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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야망에 찬물 끼얹는 리커창…중국 1·2인자의 충돌

중앙일보 2020.06.10 10:38
중국 서열 1, 2위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경제 행보가 엇갈리면서 중국 사회에 혼란을 주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이 이미 먹고살 만한 나라가 됐다는 입장인데 반해 리 총리는 당장 먹고사는 게 큰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노점상 장려' 놓고 엇갈린 행보
리총리 “서민 호구지책 숨통 터줘야"
시주석 “중국, 세계 최대 중산층 보유"

지난 8일 닝샤위구르족자치구 시찰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유엔으로부터 인류가 생존하기에 부적합한 곳이라는 평가를 받은 빈곤 지역 시하이구(西海固) 지구를 찾았다. [중국 신화망 캡처]

지난 8일 닝샤위구르족자치구 시찰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유엔으로부터 인류가 생존하기에 부적합한 곳이라는 평가를 받은 빈곤 지역 시하이구(西海固) 지구를 찾았다. [중국 신화망 캡처]

 
차이점은 서민의 호구지책을 위해 노점상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과 이제 입에 풀칠은 하는 시대는 지났으니 아름다운 도시환경을 위해 노점상은 과거처럼 계속 단속해야 한다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리 총리는 노점상을 장려한다. 지난달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폐막 기자회견에서 리 총리는 노점이 중국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며 쓰촨(四川)성 청두(成都)는 노점상 허용으로 하룻밤에 1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칭찬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1일 산둥성 옌타이의 한 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 총리는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서민의 삶을 위해 노점 경제 허용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1일 산둥성 옌타이의 한 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 총리는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서민의 삶을 위해 노점 경제 허용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지난 1일엔 산둥(山東)성 옌타(烟台)를 방문해 노점상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에 중국 각지에 노점 창업 바람이 일었다. ‘만능 장사 트럭’ 출시를 예고한 자동차 업체 우링(五菱)의 주가가 3일 장중 120% 폭등하기도 했다.
 
한데 4일부터 갑자기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당 중앙 선전부가 ‘노점 경제’라는 용어 사용 제한 지시를 내리고 6일부터는 베이징일보(北京日報)와 환구시보(環球時報), 중앙텔레비젼(CCTV) 등이 잇따라 노점 경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며 찬물을 확 끼얹었다.
 
이렇다 할 자본이나 기술 없이 저소득 계층이 쉽게 창업할 수 있는 노점 경제 바람이 중국에서 불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노점 경제를 실업자 해소 대책의 하나로 본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이렇다 할 자본이나 기술 없이 저소득 계층이 쉽게 창업할 수 있는 노점 경제 바람이 중국에서 불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노점 경제를 실업자 해소 대책의 하나로 본다. [중국 바이두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빈사에 빠진 서민 경제에 한 가닥 빛과 같았던 노점 경제에 대해 왜 이리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것일까. 중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 주석과 리 총리의 서로 다른 입장과 인식이 문제로 보인다.
 
먼저 노점 경제를 장려하는 리 총리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그는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엔 월수입 1000위안(약 17만원) 이하가 6억 명이나 된다”며 “1000위안으론 중등 도시에서 월세 내기도 힘들다”고 중국 경제가 현재 처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이달 초 산둥성 시찰에 나서 생산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리 총리는 최근 매달 1000위안 수입의 중국인이 6억 명에 이른다며 아직 팍팍한 삶을 사는 서민이 많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중국정부망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가 이달 초 산둥성 시찰에 나서 생산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리 총리는 최근 매달 1000위안 수입의 중국인이 6억 명에 이른다며 아직 팍팍한 삶을 사는 서민이 많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중국정부망 캡처]

 
여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서민의 살림살이는 더 힘들어졌다. 리 총리는 현재 실업과 특수곤란 상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한해 6000만 명이나 된다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이 숫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도 했다.
 
리 총리의 말에 따르면 중국 인구의 40% 정도가 아직도 빈곤한 농촌에 살며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베이징사범대의 한 조사에 따르면 월수입 2000위안 이하 인구가 9억 64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68.85%다. 약 70%에 달하는 수치다.
 
중국 쓰촨성 청두에선 지난 3월부터 일정 구역에서 노점을 허용해 이제까지 약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중신사 캡처]

중국 쓰촨성 청두에선 지난 3월부터 일정 구역에서 노점을 허용해 이제까지 약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중신사 캡처]

 
중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말해준다. 여기에 코로나까지 겹쳐 도시 고용의 80%를 차지하는 소상인이 몇 달씩 가게 문을 닫으며 엄청난 피해를 봤던 걸 고려하면 노점이든 뭐든 운영해서 이들의 어려운 처지부터 풀어주자는 게 리 총리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한데 1인자 시 주석의 입장은 다르다. 그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임 때문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시절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2021년에 즈음해 ‘전면적인 소강(小康)사회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닝샤자치구의 인촨을 찾아 현지 특산 농산물을 살피고 있다. 시 주석은 실내에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닝샤자치구의 인촨을 찾아 현지 특산 농산물을 살피고 있다. 시 주석은 실내에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전면적인 소강사회’란 모든 중국 인민이 먹고사는 데 걱정 없고 약간의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시 주석은 자신이 주창한 중국몽(中國夢)에 앞서 이 역사적 책무부터 우선 완수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2015년 11월 시 주석은 중국의 모든 빈곤지역과 빈곤인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전면 소강사회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2020년 중국 GDP가 2010년의 두 배에 이르면 수치적으로 완성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올해 5.6% 성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달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노점 경제를 강조한 이후 중국 곳곳에서 길거리 가게 창업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달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노점 경제를 강조한 이후 중국 곳곳에서 길거리 가게 창업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그렇지만 뜻밖의 코로나로 1분기 성장은 -6.8%를 기록했다. 코로나 상황이 진정돼가고 있지만 아무리 잘해야 올해 중국 성장은 3~3.5%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경우 시 주석에게 주어진 역사적 임무 달성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시 주석의 리더십에 이보다 더 큰 상처가 있을까. 이에 시 주석 세력은 작전을 바꾼 듯하다. 리 총리가 산둥성을 방문해 우선 먹고사는 게 중요하다며 노점상을 격려하던 지난 1일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求是)가 시진핑의 글을 실었다.
 
지난 8일부터 중국의 빈곤 지역 닝샤자치구 시찰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9일엔 인촨을 방문해 한 생태농장에서 물고기 방생을 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지난 8일부터 중국의 빈곤 지역 닝샤자치구 시찰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9일엔 인촨을 방문해 한 생태농장에서 물고기 방생을 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내용은 중국이 이미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소강사회를 달성했다는 주장이다. 그 증거로 시 주석은 종합발전지수, 인류발전지수, 인민생활수준, 인프라와 공공서비스 등 네 가지 지표를 제시했다.
 
종합발전지수를 보면 중국의 2018년 경제 총량이 중등국가의 선두에 있고, 인류발전지수에선 중국의 2017년 도시화 비율이 60%에 근접해 중등국가의 52%를 넘었다. 인민생활수준은 연 수입 10만~50만 위안이 4억 명을 넘어 세계 최대 중산층을 형성했다고 했다.
 
중국 베이징에서도 도로 일부를 점령한 채 거리에서 부침개 등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등장했다. 베이징시는 노점 경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노점상과 단속반의 숨바꼭질이 펼쳐지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베이징에서도 도로 일부를 점령한 채 거리에서 부침개 등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등장했다. 베이징시는 노점 경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노점상과 단속반의 숨바꼭질이 펼쳐지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공공서비스 등은 9년 의무교육이 전면적으로 보급됐고 평균 수명이 2017년 76.7세로, 세계 평균보다 4.2세 많으니 중국은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소강사회를 달성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시 주석의 글은 지난해 4월에 나온 시 주석의 발언을 토대로 하고 있다.
 
13개월 전에 펼쳤던 주장을 이 시점에 가져와 중국의 전면 소강사회 달성을 선포한 셈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몇 안 되는 사람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 주석은 8일 대표적 빈곤 마을이 있는 닝샤(寧夏) 위구르족 자치구로 시찰을 떠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일 닝샤자치구 우중시의 훙더촌을 방문해 종이상자를 만드는 노동자들과 대화하며 빈곤 탈피 상황을 청취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일 닝샤자치구 우중시의 훙더촌을 방문해 종이상자를 만드는 노동자들과 대화하며 빈곤 탈피 상황을 청취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현지 시찰을 통해 시 주석은 빈곤 마을의 종이상자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월급이 3000위안에 이르는 걸 보고 만족해하고 있다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월급 2000위안 이하가 9억명이 넘는다는데 빈곤 마을 근로자 월급이 3000위안이라는 이야기다.
 
시 주석이 보여주고 싶은 건 자신의 지도 아래 엄청나게 발전한 중국의 모습이다. 중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말은 “우리나라 정말 대단하다”, “미국이 무서워한다”, “일본이 겁먹었다” 등이다. 이들은 리 총리가 말하는 ‘중국의 딱한 경제 사정’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난 8일 중국의 대표적 빈곤 지역인 닝샤자치구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황허를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어깨 위엔 올해 중국 모든 인민의 삶을 전면적인 소강사회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된다는 역사적 책무가 놓여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지난 8일 중국의 대표적 빈곤 지역인 닝샤자치구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황허를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어깨 위엔 올해 중국 모든 인민의 삶을 전면적인 소강사회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된다는 역사적 책무가 놓여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이게 바로 노점상 문제를 둘러싸고 시 주석과 리 총리가 엇갈린 행보를 보이는 이유다. 현실 경제의 어려움을 어떻게든 돌파하려는 총리와 과거 약속한 사회를 이뤘다며 중국의 발전된 위상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주석의 입장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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