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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도 흑인차별 항의 파업…논문 게재 멈추고 해시태그 달고

중앙일보 2020.06.10 17:52
지난달 30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모습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모습 [AP=연합뉴스]

 
“과학계는 비교적 개방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백만명의 똑똑한 연구자들이 인종 또는 성별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성별과 인종적 다양성을 확보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2016년 ‘과학과 불평등’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내용이다. 과학계의 차별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조명한 기사였다. 사회ㆍ경제적 불평등이 연구에 미치는 영향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약 4년 뒤인 9일(현지시간), 네이처는 같은 주제를 다시 꺼내들었다. 경찰의 물리력 행사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과학계 전반에 자리잡은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네이처는 “전 세계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흑인들의 생명을 위해 10일(현지시간) 하루 파업에 돌입한다”고 9일 밝혔다. 이와 함께 “본지도 이 파업에 동참한다"며 "하루 동안 흑인 연구자들의 의견과 그들을 지지하는 내용의 콘텐트만 내보내겠다"고 덧붙였다. 11일부터는 원래의 제작 패턴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4000명 넘는 과학자들 파업 동참

네이처에 따르면 현재 40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파업에 동참할 것을 밝혔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파업을 뜻하는 ‘#Strike4BlackLives’, ‘#ShutDownAcademia’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자신의 의견을 공개했다. 특히 일부 흑인 과학자들은 과학계에서 겪은 인종차별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 대학원에 재학중인 조이 우즈는 백인이 주류인 학계에서 흑인이 겪는 차별과 편견을 뜻하는 ‘#BlackintheIvory’ 해시테그를 사용했다. 우즈는 “경찰관이 무릎으로 흑인의 목을 계속 눌러 신체적으로 숨지게한 것에 책임을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별과 불이익으로) 흑인 대학원들의 목을 누르고 있는 대학 관계자들도 죗값을 치러야한다”고 했다.  
 
9일(현지시간) 진행된 조지 플로이드의 장례식 [로이터=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진행된 조지 플로이드의 장례식 [로이터=연합뉴스]

 
주요 과학 단체들도 인종 차별 반대 메시지를 공개했다. 5만5000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미국물리학회(APS)와 영국물리연구소도 파업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APS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학술지에 어떠한 논문도 게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논문 사전 게재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도 원고 제출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다른 인종 효과'…흑인 보면 총기 더 잘 인지해

미국 사회 내 흑인 차별과 관련한 연구도 재조명되고 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최근 제니퍼 에버하르트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가 주장하는 ‘무의식적 편견’(unconscious bias)에 대해 다뤘다. 일상생활에서 의식하지 않아도 나타나는 무의식적 편견이 흑인 차별이나 경찰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사람들은 흑인 얼굴을 봤을 때 권총을 더 잘 식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캡쳐]

사람들은 흑인 얼굴을 봤을 때 권총을 더 잘 식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캡쳐]

 
에버하르트 교수는 서로 다른 인종끼리는 얼굴을 잘 식별하지 못하는 ‘다른 인종 효과(other-race effect)’가 부정적으로 나타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견으로 고착화 된다고 분석했다. 에버하르트 교수가 2004년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은 흑인 얼굴을 봤을 때 권총을 더 잘 식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 실험은 해상도가 아주 낮은 그림을 먼저 보여주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해상도를 높여 참가자들이 그림을 알아차리는 순간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에버하르트 교수는 권총 그림이 나올 때 참가자들은 인지하지 못하게 화면에 순간적으로 흑인 얼굴을 끼워넣었다. 그러자 참가자들은 해당 그림이 권총임을 더 빨리 식별했다. 반면 같은 방식으로 백인 얼굴을 끼워 넣었을 때는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흑인 얼굴을 보면 자연스럽게 권총을 연상하는 인지구조가 자리잡은 셈이다.   
 
에버하르트 교수는 지난 2017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미국 경찰들이 사용하는 언어 속 인종차별적 요소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 결과 경찰은 흑인에 비해 백인에게 57% 더 자주 ‘죄송합니다’ 또는 ‘감사합니다’와 같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에 비해 ‘너’(dude)와 같이 존중감이 덜한 단어의 경우, 흑인에게 사용하는 빈도가 백인에게 보다 61% 높았다. 당시 에버하르트 교수는 “전반적으로 백인들을 상대할 때 보다 흑인들을 대할 때 문제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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