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文 "기부 투명성 강화" 천명에도 기부금품 법령 개정 지지부진

중앙일보 2020.06.10 05:01
회계 부정 논란이 불거진 정의기억연대 사무실 앞. 뉴스1

회계 부정 논란이 불거진 정의기억연대 사무실 앞. 뉴스1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정의기억연대) 논란을 계기로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관련 법령 개정 작업은 일부 시민단체 등의 이견에 부딪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안부 ‘기부금품법 법령 개정’ 안건 돌연 제외
시민단체 반발에 ‘상세정보 공개’ 조항 완화 반복
전문가 “기부자에게 충분한 정보 공개해야”

 행정안전부는 9일 국무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시행령)’ 개정안을 전날 안건에서 제외했다. ‘기부금품 모집 사용에 대한 기부자의 알권리 강화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 발송 계획까지 세웠지만, 이 역시 취소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9일 “일부 조문에 오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수정하려고 안건 상정을 미뤘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해당 문구가 무엇인지는 조율 중인 사안이라 밝힐 수 없지만, 기부자 요청 시 세부 사용명세 공개 범위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기부자가 홈페이지에 공개된 것보다 더 자세한 내용의 사용명세 장부 등을 기부금품 모집자에게 요청할 때 이를 공개하게 하는 것과 관련한 규정이 포함된다. 이때 공개 서류를 어떤 것으로 할지 논의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행안부는 지난해 6월에도 같은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 올린다고 알렸다가 제외했다. 당시에도 ‘기부자 요청 시 세부정보 공개’ 관련 시민단체와 이견 조율이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 측은 “일반적으로 조율을 마치고 안건 상정을 결정하지만, 간혹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사안이 있다”며 “국민의 관심이 큰 데다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국회 동의 없이 바로 공포·시행되는 건이라 더 면밀히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행안부가 이 시행령 개정 작업에 나선 것은 2018년 12월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과 ‘새희망씨앗’ 단체의 기부금 악용 사례 등이 계기였다. 2018년 12월 처음 입법예고한 개정안에는 기부자가 모집자에게 추가 정보공개를 요구하면 모집자는 7일 안에 해당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이 기간을 7일에서 14일로 연장해 지난해 12월 다시 입법예고 했다. 
 
 이번 국무회의에 올릴 개정안에는 기부자가 모집자에게 세부 사용 정보 등을 요청할 수 있지만, 모집자가 이를 공개해야 한다고는 명시하지 않았다. 의무 조항을 제외해 내용을 완화한 셈이다. 
 
 이에 관해 행안부 관계자는 “공개해야 한다고 의무로 단정하면 벌칙 조항을 적용하는 데 문제가 있어 방향성만 담았다”며 “현 시행령에는 기부자가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그것을 개정안에서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기부금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범위를 조정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시행령이 개정되면 기존에 없던 규제가 새로 생기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개정안은 이 건 외에도 다른 규제 강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중생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가 공판을 받기 위해 2017년 11월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여중생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가 공판을 받기 위해 2017년 11월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부자가 기부금을 어디에 썼는지 알려달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최대한 모집단체가 정보를 공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다만 기부자들은 기부금의 최소한 몇 퍼센트는 행정비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 부분만 서로 합의된다면 모집자는 기부자가 원하는 정보를 충분히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행안부는 문 대통령의 기부 관련 발언이 있었던 날 조문 수정에 들어간 것과 관련해 “2018년 말부터 준비해온 사안이기 때문에 대통령 발언과는 상관없으며, 특정 모집단체와 직접 이견을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실과 협의해 개정안을 정한다”고 밝혔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