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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완치 커플 “치료제 만들 수 있다면 얼굴공개쯤이야”

중앙일보 2020.06.11 00:11 종합 2면 지면보기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은 김지선(왼쪽)·김창연 예비부부가 지난 9일 부산시 한 카페에서 혈장 기증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송봉근 기자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은 김지선(왼쪽)·김창연 예비부부가 지난 9일 부산시 한 카페에서 혈장 기증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송봉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치 후 직장 동료들이 평소처럼 대해줘 혈장 공여자로 나설 용기가 났습니다.”(김창연씨)
 

27일 결혼 앞둔 김지선·김창연씨
“에이즈약 쓸 때 죽음의 공포 느껴
코로나 치료제 만들 혈장 기증
공여자 모집 마중물 되고 싶어요”

“한 번만 용기 내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으니깐요.”(김지선씨)
 
코로나19 완치자인 김지선(31)씨와 김창연(35)씨는 지난 8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한 혈장 공여자로 나섰다. 이들은 오는 27일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다. 김씨 커플을 포함해 부산 온천교회 신도 21명이 혈장 기증에 참여했다. 단체로 혈장 공여 의사를 밝힌 것은 전국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온천교회는 부산에서 처음 집단감염이 발생한 곳으로, 총 32명이 확진됐다. 감염자 중 65%가 혈장 기증에 참여했다. 온천교회의 단체 공여로 지난 5일 기준 26명에 불과하던 혈장 공여자가 9일 현재 62명으로 늘었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는 100명 이상의 혈장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치료제는 완치자 혈액에서 추출한 혈장 속 성분을 이용해 만든다.
 
김씨 커플이 혈장 공여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건 질병관리본부의 호소를 접하고서다. 지선씨는 “입원했을 때 고글에 김이 잔뜩 서려 있는 채로 치료해 주는 의료진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며 “완치 후 치료제 개발을 위한 혈장이 부족하다는 질병관리본부의 호소를 듣고 의료진의 은혜를 혈장 공여로 갚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창연씨는 입원했던 20여 일간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의 절실함을 깨달았다. 그는 “간호사로 환자를 대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환자로 입원해 보니 죽음의 공포가 생각보다 컸다”며 “온몸에 열이 펄펄 나는데 코로나19 치료제가 없어 에이즈 치료제로 치료받았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부산 16번 환자인 창연씨와 19번 환자인 지선씨는 지난 2월 14일 온천교회 수련회를 다녀온 후 감염됐다. 어떤 경로로 감염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창연씨는 2월 23일, 지선씨는 2월 24일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입원한 병동이 달라 영상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물어야 했다. 지선씨는 무증상이어서 입원한 후 14일 만에 퇴원했다. 창연씨는 심한 감기·몸살 증세를 보였다. 20일 넘게 치료를 받은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
 
완치 후 두 사람뿐 아니라 온천교회 감염자들 사이에서 혈장 공여 여론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감염자에게 완치자의 혈장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다. 김씨 커플이 전면에 나섰다. 얼굴을 공개하고 혈장 공여를 독려하면 공여자 모집에 마중물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창연씨는 “완치 후 직장 동료들이 평소처럼 대해 주지 않았다면 혈장 공여자로 나설 용기가 안 났을 것”이라며 “혈장 공여자가 많아지면 코로나19 감염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귄 지 10년 된 김씨 커플은 27일 오후 1시30분 온천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지선씨는 “완치로 다시 삶을 얻은 만큼 어려운 분들을 도우며 남편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겠다”며 “우리의 용기가 다른 완치자에게 전해져 더 많은 혈장 공여자가 나타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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