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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어느 소년의 죽음

중앙일보 2020.06.10 00:51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9세 소년의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일곱 시간 동안 여행가방 안에 갇혀 생명줄을 놓아 갈 때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계모는 아이를 감금해 놓고 태연히 외출했다. 며칠 새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천안 소년 얘기다.
 

학대가정으로 돌려보내진 소년
그의 죽음 뒤에 숨은 ‘가족주의’
아동 인권 앞서는 친권은 없어

더욱 안타까운 건, 수사 당국이 아동학대 정황을 이미 알고 있었단 점이다. 계모는 한 달 전에도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아이는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학대로 보이지만 원가정 보호 조처한다”는 결론을 내려서다. 이때라도 아이와 가정이 분리됐더라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단 얘기다. 귀가 후 적절한 모니터링도 없었다.
 
보건복지부의 ‘2018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의 10%가 재학대다. 가해자의 77%가 친부(44%)·친모(30%) 등 부모고, 발생 장소의 79%가 집 안인데도 경찰 조사를 받은 아이들의 82%가 집으로 돌아갔다. 재학대로 신고된 아동도 69%나 귀가 조처됐다. 지난해 손발이 묶인 채 계부에게 폭행당해 숨진 인천의 5세 소년도 2년간 시설 보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26일 만에 변을 당했다. 아동복지법 4조의 ‘원가정 보호 원칙’이 빌미를 제공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해서 보호할 경우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그 조항 말이다. 아동복지법 개정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이유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정부가 최근 전 국민에게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며, 세대(가구)의 주인인 ‘세대주’로 신청·수령 자격을 제한한 것도 문제가 많다(세대주가 아니라면 따로 이의신청 절차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한 세계 각국 중 개인 아닌 세대별 지급 사례는 거의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1인 가구 40만원에서 4인 가구 이상 100만원까지로, 지원금의 ‘4인 가구 상한선’을 둔 것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다. 저출산 시대에 출산을 장려하면서 이럴 땐 다둥이·다세대 가구가 역차별당하는 셈이니 납득 불가라고 분통을 터뜨리는 이가 많았다.
 
얼핏 전혀 다른 두 장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재난이든 폭력이든 사회적 문제의 해결 단위는 가정이며, 개인보다 가정을 앞세우는 강한 ‘가족주의’의 확인이다. ‘내 가족이니까 내 맘대로’가 출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동복지법상 ‘원가정 보호 원칙’은,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안전 보장’ 아닌 ‘가정의 유지 및 회복’을 주요 목적으로 내세우는 것과 똑 닮았다. 재난지원금의 세대주 지급은 ‘남성 1인 생계 부양자 모델’이 붕괴하는 현실과 동떨어질 뿐만 아니라 성평등에도 위배되는 가부장적 발상이다.
 
국민을 개인 아닌 세대주와 세대원으로 호명하는 사회, 폭력 현장에서도 피해자 보호보다 가정 유지를 앞세우는 사회. 이는 아직도 ‘개인’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사회다. 동시에 국가는 뒷짐 지고 가정 단위로 모든 책임을 떠넘기니 그 부담이 힘겨운 구성원들이 ‘저출산’으로 어깃장을 놓는 사회이기도 하다.
 
한편 천안 소년의 계모는 “아이가 거짓말을 해 훈육 차원에서 가방에 들어가라고 했다”는 뻔뻔한 변명을 내놓았다. 정부가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아동학대를 막겠다며 민법의 ‘친권자 징계권’ 조항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공표한 지 1년이 넘었으나 달라진 건 없다. 프랑스·독일 등 54개 주요국에서는 일찌감치 자녀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유난한 친권의식이 징계권 삭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데, 굳이 ‘사랑의 매’를 들어야만 훈육이 된다는 양육 모델도 이제는 시효가 다한 것 아닌가. 무엇보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으로 보는 아동 인권 의식 확대가 아동학대 근절의 출발점이란 덴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독립된 개인으로서 자녀의 인권을 앞서는 친권이란 없으니 말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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