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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의 퍼스펙티브] 시민사회는 민주화·운동권 세력과 결별하고 탈정치화를

중앙일보 2020.06.09 00:19 종합 23면 지면보기

박정희·노무현식 넘어서 국가 지배구조 재건축해야

지난해 3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원전 반대 퍼포먼스를 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원전 반대 퍼포먼스를 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파행과 윤미향 대표의 일탈 행위 가능성을 놓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의혹 제기가 이어지면서 정치·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는 언뜻 보기에 회계 투명성 이슈로 보이지만 근원적인 정치 리더십 구조와 맞닿아 있다. 최근 박정희식 3각 지배구조가 와해하고, 대안세력으로 등장한 민주화 세력, 운동권 세력, 시민사회는 국정 주도 과정에서 국가 지배구조의 내부 관계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
 

관료·재벌 주도 거버넌스 무너지고 시민사회 등장했으나
정치 내부자로 전락하며 순수함 잃고 정체성 위기 빠져
새 국가 지배구조 기본 가치는 균형·공정·창조·혁신에 두고
수평적 리더십과 견제·균형 속 시장·정부 역할 분담해야

국가 의사결정 구조에 시민사회를 포함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였다. 필자가 2003년 대통령 관저에서 만찬을 할 때 노 대통령은 국가 지배구조의 변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제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수직적 권위주의형 리더십은 수평적 리더십으로 바뀌어야 한다. 과거 군부 정치, 관료, 재벌의 3각 영합 구조는 종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제 시장과 정부의 역할 분담 체제 아래서 수평적 협업 구조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과도기적으로 불완전한 시장체제 아래서 시장지배력을 가진 재벌을 견제하고 정부 내 관료의 과잉 간섭을 막기 위해서는 무언가 사회적 감시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제 3지대의 시민사회를 각 부문에 걸쳐 대응시켜 시장 내 재벌과 정부 관료 세력을 감시·견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부(관료)-시장(재벌)-시민사회가 3각형을 이루는 새로운 지배구조를 상정한 것이다.
  
시민사회, 정치 내부자 되며 부패
 
지난 4일 용산 미군기지 반환 협상 과정 공개와 기지 오염 조사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뉴스1]

지난 4일 용산 미군기지 반환 협상 과정 공개와 기지 오염 조사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뉴스1]

필자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기는 하겠지만, 시민사회는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관료와 재벌을 직접 규제·관여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국회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민사회가 권력을 갖게 되면 이를 견제할 세력이 없고 자정 기능이 작동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부패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사회가 시장세력·관료사회와 견제·균형을 이루면 보약이 되지만 과도하게 권력화하면 독이 돼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고도 말했다. 노 대통령은 더 깊이 생각해 보자며 더는 논쟁을 계속하지 않았다.
 
사실 김대중 정부 때 환란 수습 주역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관료 그룹의 영향력은 노무현 정부 들어 급격히 퇴조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군사문화를 급격히 퇴조시켰듯 노 대통령은 관료와 시민사회를 대응시켜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면서 관료 그룹을 약화하려 노력했다.
 
지난 3월 한진칼 정기주총장 앞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안건 통과를 촉구하는 참여연대. 시민사회가 민주화·운동권 세력과 결탁해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지난 3월 한진칼 정기주총장 앞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안건 통과를 촉구하는 참여연대. 시민사회가 민주화·운동권 세력과 결탁해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고도성장을 견인했던 관료사회의 급격한 위축은 정부 세종청사 시대에 본격화됐다. 세종 공무원들은 시장의 생생한 정보와 그 속에서 생성되는 내부 정보로부터 멀어져갔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관료와 시민사회 간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려는 노무현식 균형 노력이 상당히 약화했다. 대신 서울에 있는 청와대가 사실상 모든 행정 권한을 장악했다. 대부분 586 운동권 세력과 시민사회 인사로 구성된 청와대는 강력한 인사권으로 관료들을 굴종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이 리처드 닉슨 美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리처드 닉슨 美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969년)

박정희식 지배구조의 한 축이던 재벌 체제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선단식 경영, 정경유착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또 공정이 생산성을 능가하는 중심가치가 되며 새로운 형태의 기업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더욱이 세금을 제대로 내고 나면 가업 승계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은 다음 세대에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며 공정 경영을 표방했다. 이는 다른 재벌그룹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0여 년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관료와 재벌 그룹을 중심으로 한 박정희식 3각 지배구조는 완전히 와해하고 있다.
  
이익 집단화하며 정체성 위기 빠져
 
노무현

노무현

반면 시민사회는 청와대와 국회에 대거 진출하고 운동권 세력과 공생하며 중요한 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탈원전 정책이나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등 급격한 정책전환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시민사회와 운동권 세력의 국정 참여는 국정의 정치화를 가속했다. 국정을 정치적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정치적 목적에 초점을 맞추는 한 국정은 안정될 수 없다.
 
사회 안전핀도 점점 없어져 간다. 그러다 보니 국가 리더십 내부 관계에 있어 견제와 균형을 통한 협업보다는 한 방향으로 몰려가면서 일방주의 국정 운영이 계속된다. 더욱이 창조·혁신이 대세인 이때 정치권 내부자인 시민사회가 이익집단을 대변하며 혁신의 걸림돌이 됐다. 시민사회와 노동 세력의 정치세력화는 국민에게 견제 심리를 갖게 하며 국민과 사회가 그들을 감시하고 합리적으로 의심하게 하였다.
 
시민사회는 스스로 정체성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순수한 뜻은 퇴색되고 아름다운 사회운동은 시위 세력이라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변색했다. 일부는 사회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정치 내부인이 되어 비판 정신은 상실되고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이익집단화의 길로 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성역은 오래가지 못한다. 정치 비호세력도 국민의 싸늘한 눈초리를 이길 수 없다. 정의연 사건을 계기로 시민단체 회계의 투명성, 운영의 적정성, 설립 목적에 대한 집중력 여부가 집중 조명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가야 할 길을 잃고 말았다. 노 대통령이 구상하던 신 3각 지배구조도 파행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과 가치에 맞는 새로운 국가 지배구조는 무엇인가? 이제 국가 기본 가치가 균형과 공정, 창조·혁신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이 가치에 맞는 이제 사회 지배구조, 국가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사회 지배구조의 재건축이 새로운 국가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국가 지배구조를 재건축하는 기본 방향은 무엇보다 수평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며 다양성·전문성·창조 정신으로 높은 정책 생산성과 정합성을 이뤄야 한다. 먼저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엄격히 지키고 시장·정부의 역할 분담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시대적 가치와 정신에 맞게 방향과 목표를 재구성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제3의 독립 영역이라 명명한 시민사회는 권력 밖에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사회에 맞는 공기와 자양분을 먹고 성장할 수 있다. 시민사회는 정당성 확보를 위해 외부감사를 받아 공표해야 한다. 외부감사법을 고치고 공인회계사회 협조를 받는다면 큰 부담 없이 회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시대 가치 맞는 지배구조 재건축해야
 
또 탈정치화 없이 시민사회는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다. 시민사회가 정치 디딤돌로 이용하며 공생의 길을 걸어왔던 민주화·운동권 세력과 단절해야 한다. 민주화된 한국 사회에서 투쟁 대상을 상실한 복고적 민주화·운동권 세대는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장해야 한다.
 
재벌그룹은 선단식 왕회장 시대를 접고 독립 기업 회계 원칙을 준수하며 가문의 존속보다 기업 미래가치를 키워야 국민의 믿음을 살 수 있다. 관료사회는 더는 파워엘리트가 되려 하지 말고 새로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선도그룹으로 다시 태어나 국정의 안전핀 역할을 맡아야 한다. 새로운 가치로 재무장되는 국정 구성원들은 한눈팔지 말고 자기 위치를 지키며 흔들림 없이 응분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시민사회 등 제3 중립지대 인사들을 정치에 끌어들여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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