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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선 정부 지원받아 시민단체 연명 못한다

중앙일보 2020.06.12 00:12 종합 1면 지면보기

견제없는 권력, 시민단체〈하〉 

정부 자금은 받지 않는다며 재정 독립을 표방한 휴먼라이츠워치가 10일 "미국의 코로나19 피해 격차는 구조적 인종차별과 탄압을 반영하고 있다"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다. [홈페이지 캡처]

정부 자금은 받지 않는다며 재정 독립을 표방한 휴먼라이츠워치가 10일 "미국의 코로나19 피해 격차는 구조적 인종차별과 탄압을 반영하고 있다"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다. [홈페이지 캡처]

미국 시민단체들의 상당수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다수의 개인 후원자나 대형 재단 같은 큰손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 규모 시민단체로선 정부 보조금은 사업 내용에 따라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신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미국 국세청(IRS)은 공익 비영리단체(NGO)의 수입·지출 보고서를 공시해 시민단체의 정부 재정 의존도를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정부 보조금 사용처 엄격히 규제
인건비·임대료 등 경비로는 못써

시민단체 지원도 깐깐하게 심사
경쟁 치열…1년 내 사업성과 내야

개인·재단 기부금으로만 운영
흑인정책 등 트럼프 비판 가능

미 연수입 2700만원 위안부단체
회계비 155만원 들여 24쪽 보고서

미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미국 공익 시민단체·재단의 기부금 수입은 4605억 달러(약 552조원)에 달했다. 이 중 연방정부와 주·지방정부 차원의 보조금과 기부금은 1782억 달러로 38.7%에 이른다. 정부 보조금 공모·심사(Grants.gov)는 경쟁이 치열하고, 1년 이하 단기에 사업 성과를 내야 한다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또 정부 보조금은 시민단체 설립 목적에 따른 사업비로 써야 하며, 임직원 인건비나 사무실 임대료, 사무용품 구입비, 전화료 등 운영 경비로는 쓸 수 없다. 미국 시민단체는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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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유 보고서’ 발간으로 유명한 프리덤하우스는 2018년 전체 4002만 달러 수입 중 88%인 3520만 달러(약 422억원)를 정부 보조금에 의존했다. 반면에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018년 6919만 달러(약 829억원) 수입 전액을 세계 각국의 민간 개인과 재단 기부로만 채웠다. 정부 돈은 1달러도 받지 않았다.
 
미국 시민단체 기부금 수입 현황

미국 시민단체 기부금 수입 현황

미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인권 탄압 실상을 고발하는 HRW 같은 단체는 재원의 독립성을 추구한다. HRW는 홈페이지에 “독립적 비정부기구로서 정부 자금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받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앨리슨 파커 HRW 미국 프로그램국장은 10일(현지시간) 미 하원 청문회 서면진술서를 통해 “미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취약성을 악화하는 방식으로 흑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며 “의회가 미국의 모든 제도와 생활양식에 침투한 구조적 인종차별을 없애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과감한 조치를 채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인권단체 “우린 정부 감시 위해 나랏돈 안 받는다”
 
구조적 불평등으로 흑인의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했던 게 이번 조지 플로이드 대규모 시위 사태를 자극했다고 하면서다.
 
뉴욕이 본부인 국제난민보호단체인 휴먼라이츠퍼스트(HRF)도 수입 1652만 달러 중 정부 보조금(기부금)은 52만 달러(3.2%)로 비중이 작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난민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왔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1년 설립된 프리덤하우스는 세계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신장을 목표로 하며 독립적 감시 기구를 표방하지만, 정부 재정 의존도는 2006년 66%에서 14년 만에 22%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연례 ‘세계 자유 보고서’와 ‘언론 자유, 인터넷 자유 보고서’에서 중국·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비판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을 받든, 개인·단체 후원을 받든 미국 시민단체의 회계는 투명하다. 회계가 투명하지 않은 시민단체는 정부나 민간에 외면당해 존립이 힘들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소재 시민단체 위안부정의연대(CWJC)는 2018년 기부금 등 전체 수입이 2만3038달러, 한국 돈으로 2761만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단체는 IRS에 24쪽 분량의 연말 결산보고서를 제출하며 1300달러를 회계 비용에 썼다고 밝혔다.
 
CWJC는 2017년 9월 샌프란시스코 도심 세인트메리 공원에 위안부 피해자 기념비 건립을 주도한 단체다. 지난 1일 마이크 혼다 전 연방 하원의원과 함께 홍콩 영자지 아시아타임스에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릴리언 싱과 줄리 탱이 공동의장으로 있다.
 
IRS의 비영리단체 수입·지출 공시 보고서에 따르면 CWJC는 기념비를 건립한 2017년 24만8485달러에 비해 2018년은 기부금이 10분 1 이하인 2만3038달러라고 신고했다. 광고·홍보에 2만1841달러, 기념비 건립 1주년 기념식 1만9673달러, 기념비 유지를 위한 시리즈 강연 4632달러, 사무실비 2701달러 등 지출은 7만1691달러로 수입보다 5만3285달러 많았다. 12만 달러의 기존 현금 자산에서 초과 지출을 감당해 보유 자산은 6만6905달러로 쪼그라들었다.
 
CWJC 주디스 머킨슨 대표를 포함한 3명의 임원진은 보수를 받지 않고 무급으로 자원봉사를 했다. 대신 이처럼 자세한 수입·지출 내역을 공개하기 위해 회계 비용으로 1300달러를 썼다고 밝혔다. 2018년 수입의 5.6%, 지출의 1.8%를 회계비용으로 사용한 셈이다.
 
2013년 가주한미포럼(KAFC)과 미국 캘리포니아 글린데일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주도한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도 2018년 약식 보고서지만 14쪽 분량을 신고했다. 기부금 수입으로 4만3713달러, 지출은 콘퍼런스 개최비 9948달러, 출장 경비 9021달러, 지역사회 지원 3780달러 등 2만8148달러다. 식대 723달러, 은행 수수료 16달러까지 꼼꼼히 적혀 있다. 김현정 대표와 신정란 최고재무책임자(CFO)도 무급으로 단체를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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