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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담벼락에 정조 반차도…대구 새 명소 '한국의 집'

중앙일보 2020.06.11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76)

6월 3일 대구의 한복판인 중구 종로2가에 ‘한국의 집’ 낙성식(落成式)이 열렸다. 대구 도심 금싸라기 땅 1320㎡(400평)에 마당을 낀 우람한 전통 한옥이다. 이름 그대로 서울 퇴계로 ‘한국의 집’처럼 혼례 등 한국 전통문화를 보여주고 체험하려는 공간이다. 마당 한쪽에 전통혼례에 필요한 가마가 놓여 있다. 수령 수백 년 된 은행나무도 한 그루 서 있다.
 
한국의 집에서 주인 신홍식(67) (사)대구아트빌리지 대표를 만났다. 한국의 집은 대구 중구청이 그동안 김광석길 등 역점 문화사업으로 추진해 온 근대골목투어 코스 중 하나에 위치해 있다. 제2길 진골목의 가운데다. 진골목에는 오래 된 정소아과가 있다. 담장이 붙은 옆집이다.

 
한국의 집 본관. 문은 모두 들문으로 만들어져 필요할 때는 근대골목과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송의호]

한국의 집 본관. 문은 모두 들문으로 만들어져 필요할 때는 근대골목과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송의호]

 
신 대표는 먼저 집의 내력을 설명했다. 정소아과 건물은 1920년대 대구 최고 부자였던 서병국의 집이라고 한다. 한국의 집 안채는 서병국의 사촌 서우순이 1919년 9월 대들보를 올린 널찍한 한옥(79.2㎡)이다. 그는 “한옥이면서도 당시 집안에 화장실을 설치했다”며 보존된 수세식 화장실을 보여 주었다. 사랑채는 없어졌다. 신 대표는 대신 인근 한옥을 사들여 본래 규모로 개축했다. 그게 한국의 집 본관(188.1㎡)이다. 한국의 집은 조성에 땅값‧건축비 등 100억 원 정도가 들어갔다. 건설회사는 이곳에 13층짜리 빌딩을 제안했다고 한다.
 
신 대표는 그런 상업적인 제안을 물리쳤다. 사업가 출신인 그는 누구보다 우리 문화를 아끼는 사람이다. 근대골목투어가 대구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그 중간에 고층빌딩을 세우면 문화도시 대구를 망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한옥을 바탕으로 한 도심 속 문화공간이다. 그는 한국의 집을 통해 근대골목투어에다 “전통혼례 등 대구의 품격을 담아 체험하고 관람하는 역할을 더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적인 전통과 흥을 살린 혼례 잔치를 비롯해 작은 결혼식, 국악과 클래식 공연 등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집을 조성한 신홍식 대표가 ‘정조대왕 화성 반차도’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집을 조성한 신홍식 대표가 ‘정조대왕 화성 반차도’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대구 한국의 집 담벼락에 설치된 ‘정조대왕 화성 반차도’ 타일 벽화. 오른쪽 길이 대구근대골목 2길인 진골목이다.

대구 한국의 집 담벼락에 설치된 ‘정조대왕 화성 반차도’ 타일 벽화. 오른쪽 길이 대구근대골목 2길인 진골목이다.

 
한국의 집에는 볼거리도 하나 선보였다. 조선시대 의궤인 ‘정조대왕 화성 반차도’ 대작이다. 집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다. 진골목 담벼락을 따라 길다랗게 도자기판 위에 그림 67장이 그려져 있다. 정조의 효심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1795년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화성(수원) 현륭원으로 대신들과 함께 장엄한 행차를 한다. 반차도에는 우의정 채제공 등 문무백관‧나인‧호위군사 등 1779명과 말 779필이 등장한다. 그림 속 등장인물은 표정과 동작이 모두 다르며 김홍도‧김득신 등 당대 최고 화원이 그렸다.
 
미술적 안목이 뛰어난 신 대표는 10년 전 계명대 미대 학생들과 함께 100호짜리 67장 그림으로 의궤 속 반차도를 재현했다. 그러나 작품 규모가 길이만 100m를 넘어 두어 차례 전시 뒤 창고에 두었다고 한다. 그는 이걸 다시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해 도자기판에 전사하고 한국의 집 담벼락에 타일 벽화로 되살렸다. 이 작업은 1300도 고온으로 두 차례 굽느라 2년 6개월이 소요됐다고 한다. 그는 작품의 취지를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일본어‧중국어 등 4개 언어로 적어 놓았다. 서울 청계천에도 같은 그림이 이보다 큰 크기로 재현돼 있다.
 
동시 작가이기도 한 신 대표는 대구의 ‘찾아가는 쌀 배달 아저씨’로 통할 만큼 오랜 기간 봉사를 실천해 국민훈장 석류장(2017년)과 대구시의 ‘자랑스러운 시민상’(2012년)을 받기도 했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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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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