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천공항 환승객도 난민신청 받아줘라" 판결에 난감한 법무부

중앙일보 2020.06.10 06:00
난민인정 신청자 아프리카인 A씨는 지난 2월 15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이후 현재까지 환승구역에서 지내고 있다. [사진 이일 변호사]

난민인정 신청자 아프리카인 A씨는 지난 2월 15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이후 현재까지 환승구역에서 지내고 있다. [사진 이일 변호사]

아프리카인 A씨는 자국에서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2월 15일 인천국제공항에 환승객 자격으로 입국했다. A씨는 우리나라 입국을 위한 사증(비자)이 없는 상태라 입국심사대를 거치지 못한 채 지금까지 공항 환승 구역에 머물고 있다. 여행객들이 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노숙 생활을 한다. A씨는 공항에 온지 3일이 지나 난민인정 신청을 하겠다고 했지만, 법무부는 이를 거절했다. 난민법 제6조는 출입국항에서 ‘외국인이 입국심사를 받는 때’에 난민인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데, A씨는 입국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9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A씨는 3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인천지법에 난민인정 신청 접수 거부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천지법은 4일 “법무부의 조치가 위법하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공항 환승객의 난민인정 신청도 한국 정부가 받아줘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난민법 등의 취지를 종합하면 출입국항에서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려는 외국인이 난민인정 신청 의사를 표명할 때는 관할 지방출입국 · 외국인관서의 장은 난민 신청 작성과 접수를 돕는 의무가 있다"며 "외국인이 반드시 출입국항 내 ‘입국심사대’라는 특정 장소에 도달한 경우에만 난민인정 신청을 할 수 있음을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법무부는 1심 판결에 대해 “난감하다”며 항소할 계획을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비자가 없는 A씨가 인천공항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입국 심사를 받지 않고 환승 목적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라며 “환승객들의 난민 신청을 허용하면 비자 없이 환승 목적만으로도 국내로 입국이 가능해져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 난민법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외국인이 난민인정 신청서를 제출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난민 심사에 회부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면 신청자의 입국을 허가해야 한다. 한해 인천공항 환승객은 250만명이 넘고, 공항 내 상시 난민심사 인력은 1명에 불과해 제도 운용에 어려움이 크다는 게 법무부 입장이다.  
 
A씨를 변호하는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법무부의 항소 계획에 반발했다. 이 변호사는 “국제 규범과 난민협약, 국내 난민법 해석에 따르면 난민인정 신청 대상에 환승객을 배제한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며 “난민 신청자들은 비자를 받지 못해서 난민인정 신청을 하는 것인데, 법무부가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난민심사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의 항소 계획에 따라 A씨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현재 머무르고 있는 인천공항 환승 구역에서 노숙 생활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변호사는 “법무부가 입국허가를 하지 않더라도 임시 상륙허가 등 인도적 차원의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