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어서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박병석 국회의장이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다른 방법은 민주당 주장대로 통합당 의원들을 상임위에 배정하지 않은 채 상임위원장 선출의 건을 상정하는 길이다. 상정 자체가 통합당의 공격을 받긴 하겠지만 상임위원 배분 등의 자율성은 통합당에 남겨둔다는 점에서 부담이 조금 덜한 방식이다. 이 경우에도 세부적인 접근 방식에 따라 갈등의 폭과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현재까지 거론되는 경우의 수는 ①법사위원장 선출의 건만 먼저 상정해 민주당이 차지하게 한 뒤 2~3일 추가협상 시간을 주는 방안 ②법사위원장과 예결위원장을 먼저 뽑고 나머지 자리를 선출할 날을 다시 정하는 방안 ③협상 초기 공감대를 이뤘던 ‘11대7’ 원칙에 따라 여당 몫 11개 상임위원장만 선출하는 방안 ④18개 상임위원장 전원을 다 뽑는 방안 ⑤아예 안건 상정을 15일께로 미루는 방안 등이다. 익명을 원한 여권 관계자는 “외견상 ③안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통합당이 법사위원장을 빼고 다른 어떤 자리를 원하는지조차 말하지 않고 있어 어떤 상임위 11개를 가져올지 정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묘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법사위원장 자리 사수(통합당)와 탈환(민주당)의 강경론에 포위된 두 원내대표가 본회가 예정된 12일 오후 2시까지 합의에 다다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임장혁 기자ㆍ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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