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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철저히 적으로"…통신망 끊어버린 北, 775일만에 돌아섰다

중앙일보 2020.06.09 11:32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강력히 반발해온 북한이 9일 오후 12시부터 남북한의 모든 통신선을 차단하고, 대남 사업을 '대적(對敵) 사업'으로 전환키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보도’ 형식을 통해 전날(8일) 대남사업부서 사업총화 회의 개최 사실을 전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북한은 오전 9시에 예정했던 서울~평양 간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시통화부터 응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북측이 차단·폐기 시점으로 제시한 낮 12시에도 통화를 시도했으나 불응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측) 공동연락사무소는 예정대로 북측과 통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북측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북한은 8일에도 오전 9시 개시 통화에 응하지 않았지만, 오후 5시 마감통화는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남북관계 중단을 예고한 만큼 통화 재개가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이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해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 채널을 완전히 차단·폐기한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2018년 4월 20일 청와대에 설치된 남북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직통전화)을 이용해 당시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실장(오른쪽)과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이 북한 국무위 담당자와 시험통화 하는 모습.[연합뉴스]

북한이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해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 채널을 완전히 차단·폐기한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2018년 4월 20일 청와대에 설치된 남북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직통전화)을 이용해 당시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실장(오른쪽)과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이 북한 국무위 담당자와 시험통화 하는 모습.[연합뉴스]

 
북한은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 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라는 보도에서 “남조선당국과 더이상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8일 회의에서 김영철 당 부위원장과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어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며 “우선 먼저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 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청와대-국무위원회 간 핫라인을 포함해 당국 및 군 통신선(동ㆍ서해), 통신시험선 등이 대상이다.
 
이로써 2018년 4월 20일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 개통된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은 한 번도 가동되지 않은 채 781일 만에 끊기게 됐다.
 
지난 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에서 “(남측을) 피곤하게 할 것”이라고 했던 북한은 통신선 차단을 “우선”, “첫 단계의 행동”이라고 한 데 이어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고 밝혀 추가 조치도 예고했다. 양무진 북한 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과거에도 남북관계 경색국면을 조성하는 첫 단계 조치로 연락을 차단했다”며 “대북전단 문제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당분간 냉각기로 가져가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2018년 4월 20일 청와대에 설치된 남북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직통전화) 전화기.[연합뉴스]

2018년 4월 20일 청와대에 설치된 남북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직통전화) 전화기.[연합뉴스]

 
특히 북한이 ‘대적 사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에 따라 판문점 선언(2018년 4월 27일) 이후 조성됐던 평화 분위기가 급랭할 것으로 전망된다. 판문점 선언에서 김 위원장은 새벽 시간대에 미사일을 쏘지 않겠다는 뜻으로 “더 이상 새벽잠을 설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 26일엔 1차 북ㆍ미 정상회담(싱가포르)을 앞두고 하루 전에 제안해 2차 정상회담을 여는 등 남측과 긴밀한 협의 체계를 유지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2차 북ㆍ미 정상회담(베트남 하노이)이 결렬된 이후 남북관계가 냉각기를 보이다 북한이 결국 이날 대적 업무로 전환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판문점 선언 775일 만에 남북관계가 ‘단절’ 위기에 놓였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이 이같은 조치를 취한 명분은 지난달 31일 탈북자 단체들이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적 행동 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이라고 쓴 대북 전단이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은 최고지도자를 ‘최고 존엄’으로 여기면서 목숨으로 보위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며 “이런 사실이 내부에 알려진 이상 담당자들이 가만히 있기 어려웠겠지만, 그동안 남측에 쌓인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통전부 대변인도 지난 5일 발표한 담화에서 “일체 접촉공간들을 완전 격페(격폐)하고, 없애 버리기 위한 결정적 조치들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가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활용해 북측과 시험 통화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군 관계자가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활용해 북측과 시험 통화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누적된 남측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더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며 단번 도약을 제시했다”며 “그러려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하는데,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차질을 빚었고, 자신이 조건 없이 하겠다고 밝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지난해 신년사)가 어려워지자 남측에 불만이 쌓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대북 제재에 이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을 우려해 국경을 닫으면서 민생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자 북한 주민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남측을 표적으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날 북한의 통신선 차단과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통신선은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이므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며 “정부는 남북합의를 준수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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