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참여의 부족’과 우리 민주주의

중앙일보 2020.06.12 00:53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그제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이제 더 많은 민주주의, 더 큰 민주주의, 더 다양한 민주주의를 향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제도의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이겠다. 이와 관련, 주요 민주주의 지표들을 중심으로 현 한국 민주주의의 현황과 과제를 가늠해보자.
 

민주주의 글로벌 지표들을 보면
참여의 과잉보다 부족함을 지적
사회적 권리와 평등, 성평등 등
민주주의 과제 실현 노력을 기대

가장 잘 알려진 지표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표를 들 수 있다. EIU 지표는 선거 과정, 정부 기능, 정치 참여, 정치 문화, 시민 자유 등 5개 부문으로 나눠 평가한 뒤 평균을 내 국가별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한다. 2019년 발표를 보면 한국은 평가 대상 167개국 중 23위로 일본(24위)과 미국(25위)을 앞선다. 나아가 한국은 2008년 이후 줄곧 세계 20위권 초반의 민주주의 국가로 그 위치를 유지해왔다. 33년의 짧은 민주주의 경험에 볼 때 괄목할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상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문제점들이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5개 부문 중 정치 참여 부문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보인다.
 
이러한 미묘한 문제점을 더 잘 보여주는 지표는 ‘국제 민주주의와 선거 지원 연구원’(IDEA)의 민주주의 지표(Global State of Democracy Indices)다. IDEA 지표는 대의(代議)정부의 수준, 기본권, 정부에 대한 견제, 공정한 정부, 정치 참여의 수준 등 5개 부문의 98개 지표로 구성된다. EIU와 달리 국가별 등수를 매기는 방식을 지양하고 부문별 상·중·하로 평가한다. 2018년 IDEA 지표도 한국의 민주주의를 높게 평가해, 정치 참여 부문만 제외하고 모든 부문에서 ‘상’으로 평가받는다. 정치참여 부문이 ‘중’을 받은 주된 이유는 직접민주주의 세부지표에서 최하 수준의 점수를 받은 때문이다.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세부적인 민주주의 지표는 ‘민주주의 다양성 프로젝트’(Varieties of Democracy Project, V-Dem) 지표다. V-Dem은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 선거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 평등민주주의(egalitarian democracy)로 개념화하고 총 400개가 넘는 민주주의 세부지표들을 활용한다.  
 
2019 V-Dem 평가에서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높게 평가된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부문 평가에서는 주로 유럽 강소국들로 구성된 톱 10% 그룹에 속해 영국과 독일에 앞서 세계 12위의 민주 국가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번에도 참여민주주의 부문은 낮은 점수를 받고 있으며, 직접민주선거(direct popular vote) 세부지표에서는 최하 수준의 점수를 받고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V-Dem 국가별 리포트에서 한국의 평등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낮은 성 평등 세부지표 점수를 콕 집어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점수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공인된 지표들이긴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를 멀리서 조망해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두 가지 측면에서 세 지표 공히 한 방향을 가리키는 듯하다. 우선 한국은 비교적 성공적인 민주주의로 평가받는다는 점이다. V-Dem의 2019년 리포트 제목은 헌팅톤(Samuel P. Huntington)의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을 빗대어 ‘권위주의화(autocratization)의 제3의 물결’로 되어 있다. 2019년 현재 세계 24개국에서 권위주의화 현상이 보이며, 전 세계 인구 3분의1이 권위주의화되고 있는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반면 한국은 2008년 대비 민주화의 추세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국가로 평가된다. 코로나19를 민주적으로 대처하고, 성공적으로 총선을 치러낼 수 있었던 이유이자 배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코로나 위기처럼 언제든지 민주적 퇴행의 문제가 재발할 수 있으며,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높은 평가를 특정 정권이 자찬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 후퇴를 걱정할 때, 우리 민주주의가 선방하고 있다는 정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다.
 
세 지표 모두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로 참여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시사한 점이 눈에 띈다. 우리 민주주의의 문제로 종종 ‘참여의 과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밖에서 보기엔 오히려 ‘참여의 부족’이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권리와 평등, 특히 성 평등의 문제도 자주 거론되어온 오래된 숙제다. 이러한 점에서 문 대통령 기념사 중 가정과 직장에서 시작하는 일상의 민주주의와 ‘지속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경제’를 의미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제시한 것은 기본적으로는 옳은 방향이겠다. 문제는 더 구체적인 고민과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6·10 민주항쟁 33돌을 맞아 우리 민주화 경험에 대한 성찰과 함께 정치권과 시민사회 모두 민주주의의 시대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길 기대해 본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