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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외부의견 승부수’···2년전엔 기소 위기 검사장 살렸다

중앙일보 2020.06.10 05:00
불법 경영승계 혐의 등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불법 경영승계 혐의 등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구속을 면한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검찰에 요청한 수사심의위원회는 2년 6개월이란 짧은 역사에 비해 중요 사건의 길목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20만쪽 수사기록 0.0015%로 압축한 30쪽 의견서가 핵심

2018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팀이 수사외압 혐의로 현직 검사장들을 기소하려할 때도 요청됐다. 같은 해 불법파업 혐의를 받았던 기아차 노조원들의 불기소 결정도 수사심의위원회 권고 때문이었다. 2019년엔 수사심위원회가 3년 6개월째 복직 투쟁을 벌였던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원청업체 기소를 권고하기도 했다. 
 

20만쪽 수사기록 중 0.0015% 추려내야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2017년 "검찰 수사의 투명성을 확대하겠다"며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만든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 측의 요청으로 또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사건 관계자가 요구할 시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토록 하는 이 제도에 대한 이 부회장 측과 검찰 수사팀의 의견은 엇갈린다. 
 
양측은 당장 이 사건의 수사심의위원회 채택 여부를 결정할 11일 부의위원회에 'A4용지 30쪽 이내' 의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20만쪽의 수사기록 중 0.0015%의 알맹이만 추려내 위원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의위원회에선 본 심의위원회와 달리 의견서 외 구술 변론은 허용되지 않는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관련한 외압 의혹을 폭로했던 안미현 검사가 2018년 5월 15일 서초구 교육문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관련한 외압 의혹을 폭로했던 안미현 검사가 2018년 5월 15일 서초구 교육문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강원랜드 항명사태 사례  

앞선 수사심의위원회 사례 중 언론의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사건은 2018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팀이 김우현 대검반부패부장(퇴직)과 최종원 남부지검장(퇴직)을 수사 방해혐의(직권남용)로 기소하겠다고 밝힌 항명 사태였다. 
 
문 총장이 "수사 지휘의 일환이었다"고 반대하자 수사팀은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사심의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대검에선 "엄밀한 법리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현직 검사장 회의체를 요구했고, 수사팀이 반대해 양측의 절충안인 '전원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자문단'이 결정됐다. 
 
7명의 자문단은 판사 출신 변호사(2명), 검사 출신 변호사(2명), 법학 교수(2명), 비전관 출신 변호사(1명)로 구성됐다. 각계 전문가 15명이 사건을 논의하는 수사심의위원회와 구성은 달랐지만 검찰이 기소 전 '외부 의견'을 듣는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다. 당시 7명의 전문자문단은 약 이틀간 수사기록을 봤다. 
 
2018년 5월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에서 퇴근하던 중 강원랜드 수사외압 의혹 관련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2018년 5월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에서 퇴근하던 중 강원랜드 수사외압 의혹 관련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수사팀과 당시 기소 대상이 된 검사장들의 변호인은 수사심의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자문단에 프레젠테이션(PT)를 했고 의견서를 냈다. 결과는 만장일치로 김우현 검사장 불기소, 다수 의견으로 최종원 검사장도 불기소였다. 수사팀은 이 권고에 따라 두 검사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당시 자문에 참여했던 복수의 관계자는 "수사기록이 방대해 결국 양측의 PT와 의견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 수사기록을 모두 읽은 위원도 있었지만 말이다. 자문단 관계자는 "이 부회장 측 사건의 수사기록만 20만쪽이라 들었다. 결국 검찰과 변호인단의 PT와 의견서가 심의위원회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 말했다. 당시 강원랜드 수사팀과 검사장 측 변호인이 제출했던 의견서에 대해선 "정말 핵심만 담겨 사건 파악에 큰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사건 복잡" vs "더 복잡한 사건도 다뤄" 

검찰 내부에선 이 부회장 사건을 수사심의위원회에 올리는 것에 부정적이다. 강원랜드 사건보다 더 엄밀한 법리적 판단을 받아야 할 사건에 외부 위원을 소집해 의견을 묻는 방법이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 검찰 측은 9일 이 부회장의 영장 기각 사유를 언급하며 "영장전담판사도 사건 기록을 4일간 본 뒤 법원에서 따져보라 하지 않았냐"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의 주임 부장검사인 이복현 부장검사가 2016년 국정농단 특검에 출근하던 모습. [중앙포토]

이재용 부회장 사건의 주임 부장검사인 이복현 부장검사가 2016년 국정농단 특검에 출근하던 모습. [중앙포토]

훈련된 판사가 수일에 걸쳐 기록을 확인한 뒤도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을 외부 위원이 PT와 압축된 의견서를 보고 기소 여부를 결정해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 측에선 "이 사건만큼 복잡한 사건도 수사심의위원회를 거쳐 기소 여부가 결정됐다"며 "검찰이 스스로 만든 제도를 형해화하려는 것"이라 반발했다. 또한 "수사심의위원회 위원들도 각계 각층의 전문가"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2018년 기아차 노조파업 사건과 2019년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심의위원회 권고에 따라 검찰은 기아차 노조원들을 기소 유예 및 무혐의 처분했다. 반면 불법파견 혐의를 받은 아사히글라스는 심의위원회 권고에 따라 기소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당시 노조 관련 사건들도 전문 공안통 검사들이 붙어야 했을만큼 복잡한 사안이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사건이 수사심의위원회에 부의될 경우 양측은 검찰총장이 위촉한 15명의 전문가 앞에서 30분가량의 프레젠테이션을 해야한다. 강원랜드 사건과 같이 양측이 조율해 전문자문단이 구성될 가능성도 있다. 대검찰청 예규에 따르면 검찰은 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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