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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연주자에게 두 번 거절 당한 차이콥스키 협주곡

중앙일보 2020.06.09 09:00

[더,오래] 이석렬의 인생은 안단테(15)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아내와 헤어진 것은 1877년이었다. 이듬해에 차이콥스키는 동생과 함께 스위스의 제네바에 있는 클라렌스에서 심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3월 14일에 그곳으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제자였던 요시프 코테크가 찾아와 스승에게 예의를 표하고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 악보를 보여주었는데, 이때 작곡가는 이 곡에서 몹시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두 사람은 이 곡을 함께 연주했으며 작곡가는 자신도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 후에 바이올린 협주곡은 무척이나 빠르게 완성되어 갔고 작곡가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기에 이른다. 차이콥스키는 당시의 열망에 대해서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이렇게 썼다.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이 꼽힌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이 꼽힌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오늘 아침 나는 불타는 영감으로 한없이 타올랐습니다. 내가 작곡한 이 협주곡이 심장을 파고들만큼 강력한 음악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그리고 이 협주곡과의 운명적 인연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이 협주곡은 작곡하는 내내 즐거웠고 처음부터 왠지 모르게 끌렸습니다. 이런 식의 속도라면 예상보다 빠르게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침내 4월 4일에 협주곡의 작곡이 끝났다. 그러나 차이콥스키는 2악장이 곡의 전체 구성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처음에 작곡했던 2악장을 포기하고 또 다른 2악장을 썼다. 4월 11일에 악보의 초고가 나왔다. 그렇지만 이렇게 완성된 명작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또 다른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작곡가는 이 곡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준 코테크가 협연자로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베를린에서 요아힘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던 코테크는 이 곡의 연주를 망설였다. 초연자로 나서기가 두려웠던 것인지 아니면 존경하는 스승의 반열과 함께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그는 이 곡의 초연을 하지 못했다.
 
10월에 가서 차이콥스키는 당대 최고의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인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이 곡의 악보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아우어 역시 이 곡의 연주를 거부했다. 당시 아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이 작품을 바이올린에 맞게 고치지 않는 한 이걸 그대로 연주할 수는 없소!”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드스키는 비엔나에서 시작하여 모스크바, 라이프치히, 뉴욕시, 맨체스터 등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그 과정에서 차이콥스키와 엘가와 같은 작곡가를 만나 함께 일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드스키는 비엔나에서 시작하여 모스크바, 라이프치히, 뉴욕시, 맨체스터 등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그 과정에서 차이콥스키와 엘가와 같은 작곡가를 만나 함께 일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그러다가 이 곡은 작곡가도 예상치 못한 무대에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모스크바 출신으로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교수로 있던 아돌프 브로드스키가 1881년 12월 4일에 빈 필하모닉 협회의 콘서트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초연한 것이다.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악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 작품을 동경해온 아돌프 브로드스키가 이 곡의 연주를 세상에 선언한 것이다. 초연자 브로드스키는 1882년 4월에도 런던에서 이 곡을 협연함으로써 곡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승격시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작곡가는 원래 예정되었던 헌정자 레오폴드 아우어 대신 브로드스키에게 이 작품을 헌정했다.
 
그때부터 브로드스키는 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이 협주곡을 연주했고 1890년대 초에는 미국에 가서도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브로드스키의 열정과 노력으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청중들의 찬사를 받기 시작했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음악이 되어갔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이 곡의 연주를 거부했던 아우어 역시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이 작품을 연주했다고 한다. 나중에 가서 이 작품의 뛰어난 해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우어는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이 작품을 줄곧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다. 아우어는 이 곡의 연주를 자신의 제자인 하이페츠에게도 가르쳤지만 이 곡을 세상에 알린 명연주자는 아돌프 브로드스키였던 것이다.
 
 
음악평론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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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렬 이석렬 음악평론가 필진

[이석렬의 인생은 안단테] 음악은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이제 바쁜 시절을 지나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음악을 즐기는 반퇴 세대들이 있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문화적으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음악을 감상하고 공연장을 방문하고 악기를 함께 연주한다. 음악이 함께 하는 삶은 아름답고 여유롭다. 본 연재물은 음악의 즐거움을 환기하고 음악을 통해 생활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을 지향한다. 음악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보충해주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한다. 이제 음악을 들으면서 여유를 갖고 삶을 더욱더 아름답게 채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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