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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취했다" 변명 안통해…'11년 지기' 경찰 죽인 친구 징역18년

중앙일보 2020.06.11 13:32
[중앙포토]

[중앙포토]

결혼식 사회까지 봐준 ‘11년 지기’ 현직 경찰관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이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 이환승)는 11일 “대법원의 양형기준보다 다소 높은 형을 선고한다”며 항공사 승무원 직원이었던 김모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14일 새벽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A씨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A씨는 머리와 상체 부분에 수차례 맞은 흔적이 발견됐으며, 과다출혈과 질식 등으로 사망했다. 범죄 사실을 자진 신고한 김씨는 “술에 취해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음주 심신미약 인정 안 해…"판단력 있었어"

하지만 법원은 ‘심신미약’을 주장한 김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블랙아웃’ 상태였을 수 있지만, 사건 당시에는 나름의 의식과 판단에 따라 범행을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는 사건 직후 거실에 한동안 머물렀으며, 이후 화장실로 들어가 혈흔을 씻고 밖으로 나간 뒤 여자친구 집으로 가서 또다시 씻고 잤다”며 “자신의 몸에 흐른 피를 수차례 씻었다는 점에 비춰보면 김씨는 자신의 공격으로 피해자가 상당한 피를 흘렸다는 사실과 피해자가 의식 불명 상태였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재판부는 “김씨는 범행 전후의 상황은 기억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폭행이나 범죄 동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20분 안에 수차례 폭행" …살인 고의도 인정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김씨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혈흔분석과 각종 증거에 비춰 보면 김씨는 누워있는 피해자의 몸통 위에 올라타 제압한 뒤 피해자의 얼굴이나 목 부위를 6차례 이상 가격하고, 침대 모서리 프레임 등에 머리를 최소 2회 이상 찍어내렸다”며 “이 모든 행위가 약 20분 안에 이뤄졌는데, 김씨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충분히 인식하고 반복적인 공격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것이다.  
 
중형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대학부터 오랜 기간 절친한 친구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살해했는데, 그 범행 방법이 매우 공격적이고 잔인하다”며 “블랙아웃 상태임을 감안하더라도 태연하게 몸을 씻고 여자친구 집으로 가는 등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말했다. 다만 계획적 범죄가 아니고 김씨가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전과가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18년이 뭡니까" 어머니 오열…"평생 참회하겠다"

A씨의 아내가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김씨의 엄벌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국민청원 사이트 캡쳐]

A씨의 아내가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김씨의 엄벌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국민청원 사이트 캡쳐]

선고가 나자마자 A씨의 어머니는 “판사님, 18년이 뭡니까”라며 오열했다. 어머니는 사망한 A씨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사형시켜 달라”고 외쳤다. A씨는 김씨의 부모님과도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최후진술에서 김씨는 “A씨 부모님께서 저를 친아들처럼 챙겨주시고 안부를 물어보신 일이 많다”며 “평생 참회하고 어떤 방법으로도 사죄를 빌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와 A씨는 대학 동기 동창으로, 김씨는 지난 2018년 A씨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봤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최근 김씨는 성범죄 관련 혐의로 고소를 당해 경찰 조사를 받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인 A씨의 조언과 도움을 받았고 결국 지난해 11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해당 사건이 마무리된 후 김씨는 그간 A씨의 조언에 보답하기 위해 술자리를 약속했고,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점에서 만났다. 이날 두 친구는 오후 7시 20분부터 6시간가량 3차에 걸쳐 영등포와 강서구 일대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이후 시간이 늦어 집에 가려는 A씨와 김씨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김씨의 집으로 함께 이동한 후에도 시비가 생겼다. 말싸움은 결국 몸싸움으로 이어졌고, 김씨의 폭행으로 인해 A씨는 과다출혈과 질식 등의 이유로 숨지게 됐다. 김씨는 A씨를 그대로 내벼려둔 채 인근에 있는 여자친구의 집으로 이동해 잠을 잔 뒤, 아침에 일어나 범행을 신고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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