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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사이언스&] “K바이오 성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관료”

중앙일보 2020.06.09 00:17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지난주 ‘위기 속 기회 맞은 K바이오’ 기획 시리즈를 진행했다. 첫 회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 빛나고 있는 한국 진단키트를, 둘째 회에는 세계 1위 한국 바이오시밀러 산업의 모습을 조명했다. 마지막 회에는 바이오산업의 ‘주무대’라 할 수 있는 글로벌 신약 개발까지 가기 위한 한국 제약업계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짚었다.
 

전문성 떨어지고 인력도 태부족
미 FDA는 규제보다 지원에 초점
K진단키트 성공은 희귀 사례
고시제 폐지 등 인사 개혁 절실

바이오기획 중 만난 적지 않은 산·학·연 인사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한 귀엣말이 있었다. “신약 개발의 가장 큰 장애물은 관료”라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공개적으로 이 문제점을 거론하기를 거부했다. 실명으로 얘기했다간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그들이 말한 관료를 콕 집어 말하자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공무원’이었다. 이게 웬 아이러니일까. 코로나19 속 한국 진단키트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게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식약처의 발 빠른 대처 덕분 아니었던가.
 
한국 신약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지금까지 30여 개의 국내 신약이 개발됐지만 이중 13개는 판매 중단됐다. 10개는 연매출 1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연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신약은 5개에 불과하다. 사진은 국내 한 바이오제약기업의 연구개발(R&D) 현장. [중앙포토]

한국 신약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지금까지 30여 개의 국내 신약이 개발됐지만 이중 13개는 판매 중단됐다. 10개는 연매출 1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연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신약은 5개에 불과하다. 사진은 국내 한 바이오제약기업의 연구개발(R&D) 현장. [중앙포토]

한국 관료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있다. 최근 죽다 살아난 인보사 얘기다. 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코오롱티슈진이 개발 중인 인보사의 3상 임상시험 보류를 해제하고 환자 투약을 재개하도록 했다. 지난해 5월 미국 FDA로부터 인보사의 임상을 잠정 중단하라는 통보를 받은 지 약 11개월 만의 임상 재개다. 인보사는 2017년 한국 첫 유전자 치료제로 식약처의 허가를 받았지만, 지난해 3월 주성분 중 하나가 허가사항에 기재된 연골세포가 아닌 종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신장 세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판매가 즉각 중단됐고, 식약처는 7월 품목허가를 취소했다.
 
국내에선 이미 ‘명줄’이 끊긴 인보사가 미국에서 다시 살아난 이유가 뭘까.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인사들은 ‘미국 FDA가 제약산업 지원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한국은 규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 FDA가 인보사 3상 임상 재개를 허가한 가장 큰 이유는 ‘인보사가 환자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이었다. 임상 재개를 허락해줄 테니 약효를 입증해보라는 게 FDA의 주문이었다. 그 이후는 오롯이 코오롱의 몫이다. 반면 한국 식약처는 인보사의 품목허가를 취소한 이유를 ‘코오롱의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식약처의 전문인력 부족도 심각한 문제다. 심사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심사가 계속 늦어진다. 지인을 통해 식약처 고위공무원의 솔직한 심정을 들어봤다. 국장급 관료는 “임상분야를 다룰 경험 있는 의사가 필요한데 잘 안 된다. 겨우 뽑아놓으면 금방 또 나가 버린다. 인보사처럼 일을 잘못 처리하다가는 징계를 받게 되니 규정에 몰두하면서 보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 식약처 공무원 중 의사 출신은 단 3명에 불과하다.
 
신약개발

신약개발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바이오벤처기업 임원이 신약 개발 등을 위해 임상시험 승인을 요청할 때 얘기다. “2상 임상 허가를 받을 때였다. 식약처 담당자가 이해가 떨어지는 건지, 이해하려 하질 않는 것인지…. 동물시험 기전을 설명해줘도 납득하질 못했다. 그런 사람이 도장을 찍어야만 임상 허가가 난다.” 이 임원은 식약처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그 월급으로 전문가를 어떻게 뽑나. 식약처 공무원이나 동사무소 공무원이나 월급은 같다.” 사회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것이 관료로 일하는 것보다 몇 배 이상의 연봉을 보장받는데, 굳이 공무원을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식약처는 아니지만 이번에 글로벌 스타로 떠오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뭐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정 본부장은 서울대 의대를 나온 엘리트다. 하지만 연봉은 역시 공무원 규정에 따라서 받을 뿐이다. 정 본부장은 돈보다 명예가 더 중요시했기 때문에 보건관료의 길에 들어섰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관료에게 정 본부장의 소신을 강요할 순 없다. 결국 시스템이다. 똑똑한 전문관료가 고민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메리트를 만들어 줘야 뛰어난 관료들이 넘쳐날 수 있다.
 
답이 없을까. 2016년 4월 당시 인사혁신처가 ‘인사비전 2045’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 보고서는 궁극적으로 지금과 같은 고시제를 폐지하고 정규직과 임기직·시간제로 공무원의 신분을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는 자유공무원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도 비슷한 대안을 주장한다. 그는 공무원이 특정 부처에 소속돼 보직을 순환하는 제도를 버리고, 부처 간 벽을 넘어 유사·관련 직무들 사이에서 승진과 전보가 이뤄지는 ‘직무군(群)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해야 공무원의 전문성도 올라가고, 승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한국도 글로벌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장애물이 관료 뿐은 결코 아니겠지만, 일단 기업인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장애물부터 뽑아내는 게 순서다. 그리하여 반도체와 자동차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는 바이오시장을 한국의 다음 먹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속 K진단키트의 명성을 빛낸 한국 정부의 발 빠른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관료가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희귀 사례’였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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