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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동학개미 '로빈후드', 파산기업 주가까지 11배 끌어올렸다

중앙일보 2020.06.10 16:11
미국판 '동학 개미 운동'의 결말은 개미들의 승리일까. 아니면 무모한 도박으로 판명날까. 월스트리트는 최근 급증한 개인 투자자의 베팅에 주목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미국판 '동학 개미 운동'의 결말은 개미들의 승리일까. 아니면 무모한 도박으로 판명날까. 월스트리트는 최근 급증한 개인 투자자의 베팅에 주목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라스베이거스가 다시 문을 연다 한들, 뉴욕 증시가 있는데 누가 도박을 하러 가겠어요?”

 

미국판 동학개미 '로빈후드' 군단, 허츠에 몰려
97년 닷컴버블 경고…Fed 믿고 '묻지마 투자'
미국 실물경제, 여전히 주식시장과 디커플링

미국 월스트리트의 한 투자 전문가는 미국판 ‘동학 개미 운동’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파산 위기인 기업들이 정부 지원으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한몫 챙기자’는 개인 투자자들이 뉴욕 증시에 몰려들고 있다. 덕분에 1달러도 안 되는 일명 ‘동전주’로 전락했던 종목들이 2주 만에 만에 최대 11배까지 급상승하며, 아직은 ‘미국 개미’가 이기고 있는 모양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 시간) “개인 투자자가 파산 보호를 신청한 기업에 베팅하기 시작했다”며 “증시에 무모한 개인 투자가 과열되면, 심각한 경고음으로 봐야한다”고 경고했다. 개인이 투자한 종목들은 최악의 경우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2위 렌터카 업체 허츠(Hertz)의 주가는 이날 주당 4.18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허츠는 지난달 22일 파산보호신청(파산법 제11장)을 하면서 같은 달 26일 주가가 56센트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급등, 8일 장중 6.25달러까지 올라 불과 2주 사이 11배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파산하기 전보다 오히려 주가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파산보호 신청한 렌터카업체‘허츠’주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파산보호 신청한 렌터카업체‘허츠’주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지난 4월 올해 첫 미 셰일업계 파산 사례로 화제를 모았던 화이팅 페트롤리엄(Whiting Petroleum)도 화제다. 당시 이 기업의 주가는 29센트까지 폭락했고, 이후 2달간 1달러 미만을 밑돌았다. 그러다 이달 들어 급상승세를 탔다. 그 뒤엔 개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1주만에 5배 오른 주가는 8일 3.45달러를 기록했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백화점 체인 JC페니도 지난달 중순 파산보호 신청을 한 뒤 19센트까지 내렸던 주가가 8일 65센트로 올랐다. 
 
지난 두 달간 한국 증시 급상승을 이끈 일명 ‘동학 개미’ 군단처럼, 미국에서도 소액 투자 애플리케이션 ‘로빈 후드’를 활용해 증시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이 주가 상승의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 로빈 후드에서 허츠 주식 보유자는 파산 선언 후부터 급증해 14만명을 넘어섰다. 급락한 항공·여행주도 개인 매수세에 꿈틀대고 있다.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국내 증시가 폭락하자 외국인·기관이 투매에 나서는 동안 대거 매수로 맞선 동학 개미와 똑 닮았다.  
 
미국 증시가 대규모 유동성의 힘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운데 파산위기에 몰린 기업들까지도 주가가 급등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UPI=연합뉴스]

미국 증시가 대규모 유동성의 힘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운데 파산위기에 몰린 기업들까지도 주가가 급등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UPI=연합뉴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개인 투자가 늘어난 1997년 ‘닷컴 버블’ 직전이 떠오른다고 지적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깔아놓은 안전판만 믿고 개인들이 ‘묻지마 투자’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뉴턴인베스트먼트의 폴 마컴 주식 담당 펀드매니저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구제한 것처럼 이번에도 기업의 파산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가 투자자 사이에서 만연하다”며 “명백한 거품을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MAI캐피털매니지먼트의 크리스토퍼 그리산티 수석전략가는 “기관이 쳐다보지 않는 주식에 개인이 몰리고 있는 사실에 업계는 당황하고 있다”며 “이는 리스크가 너무 큰 무모한 베팅”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실물 경제가 주식시장의 활기를 못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미국의 올 2분기 성장률(연율 기준)을 각각 -39%와 -40%로 전망한 데 이어, 8일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코로나19 여파로 미국 역사상 가장 길게 이어졌던 128개월간의 확장 국면이 끝났다”면서 “미국 경제가 지난 2월 침체로 진입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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