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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의 직격인터뷰] “중산층 증세 없는 기본소득 시행은 불가능한 거짓말”

중앙일보 2020.06.12 00:28 종합 26면 지면보기

기본소득 전문가 최한수 경북대 교수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너도나도 기본소득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정치인들은 대부분 기본소득 옹호론자가 돼버렸다. 반대하면 복지 개혁에 저항하는 적폐 세력으로 몰릴 듯한 분위기다. 재정 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엔 “증세 없이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과연 기본소득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일까. 큰 재정 부담 없이도 실현 가능한 것일까. 최한수(48)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일할 때부터 기본소득을 연구했다.
 

복지 재원을 기본소득에 돌리면
빈곤층 집중됐던 혜택 줄어들어
기본소득 제도는 고비용의 복지
세금 100% 더 내야 월 50만원 수령

긴급재난지원금 이후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후끈 달아올랐다.
“국민 전체가 그런 것 같다. 사실 중산층은 아무 조건 없이 돈 받아 본 게 처음 아닌가. 받으면 일단 좋다. 그 전에는 기본소득에 반대가 많았는데, 최근 여론조사에서 찬성 비율이 반대보다 높게 나왔다.”
 
‘받으니 좋더라’ 말고 다른 경제적 이유는 없을까.
“있다. 지금은 저성장 시대다. 연 2% 성장하면 소득이 2배 되는 데 36년 걸린다. 거기에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일자리가 있는 중위 계층도 사회안전망에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많아졌다. 소득공제 혜택을 늘려 해소할 수도 있지만, 그건 기본소득만큼 가시적이지 않다. 유권자에게 직접 보인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아주 매혹적인 정책이다.”
 
욕구를 채워주는 게 정책의 목표라는 건 좀 이상하다. 기본소득의 목표는 뭘까.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은 빈곤층에 집중돼 있다. 그 폭과 깊이를 더해 포용성을 늘리는 의미는 있다. 그러나 지금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기본소득의 이유와 목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빵 사 먹을 자유’를 거론했다. 그건 모든 이에게 돈을 주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빵 사 먹을 돈이 없는 사람에게만 주는 식으로 해결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소득이 ‘경제정책’이라고 한다. 경기 부양 효과가 있다는 거다. 그러나 경기부양은 빈곤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때 효과가 크다.”
 
정치인들이 엉뚱한 이유를 댄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진짜 속내는 뭘까.
“재난지원금이 국회의원 선거의 승패를 갈랐다는 생각에서 아닐까. 기본소득은 우리나라에서 복지 혜택이 거의 없던 중산층이 제일 혜택을 누리는 제도다. 정치는 결국 중산층이 선호하는 정책을 펼치게 돼 있다. 중산층의 마음을 끌려는 것이 기본소득 신드롬의 정치경제학적 본질 아닌가 한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는 ’그간 복지 혜택이 거의 없었던 중산층의 마음을 끌어보려는 정치권의 생각이 기본소득 신드롬을 낳았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최한수 경북대 교수는 ’그간 복지 혜택이 거의 없었던 중산층의 마음을 끌어보려는 정치권의 생각이 기본소득 신드롬을 낳았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을 내세운다.
“기본소득이 나온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른바 ‘불완전 노동’의 확대다. 고용보험에서 빠져 있는 근로자가 많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전 국민 고용보험이 맞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나온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성장과 소득의 정체, 소득 불균형이다. 이건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채울 수 없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시행하더라도 기본소득에 대한 욕구는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발달하면 인간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을 것이어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있다.
“소위 ‘인공지능 아포칼립스(apocalypse·대재앙)’다.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누른 영향이 크다. 비슷한 얘기가 산업혁명 시대부터 있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근로자 1만 명당 산업현장 로봇 설치 대수가 압도적으로 세계 1위인 나라다. 그러나 로봇이 늘었다고 관련 일자리가 줄지 않았다. ‘한국은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의 위험이 가장 낮은 나라’라는 연구도 있다. 또한 인공지능과 로봇은 고령화로 부족해질 노동력을 메꾸는 역할을 한다. 내 생각에 인공지능 아포칼립스는 불확실한 먼 미래의 일이다. 그걸로 지금 정책을 정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증세 없이 기본소득을 실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거짓말이다. 불가능하다. 관련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근로장려세제·가정양육수당 같은 기존의 현금 복지(2015년 기준)를 없애고 그 재원을 기본소득에 돌리면 국민 1인당 월 1만3000원 정도를 줄 수 있다. 소득공제 혜택까지 다 없애 기본소득 재원으로 쓰면 월 11만6000원이다. 이걸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나. 심하게 말해 ‘용돈형 기본소득’이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층이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현재 복지는 저소득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시스템을 해체해 기본소득으로 돌리면 저소득층은 가처분 소득이 오히려 줄어든다. 이들이 기본소득으로 피해를 보는 ‘루저’가 된다.  
 
기본소득 금액을 많이 주면 이런 일이 없겠지만, 그러려면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고비용 복지’다.”
 
디지털세 같은 세목을 신설하거나, 고소득층 세 부담을 늘려 재원을 마련하자는 제안이 있다.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기본소득을 월 50만원씩 주려면 300조원 정도가 필요하다. 국민이 세금을 100% 정도 더 내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세목 신설이나 부자 증세로 충당할 수 없다. 결국 세수가 큰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를 확 올려야 해결된다. 특히 중산층 세 부담을 늘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결국 기본소득은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빼내(세금) 왼쪽 호주머니에 채우는(기본소득) 꼴이다. 매달 50만원 받으려고 세금 100%를 더 내야 한다면 어떤 저항에 부닥칠지 상상할 수 없다. 또 세금을 그만큼 늘리면 우리 경제에 어떤 충격이 올지 아무도 모른다.”
 
중산층을 노린 정책이라는데 중산층 부담이 늘어난다는 건 아이러니다.
“그래서 만약 기본소득을 택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부작용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도 핀란드는 도입 실험을 했다.
“아직 기본소득을 국가 차원에서 도입한 곳은 없다. 핀란드는 전 국가적으로 도입 실험을 한 유일한 사례다. 그런데 핀란드는 기본소득을 생각한 배경이 우리와 다르다. 복지가 더 필요했다기보다, 근로의욕을 높이려는 수단이었다. 핀란드는 실업급여를 장기간 준다. 취업하면 이게 끊긴다. 그러니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핀란드가 실업률이 높은 이유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다르다. 취업해도 그대로 주는 것이어서 근로의욕을 높일 것으로 봤다. 그래서 실업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실험을 했다. 2년 동안 시행한 결과는 근로의욕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핀란드 정부는 실험 도중에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 기본소득을 깎는다’는 조건을 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핀란드는 2017년부터 2년간 실업자 2000명에게 기본소득 월 560유로, 약 76만원을 주는 실험을 했다)
 
우리나라도 실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가지, 전 세계적으로 도입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실험하는 곳은 있으나 도입을 전제로 실험하는 곳은 없다. 국가적인 실험도 핀란드가 유일하다. 다른 데는 지방정부 차원이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공짜로 받는 돈은) 노동의 가치를 폄훼한다’고 해서 기본소득에 반대한다.”
 
어쨌든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사회적으로 어떤 논의들을 해야 하나.
“논의가 국민 모두에게 돈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로만 갈려 있다. 사회안전망의 폭과 깊이를 더한다는 측면에서 현금 급여를 늘리는 것은 좋다고 본다. 현금 급여를 늘리면 정신 건강에 이롭고 자녀의 학업 성취도가 올라간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현금을 꼭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줘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기본소득은 현금을 무조건 다 주기에 적게 줄 수밖에 없다. 그것과 계층을 좁혀 더 많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 중에 뭐가 나은지 따져봐야 하는데 그런 논의가 없다. 정당들은 책임감을 갖고 지금 우리 복지시스템과 사회안전망의 제1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각 정당의 복지 어젠다는 생애주기와 소득계층별로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밝혔으면 한다.”
 
◆최한수 교수
여당과 야당 모두 기본소득을 논의할 때면 최 교수를 부른다. 지난 4월 20일엔 ‘젊은미래당’(미래통합당의 3040 수도권 출마자 모임)에서 강연했고, 다음 주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나간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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