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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자연과의 교감 -‘야투’의 실험 40년

중앙일보 2020.06.12 00:18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전지구적 생태위기로 자연과 인간의 균형이 깨져버린 지금 미술의 역할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노라면, 1980년대 상업화된 제도권 미술을 박차고 나와 자연(野)에 몸을 던졌던(投) ‘야투’를 떠올리게 된다. 주류가 아닌 변방을 자처하며 공주 금강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야투작가들은, 고동을 갯벌 위에 삼각형으로 줄지어놓고 고동이 이동하며 도형을 깨트리는 모습을 사진 찍거나, 가뭄으로 갈라진 강변에 나신으로 드러누워 있거나, 입에 여물을 가득 문 채 손발을 땅에 짚고 송아지에게 입으로 여물을 먹이는 행위를 펼쳤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임을 드러내는 예술적 행위를 고승현은 ‘자연미술’이라 칭했다. 자연과의 교감 속에 행해졌던 이들의 작업은 사진으로 기록될 뿐, 소유도 매매도 불가능했다. 이 시기 야투에게 자연은 유희의 장이자 예술적 해방 공간이었다.
 
1990년대 야투의 자연인식은 일상과 삶으로 확장된다. 공주시 원골에 입주한 임동식은 ‘예술과 마을’전을 기획했다. ‘예즉농(藝卽農), 농즉예(農卽藝)’의 사고 위에 농사가 삶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진정한 자연미술임을 선언했다. 생명예술가로서의 농민들이 일상을 담은 작품을 제작 전시함으로써 당시 우루과이 라운드로 피폐해지던 농촌 공동체의 마을문화가 복원되었다.
 
김용익, 풍장, 설치작품. [사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김용익, 풍장, 설치작품. [사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부단한 자기 성찰 속에 야투는 해외 자연미술가들과 교류하며 2000년대 이후 생태미술운동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공주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은 생태미술교육 장소이기도 하며, 현재 관람 가능한 ‘숲속의 은신처’전(4월 25일~)이 열리고 있다. 산 곳곳에 대나무와 목재 등을 이용해 설치된 거대한 은신처들은 초기 야투의 소박한 미학과는 다르지만, 함께 한 이들과의 ‘교감과 공유’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소비자본주의 가치 체계로부터 벗어나 있다.  
  
우리가 건축이라 부르는 자연 속 은신처는 인간을 위해 고안됐지만, 우리가 지속적으로 공생해야 할 자연의 미물들을 위한 것이기도 함을 깨닫게 된다. 상설전 가운데 김용익의 ‘풍장(風葬)’은 작가의 흔적인 책, 전시 팸플릿 등을 나무에 매달아 비바람에 서서히 썩게 만든 것인데, 이는 언젠가 찾아올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이기도 하다. 자연(펄프)로부터 온 인공(책)이 자연으로 돌아가듯, 인간의 육신도 썩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환경의식이 고조되면서 현대미술 논의에서 배제됐던 이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야투의 작업을 동양의 무위사상, 혹은 서구 사회생태학 이론에 빗대 논하기도 한다. 멤버들의 이탈과 미술계의 비판 속에서도 변신을 거듭하며 40년을 견지해 온 이들의 작업은 ‘야투정신’이라 해도 족할 만큼 오늘날 큰 메시지를 던진다. 과학과 기술이 파괴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예술로서 되살릴 수 있길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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