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지 '삐라'때문? 文 대북성과 '9·19 군사합의'도 위태롭다

중앙일보 2020.06.09 14:27
북한이 9일 남북한 통신선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뒤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날 오전 9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한 남북 당국간 통신선, 남북 군 당국 사이 동ㆍ서해 통신선과 국제상선공통망에서 북한의 응답이 없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의 창린도 방어부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1월 25일 보도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해안포가 발사됐다. 창린도는 9ㆍ19 군사합의에 따라 포사격이 금지된 완충구역 안에 있다. 북한의 창린도 포사격 훈련은 9ㆍ19 군사합의의 첫 위반사례였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의 창린도 방어부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1월 25일 보도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해안포가 발사됐다. 창린도는 9ㆍ19 군사합의에 따라 포사격이 금지된 완충구역 안에 있다. 북한의 창린도 포사격 훈련은 9ㆍ19 군사합의의 첫 위반사례였다. [연합뉴스]

 
북한의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남북한 통신선 전면 차단 방침을 전하면서 이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지시'라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고 밝혔다.
 
‘단계적 대적 사업 계획들’의 내용과 관련, 김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한국의 탈북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면서 나열했다. 김 제1부부장은 “남조선(한국)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그것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있어야 시끄럽기밖에 더하지 않은 북남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하여튼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대북정책의 상징이 된 남북 군사합의는 2018년 9월 19일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서명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9ㆍ19 군사합의)’를 뜻한다. 남북한 군 사이 우발적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5개 분야의 조치들이 들어있다. 이에 따라 9ㆍ19 군사합의가 2년 만에 깨질지 관심이 쏠린다.
 
지금까지 남북은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의 군사훈련 중지 ▶MDL 인근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비무장지대(DMZ) 안의 감시초소(GP) 일부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등을 실천했다. 하지만 ▶서해 해상에서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 구역 설정 ▶남북한 군사 문제를 논의하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남북 공동 유해 발굴 사업 등은 북한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이행할 수 없었다.
 
남북 군사당국이 지난 2018년 12월 9·19 군사합의 이행 차원에서 시범 철수한 비무장 지대(DMZ) 내 감시초(GP) 상호 검증에 나섰다. 북측 현장검증반이 우리측 검증반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북한은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면서 시범 철수한 GP의 복구를 시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군사당국이 지난 2018년 12월 9·19 군사합의 이행 차원에서 시범 철수한 비무장 지대(DMZ) 내 감시초(GP) 상호 검증에 나섰다. 북측 현장검증반이 우리측 검증반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북한은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면서 시범 철수한 GP의 복구를 시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은 9ㆍ19 군사합의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항만 골라 지키는 ’체리피킹‘을 해왔다”며 “향후 한국이 굽히고 협상장에 들어오지 않으면 9ㆍ19 군사합의 폐기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김여정이 9ㆍ19 군사합의를 끝으로 언급한 것은  9ㆍ19 군사합의 파기가 한국에 대한 3단계 조치 중 제일 마지막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서해 완충 구역인 창린도에서 포사격 훈련, 지난달 3일 동부전선 DMZ에서 총격 등 이미 두 차례 9ㆍ19 군사합의를 어겼다. 이날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저쪽(북한)에서 (9ㆍ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면 자동으로 폐기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최현수 대변인은 “상황을 지켜보겠다”고만 답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9ㆍ19 군사합의 파기 이후 군사적 행동에 나설 우려가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문성묵 센터장은 “탈북단체의 삐라가 담긴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하거나, 서해 완충 구역에서 다시 한번 포사격 훈련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대진 교수는 “북한이 철수 후 폭파했던 DMZ GP를 복구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복구공사만 시작해도 한국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자신의 명의로 담화를 내기에 앞서 내부적인 검토 작업과 준비절차를 거쳤을 것”이라며 “북한이 이처럼 오랜 기간 준비를 해 왔다면 남측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에 나설 수도 있고, 남측의 대응과 국제사회 분위기를 봐가면서 대응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용수·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