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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의 문화 예술 톡] 조지 플로이드와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

중앙일보 2020.06.10 00:23 종합 24면 지면보기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세계인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스위스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들이 문득 이 죽음에 대해 묻는다. 이 허무하고 부조리한 죽음에 대해 열 한 살 아이가 던지는 ‘왜’ 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할까. 인류의 문명과 사상의 진보 속에서도 청산할 수 없는 과오가 있다면 바로 이런 차별일 것이다. 피부색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운명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나는 아이에게 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초상화 하나를 보여주었다. 스페인의 궁정 화가로 명성을 떨치던 벨라스케스가 1650년 자신의 노예이자 조력자였던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을 그린 그림이었다. 짙은 피부의 얼굴을 한 노예 후안은 고급스러운 갈색 외투를 입고 있고 오른손을 배와 가슴의 사이에 얹은 채 시선은 조용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어두운 옷 색깔과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새하얀 색깔의 고급 레이스 깃이 그의 어깨를 덮고 있다. 그의 이마와 콧등을 비추는 빛에 의해 후안의 검은 눈동자의 표현을 또렷이 느낄 수 있다. 그의 눈동자는 순수하고 진지하고 우아하며 우수에 차 있는 한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벨라스케스가 어떻게 이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주로 왕족이나 귀족·교황 등 백인 기득권층의 초상화를 그렸던 그가 그린 후안의 초상화에서 인간의 숭고함과 고귀함을 느낄 수 있다. 빼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던 후안이 지녔을 화가로서의 자부심과 예술가로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맺힌 한이 뒤섞인 저 시선을 그려나가던 벨라스케스의 마음이 한없이 겸허해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 1650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 1650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래서였을까? 이 그림이 그려진 이듬해 후안은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고 화가로서 여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한편 후안의 초상화는 1970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520억 원이 넘는 기록을 세우며 낙찰되었고 이듬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팔렸다.
 
프랑스 파리에 살 때 아이의 야외 수업에 동반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우루루 지하철에 올라탔는데 한 백인 엄마가 자신의 아들 옆에 있는 빈 자리 옆에 흑인이 앉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를 그 자리에 앉지 못하게했다. 예기치 못한 이 폭력적 상황에서 분노와 체념이 교차했던 그 흑인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무심코 엄마의 말을 들었던 아이의 마음에 새겨질 인간에 대한 차별로 인해 수많은 조지 플로이드가 생겨날 수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비춰줘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무심코 길들여진 차별의 잣대를 들이대며 우월감에 빠져들려 할 때 후안 데 파레하를, 진지하고 명석한 한 화가의 숭고한 시선을 떠올리길 기대해 본다.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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