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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부부의 세계’보다 더 끔찍한 부모의 세계

중앙일보 2020.06.09 00:35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혁진 소설가

이혁진 소설가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부부가 꾸는 악몽에 가깝다. 하지만 더 끔찍한 악몽은 그 아들이 보게 되는 부모의 세계다.
 

부모의 정당화에 이용되는 아들
자식에겐 이혼보다 더 큰 상처
합리화된 폭력에 익숙해진 탓

잠시 중학생 이준영이 돼 보자. 준영은 다짜고짜 납치당하듯 엄마의 차에 타게 된다. 깊은 물이 보이는 절벽. 엄마는 양팔을 움켜잡은 채 윽박지른다. 엄마와 살아야 한다고, 아빠가 우리를 배신해 다른 여자와 결혼해 아이도 낳을 것이라고. 준영은 우선 더 친한 아빠 편을 든다. 엄마는 네 아빠와 똑같다는 듯 쳐다본다. 내가 이렇게 산 건 너 때문이라고, 너 없으면 엄만 죽는다고, 그러니 어서 엄마랑 살겠다 말하라며 준영을 절벽쪽으로 밀어붙인다. 놀란 준영이 무섭다며 놔달라고 울먹이는데도. 아무리 아들을 뺏길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을 진정시키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왜 자신이 더 흥분하고 불안해하는 걸까? 어떻게 아들의 떨리는 몸, 겁에 질린 눈동자를 보면서도 침착을 되찾지 못하고 더 격앙하는 걸까? 지적이고 현명하다는 지선우의 인물설정을 떠올리면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다음 장면에서 지선우는 집에 혼자 돌아와 남편 이태오를 부른다. 아들을 살해한 것처럼 말해 이태오가 자신을 폭행하도록 도발한다. 준영이 집에 들어오는 것은 그 폭행이 최악에 달했을 때다. 준영은 뭘 보게 되는 걸까? 단지 엄마를 때린 아빠가 아니다. 자신이 그때껏 믿고 의지해 온, 자신이 편들기까지 한, 그 아빠라는 사람이 괴물로 변한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게 과연 지선우의 통쾌한 복수일까?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들의 가슴에서 애정과 믿음을 뿌리부터 죽여버린 것인데, 그렇게 멍청하고 둔감한, 아들보다 복수를 더 원하는 엄마가 과연 존재할까?
 
원작 ‘닥터 포스터’가 이 장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자. 우선 아빠는 아들에게 거짓말한다. 막 침실에서 나온 차림으로 내연녀와 나란히 서 있으면서도 연인 사이냐고 묻는 아들에게 친구 사이라고 대답한다. 엄마가 아들을 납치하듯 데리고 간 곳도 위협적이지 않은, 넓은 초원이고 뒤로 집들이 있다. 아빠 편을 드는 아들에게도 엄마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아빠가 거짓말했다고, 돈도 다 써버려서 빚까지 생겼다고 설명한다. 남편을 도발하는 장면에서도 아들을 들여보내는 것은 아직 폭행이 일어나기 전이다. 죽은 줄 안 아들이 돌아오자 남편은 아내가 거짓말했다는 것뿐 아니라 아들에게 버림받았다는 것도 함께 깨닫는다. 폭행은 아들이 방으로 올라간 직후 짧고 돌연하게 일어나며 그래서 의미도 명확하다. 분풀이.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는 지나친 혼란과 고통으로 이성을 잃었다는 변호가 가능하지만 원작의 아빠는 외도를 한데다 엄마까지 때린 쓰레기일 뿐이다. 작가의 섬세하고 깔끔한 솜씨란 이런 것이다.
 
원작의 섬세함을 옮기지 못한 ‘부부의 세계’는 뒤로 갈수록 기상천외해진다. 지선우는 극심할 준영의 상처를 보살피기보다 남편에게 다시 뺏기지 않는 것에만 몰두한다. 준영에게 다시 접근한 이태오는 더 괴로워 보라는 듯 엄마가 자신을 속여 폭행을 조장했다고 알려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자신들의 감정이 사랑인지, 증오인지 구분조차 못한 채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다 매번 준영을 고해소 안에 억지로 앉힌다. 상대방을 단죄하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속삭인다. 널 위한다더니 실은 네 아빠가, 네 엄마가. 볼수록 기이한 부부다. 아이를 낳고 십수 년을 함께 살고도 그토록 어리석고 다랍게 사랑한다니, 피폐해지는 아들조차 보지 못할 만큼 욕망에 충실하고 이기적이라니. 굳이 누가 덜 나쁘다고 해야할까? 둘 다 현실이라면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부류, 끝없이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탓할 뿐 일말의 자기성찰도 없이 주변에 고통만 떠넘기는 민폐 덩어리들일 뿐이다.
 
원작의 아들은 두 사람에게 질리기도 했지만 엄마가 자신의 나이일 때 스스로 컸듯 자신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떠난다. 하지만 준영은 이미 버림받은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자기는 아버지처럼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는 아들 눈앞에서 트럭에 뛰어드는 아빠, 부모의 교통사고가 외도 때문에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트라우마가 있으면서 아들에게도 똑같은 트라우마를 심어준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준영에 대한 동정 여론은 드라마가 종반에 이르러서였다. 부부에게 몰입하느라 준영의 상처를 무심코 지나치고 만 것은 현실에서 이런 부부란 기이한 것이지만, 동시에 익숙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혁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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