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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경찰은 아예 없앤다고? 당장 무법천지는 안된다는데

중앙일보 2020.06.11 16:01
애틀랜타 경찰청 앞 도로에도 어김없이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Defund Police)'는 구호가 적혔다. 집회가 끝난 뒤 10일(현지시간) 한 시청 직원이 페인트를 지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애틀랜타 경찰청 앞 도로에도 어김없이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Defund Police)'는 구호가 적혔다. 집회가 끝난 뒤 10일(현지시간) 한 시청 직원이 페인트를 지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숨지게 한 전직 경찰관들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이제 초점은 '경찰 개혁'에 모이고 있다. '경찰 예산을 깎아야 한다(Defund the police)'는 구호는 곳곳에 걸렸고, 사건이 발생한 미니애폴리스에선 "경찰 해체" 이야기까지 나왔다.

미국판 '경찰 개혁' 어디로 갈까
코로나19와 맞물려 '예산 삭감' 주장도

 
정치권에서도 경찰 조직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그런데 정말로 경찰을 없애는 게 가능할까. 일부 지역에선 폭동과 약탈의 위험이 여전한 상황에서 경찰력을 약화해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다. 한순간에 개혁 대상이 된 미국 경찰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경찰 없애도 될까

분노한 시위대 사이에선 예산 삭감을 넘어 경찰 자체를 없애라는 요구도 거세다. 지난 10일 누군가 시애틀 도심의 벽에 '시애틀 경찰을 해체하라(Abolish SPD)'는 낙서를 남겼다. [로이터=연합뉴스]

분노한 시위대 사이에선 예산 삭감을 넘어 경찰 자체를 없애라는 요구도 거세다. 지난 10일 누군가 시애틀 도심의 벽에 '시애틀 경찰을 해체하라(Abolish SPD)'는 낙서를 남겼다. [로이터=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경찰 해체'는 갑자기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좌파행동단체들이 과거부터 내놨던 슬로건이다. 경찰력이 강하면 오히려 범죄를 키울 뿐이니 아예 경찰을 없애는 게 낫다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다.
 
지금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나오는 '경찰 해체' 이야기는 이와 결이 조금 다르다.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미국 경찰 체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 경찰은 '시(市) 경찰-카운티(County) 보안관-주(州) 경찰-연방 경찰'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NYPD, LAPD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봤던 경찰은 시 경찰이다. 시에 소속돼 있으니 최고 수장은 시장이다. 시장이 조직을 키우거나 줄일 수 있고, 심지어 없앨 수도 있다.
 
그런데 시 경찰을 해체한다고 해서 당장 무법천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와 주의 중간 정도 되는 행정단위인 카운티마다 보안관(Sheriff)이 있어 시의 치안을 대신 맡아줄 수 있다.
 
CNN에 따르면 2012년 뉴저지주의 캠던시가 부정부패 등의 문제로 시 경찰을 해체했을 당시 카운티 보안관이 와서 경찰 업무를 대신한 적이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 경찰 체계상 시 경찰을 없앤다고 해서 당장 치안 공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총기소유가 되는 미국 사회에서 장기적으로 시 경찰 조직 없이 치안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을 해체했던 시에서도 모두 영구적으로 경찰조직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수장을 바꾸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수준이었다. 미니애폴리스 역시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지만, 치안업무를 처리할 다른 방안을 찾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뉴욕 경찰(NYPD)이 시위대와 인사를 하고 있다. NYPD는 뉴욕시장이 최고 책임자인 시경찰이다. [AP=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뉴욕 경찰(NYPD)이 시위대와 인사를 하고 있다. NYPD는 뉴욕시장이 최고 책임자인 시경찰이다. [AP=연합뉴스]

지난 4월 샌디에고 카운티 보안관들이 고속도로에서 한 차량을 단속해 범칙금을 부과하는 모습. 카운티에 소속된 보안관(County Sheriff)들은 사실상 경찰 역할을 하며 자체 경찰조직을 갖추지 못한 소도시(town)의 치안을 직접 담당하기도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샌디에고 카운티 보안관들이 고속도로에서 한 차량을 단속해 범칙금을 부과하는 모습. 카운티에 소속된 보안관(County Sheriff)들은 사실상 경찰 역할을 하며 자체 경찰조직을 갖추지 못한 소도시(town)의 치안을 직접 담당하기도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경찰예산은 줄여도 될까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Defund police)'는 게 흑인차별 반대 시위의 단골 구호가 된 데는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린 면이 있다. 지난 3일 피닉스시에 열린 시위에서도 이 구호가 곳곳에 등장했다. [AP=연합뉴스]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Defund police)'는 게 흑인차별 반대 시위의 단골 구호가 된 데는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린 면이 있다. 지난 3일 피닉스시에 열린 시위에서도 이 구호가 곳곳에 등장했다. [AP=연합뉴스]

 
시위대가 "경찰 예산 삭감(Defund the police)"을 외치는 것은 단순히 폭력 경찰이 괘씸해서만은 아니다.
 
미국 지방정부에선 경찰 관련 예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유독 크다. 전국적으로 한 해 경찰력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1150억 달러(2017년 기준), 우리 돈으로 약 137조원이다.
 
LA 같은 곳에선 시 전체 예산의 무려 51%가 경찰 관련 예산이다. 많은 시에서 경찰력을 유지하는 데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쓰고 있다(오클랜드 41%, 미니애폴리스 36%, 휴스턴 35% 등). 그러면서도 경찰은 꾸준히 벌금이나 범칙금, 과태료 등을 거두며 시 재정을 채우고 있다.
 
디애틀란틱에 따르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이런 것으로 채우는 지자체가 80곳이나 된다. 게다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다른 모든 분야의 예산을 대부분 줄였지만, 경찰 예산만큼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시민들의 분노가 더 커졌던 대목이다.
 
'경찰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요구는 단순히 경찰을 혼내주자는 게 아니라 보건이나 복지 등 다른 분야 예산으로 옮기자는 주장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정치권은 어떻게 경찰을 손볼까

2년 전만 해도 미국인 40% 정도의 지지를 받았던 흑인차별 반대 운동(Black Lives Matter)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지지율이 74%로 올랐다(9일 발표 워싱턴포스트-샤르스쿨 여론조사).
 
정치권도 경찰 개혁 여론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경찰을 해체하거나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연방의회의 권한 밖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역시 경찰 해체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민주당이 낸 경찰 개혁 법안에는 경찰의 면책특권을 제한하고, 피의자를 체포할 때 목을 조르거나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일부 시위대 요구처럼 경찰이 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그동안 봤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경찰을 앞으로 시민들이 대하게 될 가능성은 상당히 커졌다. 
 
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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