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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검찰, 믿었던 증인에 발목 찍혔다…‘피해자’가 피고인 감싸

중앙일보 2020.06.10 00:30 종합 23면 지면보기

대통령 비판 대자보 붙인 청년, 법정에 서다

지난해 4월 보수성향 학생단체 ‘전대협’이 붙인 대통령 비판 대자보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야권단체인 ‘행동하는 자유시민’ 대표인 이언주 의원(당시)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 중단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4월 보수성향 학생단체 ‘전대협’이 붙인 대통령 비판 대자보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야권단체인 ‘행동하는 자유시민’ 대표인 이언주 의원(당시)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 중단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납득할 수 없는 비판이나 비난도 참을 수 있습니까?”
 

검찰 증인으로 출두한 단국대 과장
“피해 본 것 없고 처벌 원치 않는다”
“MB 땐 맘껏 욕해놓고…내로남불”
검 ‘불법행위’ 강조, 23일 선고 관심

2017년 2월 9일 JTBC ‘썰전’에 출연한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는 진행자가 이런 질문을 하자 “참아야죠, 뭐.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죠”라고 했다. 다시 진행자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비난, 비판에도 청와대는 절대 고소·고발하지 않는다고 해달라”고 하자 문 후보는 “그렇게 권력자를 비판함으로써 국민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집권 이후 상황은 거꾸로다.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나 전단 살포자가 기소·처벌당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된 사례가 지난해 11월 24일 천안 단국대에 대자보를 붙인 김모(25)씨가 ‘건조물 침입’ 혐의로 벌금 100만원 형에 기소돼 법정에 선 것이다. 이 사건이 본지(중앙일보 1월 9일자 28면)보도로 알려지면서 “대학에 대통령 비판 대자보 붙였다고 침입죄라니”란 비판이 잇따랐다.
 
문재인 정부는 5공 당시 해만 뜨면 대학가를 돌며 대통령(당시 전두환) 비판 대자보를 붙여온 586 운동권이 핵심이다. 그런 정부 치하에서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청년이 전과자가 될 처지에 몰렸으니 이런 자가당착이 없다.
 
지난달 20일 오후 4시 30분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305호 법정. 김씨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하이라이트는 김씨가 ‘침입’했다는 단국대 측 입장을 듣는 것이었다. 검찰이 ‘피해자’로 지목한 단국대 학생팀 진광민 과장이 법정에 섰다.
 
판사가 “김씨의 처벌을 원하느냐”고 묻자 진 과장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 피해를 본 것도 없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예로부터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보수 정권 때도 자유가 있었다. 이번 사건이 과연 재판까지 와야 할 문제인가 의문이다”고 했다. 그의 어조는 무겁고 진지했다. 판사는 말없이 재판을 끝냈다. 법조계에선 진 과장의 발언을 김씨의 유무죄를 가릴 핵심 근거로 꼽는다. ‘피해자’란 측에서 “피해가 없고 처벌도 원치 않는다”고 해서다. 진 과장에게 직접 물었다.
 
김씨가 단국대에 붙인 문제의 대자보. 문재인 정권의 친중 노선을 비판하고, 홍콩의 자유화를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유튜브 캡처]

김씨가 단국대에 붙인 문제의 대자보. 문재인 정권의 친중 노선을 비판하고, 홍콩의 자유화를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유튜브 캡처]

경찰은 단국대가 신고해 수사했다는데.
“2년 전에도 대자보가 단국대에 붙었었다. 그때 경찰이 ‘앞으로 또 이런 게 붙으면 연락 달라’고 했다. 지난해 말 (김씨가 붙인) 대자보가 발견됐기에 112로 (신고) 전화한 것도 아니고 ‘연락 달라’고 부탁한 경찰서 정보과 직원에게 업무협조 차원에서 알려준 것뿐이다. 만일 경찰의 그런 부탁이 없었으면 그냥 떼고 말았을 것이다. (경찰은 ‘불온 게시물’이란 표현을 썼다는데?) 그렇다.”
 
검찰은 ‘김씨가 대자보 붙일 걸 미리 알았다면 학교에 들어오게 했겠냐’고 질문했다는데.
“그 질문만 하더라. ‘그랬다면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것’이라고 답하긴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불온 게시물이 발견되면 연락 달라’는 경찰의 부탁이 없었다면 대자보를 그냥 떼고 상황을 끝냈을 것이란 점이다. 황당한 게 있다. 재판에 나가보니 검경이 지목한 피해자가 단국대도 아니고 나 개인으로 돼 있더라. 나는 경찰에 조사받은 적이 전혀 없고, 검찰에서도 전화 한 통만 왔을 뿐이다. 판사가 내게 ‘김씨 처벌을 원하느냐’고 묻길래 ‘내가 처벌을 원하고 안 하고가 중요하나’고 되물으니 ‘피해자가 당신으로 돼 있다’는 거다. 놀라서 ‘내가 피해를 봤다는 거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그런데 난 솔직히 피해 본 게 없다. 그래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가 잡힌 과정은.
“2018년에 단국대에 반정부 대자보가 붙으니까 경찰이 CCTV를 뒤졌는데 그 장소엔 CCTV가 없었다. 게다가 대자보는 떼어진 상태였다. 그러자 경찰이 대자보를 뗀 근로학생들 주민등록번호까지 다 적어갔다. 그러면서 ‘CCTV가 없다’고 푸념하더라. 그런데 이번엔 김씨가 대자보를 붙이는 모습이 CCTV에 잡혀 색출된 것이다. 김씨가 마침 교수 연구실이 가장 많은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대자보를 붙이면서 일이 커진 측면이 있다. 경찰 부탁만 없었으면 평소처럼 대자보를 그냥 떼고 말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오히려 김씨를 칭찬해주고 싶다. 젊은 학생이 그런 깨어있는 생각을 가진다는 게….”
 
재판 분위기는 어땠나.
“법정에 가 보니 심각하더라. 이런 사안을 재판까지 끌고 간 것 자체가 말이다. 오죽하면 재판 며칠 뒤 김씨가 벌 받았는지 걱정돼 사건번호로 검색까지 해봤다. 만약 김씨가 유죄를 받아 항소하면 법정에 또 나가 증언해줄 수 있다.”
 
단국대엔 정부 비판 대자보가 그전에도 많이 붙지 않았나.
“그렇다. 붙으면 그냥 떼고 끝냈다. 신고 한 적도 없다.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지금은 개그맨이 대통령 욕하면 개그맨 생활 못 한다. 이해가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욕 안 했나. ‘2MB’니 ‘쥐’니 갖은 욕 다 하지 않았나. 이런 내로남불이 싫다. 20대 청년 김씨가 이렇게까지 된 게 마음 아프다.”
 
경찰은 “김씨의 기소는 ‘불법 침입’ 때문일 뿐 대자보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김씨가 단국대 허락 없이 들어간 건 불법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 변호인 이동찬 변호사는 “단국대의 출입자 제한은 매뉴얼일 뿐 학칙에조차 관련 규정이 없어 ‘불법’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김씨의 ‘대공 용의’를 들여다본 것으로 드러났고 검찰도 일반 검사 대신 공공수사 전담 검사에 사건을 배당했다”며 “권력을 의식한 정치적 기소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당사자인 김씨도 “경찰 수사가 침입 여부보다는 대자보 내용과 붙인 경위, 배후 추궁에 집중됐다”며 “침입은 핑계일 뿐 대통령을 비판한 ‘죄’를 묻는 인상이 강했다”고 했다.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 이번 사건은 오는 23일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대통령 비판 전단 살포하면 '모욕죄'?
영등포 경찰서가 김정식씨에게 ‘대통령 문재인 등에 대한 모욕 내사’로 출석을 요구한 공문.

영등포 경찰서가 김정식씨에게 ‘대통령 문재인 등에 대한 모욕 내사’로 출석을 요구한 공문.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청년이 ‘건조물 침입’ 혐의로 기소된 것도 논란이지만 대통령 비판 전단을 살포한 청년이 ‘(대통령) 모욕’ 명목으로 7개월째 수사받고 있는 상황도 논란이다.  
 
지난해 7월 국회 분수대 주변에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 여권 인사들을 비판하는 전단을 살포한 김정식(32)씨는 넉 달 뒤인 11월‘대통령 문재인 등에 대한 모욕(비방) 내사 사건’의 참고인으로 서울 영등포서에 소환됐다. 이후 김 씨는 석달간 휴대전화를 압수당하고 10차례 포렌식 조사를 받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아왔다.
 
‘모욕’ 혐의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다. 그러나 김씨에 따르면 경찰은 김씨에게 피고소 여부와 고소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판사를 지낸 이충상 변호사는 “모욕 혐의로 수사한다면 고소 여부와 고소인을 피의자에 알려주고 진행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김씨는 “경찰에 고소인이 누구냐고 질문하면 ‘절차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만 하더라. ‘대통령님 욕하면 되냐’고도 하는데 국민이 대통령 비판할 자유도 없나”고 했다. 그는 “수사 초기 경찰이 내게 ‘VIP(청와대)에 다 보고됐다. ‘북조선의 개’란 표현이 특히 문제였다. VIP에서 콕 집어 처벌하라고 하더라’고 했다”며 “청와대 하명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려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영등포서 관계자는 “경찰이 김씨에게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면서 “친고죄라도 공소제기 가능성이 있다면 수사할 수 있어 적법하게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김씨를 모욕죄로 고소했나”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수사사항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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