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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짜리도 안보면 찜찜한데···1조대 M&A '언택트'로 질렀다

중앙일보 2020.06.09 05:00
코로나19 확산 이후 줌을 활용한 화상회의가 보편화되면서 기업 M&A 실사와 협상도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 이후 줌을 활용한 화상회의가 보편화되면서 기업 M&A 실사와 협상도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기업 인수·합병(M&A)까지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사례가 나왔다. 심지어 보안에 민감한 대규모 증권 거래와 벤처투자(VC)도 온라인 회의만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이런 '원격 투자'가 새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금융업계는 전망한다.  
 
미 경제 매체 CNBC에 따르면, 미국 통신 장비 업체인 시스코시스템스(시스코)가 선두 주자 격이다. 이 업체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네트워크 모니터링을 전문으로 하는 보안 업체 사우전드아이스를 10억 달러(약 1조2382억원)에 인수했는데, 모든 과정을 철저히 온라인으로만 진행했다고 밝혔다. 인수 과정은 2021년 1분기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해당 M&A를 주도한 양측 회사는 해당 절차에 대해 생소하긴 했으나 예상보다 어려움은 없었다고 밝했다. 토드 나이팅게일 시스코 부사장은 “상대 기업 관계자와 협상 테이블에 한 번 앉아보지도 못하고 기술·경영 실사를 진행하는 일은 처음이었다”며 “계약서 서명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충분한 소통 끝에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우전드아이스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모히트래드는 “지난 몇달간 시스코·줌·마이크로소프트(MS) 등 다양한 화상회의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대면 회의와 비교해 크게 제약을 느끼진 못했다”고 전했다. 
 
CNBC는 “10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M&A 거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원격으로 진행한 소식에 실리콘밸리와 금융투자업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블록딜은 골드만삭스의 재택 근무로 이뤄졌다. [EPA=연합뉴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블록딜은 골드만삭스의 재택 근무로 이뤄졌다. [EPA=연합뉴스]

 
M&A 뿐 아니라 대형 증권 거래도 ‘재택’ 트레이닝으로 대체됐다. 공유오피스 기업 위워크 등의 기업공개(IPO) 실패로 재무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은 4조5000억 엔(약 50조원)의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매각을 계획한 가운데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일본 지사 트레이더는 재택근무로 3100억 엔(약 3조4000억원)에 달하는 일본 사상 최대 규모의 블록딜을 성사시켜 화제가 됐다.  
 
블록딜이란 금융기관이 주식을 일단 인수한 후 이를 장외 시장에서 기관 투자자 등에 직접 재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금융기관이 매각하기 전에 시장 환경이 바뀌거나, 남은 물량을 떠안게 되면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비대면 업무가 늘어나면서 줌 주가는 올해 3배 넘게 급등했다. 이 덕분에 줌 창업자 에릭 위안은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로 거듭났다. [AP=연합뉴스]

비대면 업무가 늘어나면서 줌 주가는 올해 3배 넘게 급등했다. 이 덕분에 줌 창업자 에릭 위안은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로 거듭났다. [AP=연합뉴스]

 
3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닛케이)신문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일본 지사의 자본시장 대표인 이토 마리는 지난달 21일 자택에서 컴퓨터를 켜고, 줌을 통해 화상 회의를 진행했다. 이와 동시에 골드만삭스 직원 전용 계정으로 보안 강도가 높은 시스템을 이용해 팀의 수십명에 지시를 내려 소프트뱅크 주식을 매각했다. 거래는 도쿄증권거래소 거래 마감 이후부터 다음날 거래 개시 전까지 해외시장에서 단번에 이뤄졌다.  
 
닛케이는 “소프트뱅크그룹 간부·투자은행·투자자 등 모든 참가자가 준비 단계부터 ‘재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며 “일본 사상 최대의 거래를 원격으로 지휘하는 것은 골드만삭스에도 첫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외신은 이같이 투자업계의 변화에 대해 지난 3월만 해도 팬데믹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지 않아 대부분 투자를 일단 미뤘는데, 더는 업무를 지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CNBC는 “트위터 등 IT기업에 이어 투자업계도 줌을 활용한 화상회의로 업무를 대체하면서 사무실의 필요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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