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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남한을 적으로 규정한 북한…대북정책 재검토할 때

중앙일보 2020.06.10 00:12 종합 30면 지면보기
북한이 어제 청와대 핫라인과 군 통신선을 포함한 모든 남북한 통신·연락 채널을 차단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지시라면서 ‘대남사업’을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남한 전체를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대북 포용정책과 화해정책을 펼친 김대중 정부 이후 20년 만에 처음 등장한 표현이라고 한다.
 

이제 대북 저자세와 감싸기로는 한계
예상되는 대적사업 도발 철저 대비를

남한을 적으로 규정한 만큼, 북한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북한은 남북 군사합의 파기를 예고한 데 이어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도 심의했다고 밝혔다. 휴전선이나 서해 일원에서의 저강도(低强度) 국지 도발은 물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등 전략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안보 당국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시곗바늘을 남북 대결 시대로 되돌리려는 듯한 북한의 강경 태도는 일차적으로는 김정은 비난 문구 등을 담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계획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문제도 아닌 그 문제에서만은 용서나 기회란 있을 수 없다”거나 “최고존엄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사수할 것”이라고 한 데서 북한의 의중이 읽힌다. 하지만 탈북자 단체의 행동을 놓고 남북 정상 합의사항인 군사합의 파기를 위협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북한의 속셈은 대북 전단을 빌미로 한 긴장 조성과 대남 도발 명분 축적, 한국 정부에 대한 길들이기 등 다목적 포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와 여권은 김여정의 성명 직후 전단 살포 금지 법안 추진에 나섰고, 이에 대한 찬반을 놓고 여야 대립과 여론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겉으로는 핏대를 세우면서도 속으로는 “거 봐라”며 웃고 있을 게 틀림없다.
 
정부·여당이 북한 감싸기나 대북 저자세로만 일관해서는 북한의 태도를 되돌려 놓을 수도 없고, 도발을 막을 수도 없다. 지난 3년간 상대방의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대화 일변도만 고집해 온 대북 정책이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닌지 정부는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한다. 북한이 원색적인 용어로 남한 당국을 조롱하고 한국 배제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절대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무시에서 비롯된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북 정책 재검토와 함께 북한의 예상되는 도발에는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최근 군 기강 해이 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과연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군 당국,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는 북한이 남한을 적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바닥을 드러낸 대북 낙관론으로는 ‘대적사업’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대화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속셈을 간파하고 도발에 대한 빈틈없는 대비 태세를 갖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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